담양 여행/ 즐거움

by 서장석

국내 여행을 하면서 맛집을 빼고는 같은 장소를 두 번 이상 가지 아니했었다.

죽녹원을 제외하고는.

죽녹원 첫 방문 때 대나무에서 풍기는 서늘함과 바람이 일으킨 댓잎의 사각거림에 반했다. 이번 여행에서도 죽녹원을 필수 방문지로 선정하였다.

홍살문을 지나 싱그러운 대나무가 빼곡하게 펼쳐진 죽녹원 안마당에 들어갔다. 두 번째 방문임에도 첫 방문 때의 감흥이 되살아났다. 봉황루라 이름 붙여진 카페에 들어가 아내는 대나무 향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테라스 너머로 펼쳐진 죽녹원 앞마당 전경을 음미하였다.

천천히 야자 껍질로 만든 멍석을 밟으며 속 살로 들어갔다.

들어간 입구 오른쪽에 자리 잡은 인공 폭포의 시원한 물줄기와 물 떨어지는 소리. 첫 방문 때는 시설 자체가 없었고 이번에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죽녹원의 자연환경과 무난한 배치여서 합격점. 옥에 티는 그 옆에 국적 불문의 판다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판다가 대나무를 먹고사는 동물이라 해도 여기에 판다 조형물은 아닌 듯싶다.

입구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가 그토록 보고자 원했던, 듣고자 갈망했던 대나무와 하늘이 있는 정자에 단둘이 앉았다. 바람이 댓잎을 스쳐 지나가는 소릴 듣고, 눈은 대나무 사이로 난 틈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을 보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자 기둥과 기둥 사이 사각의 공간으로 굵은 대나무 줄기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바라보며 진한 녹색 줄기와 잎이 뿜어내는 자연의 성찬을 즐기고 있었다.


더욱이 봄철에 나오는 커다란 죽순을 볼 수 있던 행운은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한참을 눈으로 귀로 그리고 코로 대나무가 주는 모든 것을 흠뻑 담았다.

그리고 관방천 곁의 국수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갔던 날이 장날이었다.

장날은 장날 나름의 재미가 있다.

더욱이 봄이어서 함지박 위로 쌓인 참취, 고사리, 두릅, 비름나물과 노란 머리를 살짝 내밀며 고개를 숙인 콩나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나도 어려서 방 안 윗목에 엄마가 고무 양동이 속에 채반 비슷한 것을 넣고서 콩을 집어넣고 물을 주고 위를 헝겊으로 덮어 놓으셨던 기억이 있다.

자고 일어나 보면 신기하게도 손가락 마디만큼 노랗게 자라 있었다. 다 자란 콩나물을 쑥 뽑아서 냄비 안으로 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같이 넣고 물과 소금과 고춧가루가 합작된 김치 콩나물국은 왜 그리도 시원했던지.

커다란 바구니 속에 칠게가 보인다.

튀겨 먹어도 맛있고, 간장에 조려 먹어도 밥도둑이 되는 밥반찬들 정겨운 상상이 된다.

되돌아 나오며 좌판 신발가게가 보인다. 가게 맨 앞자락에 색색의 물감으로 화려하게 장식을 한 깜장 고무신에 눈길이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검정 고무신을 신고 학교에 갔다. 하교 후에는 엄마 말씀에 의하면 집 앞

도랑에 들어가 신발에 도랑에서 잡은 벌레를 고기 잡았다고 자랑하며 들어왔단다.

불현듯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났다.

❝자식 없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효자가 된다고 한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기억 저편에서 솟는 생각들을 추억하는 것 그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님을 안다.

어머니가 날 어떻게 키우고 가르치고 입히셨는지 어렸을 적엔 관심 밖 사항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나이가 되어보니 여자의 몸으로 고된 풍파를 헤치고 살아오셨을 날들에 대해 저절로 경외를 표하게 된다.

나 또한 두 자식의 부모임을 이제 사 각성하지만 난 다정한 아버지였는가?

그리고 살가운 아들이었는가? 되돌아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무늬만 아들이었고 겉으로만 아빠이지 않았나 싶다.

잠깐의 사유를 뒤로하고 어슬렁거리다가 그중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보였다.

만 한 살이 넘어 보이는 아기였다. 머리는 양 갈래로 따서 노랑 고무줄로 묶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천 원짜리 돈을 쥐고 어깨높이로 손을 들어 올리고는 뒤뚱뒤뚱 – 기저귀를 차고 있는 듯- 다리를 벌리고 걷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말을 걸었다. 그 돈으로 무얼 하려고?

아이가 고갤 들어 나를 쳐다보았고 씩 웃어 주었다. 순간 너무 아름다웠다. 예뻤다.

어떤 미소가 저보다 순수할까요? 어떠한 웃음이 저보다 진솔할 수 있을까요?


아이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 그 이상의 답을 얻었다. 모나리자 미소보다 더 예쁘고 귀여운 웃음이, 날 바라보던 그 맑은 눈에 비추던 하늘을 닮은 눈동자를 기억하게 될 거라고.

아이는 고갤 내리고 엄마와 함께 제 갈 길을 걸어갔다.

무어라 말하는지 뜻은 알 수 없으나 입으로 웅얼거리며 발을 들 때마다 신발 바닥이 보이게 걷는 아이의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아이가 내려간 냇가 언덕을 바라보았다.

장날이라 시장통을 다니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고 얽히고설키며 스쳐 지나치고 걸어왔어도 같은 미소를 띤 얼굴을 만나지는 못했다.

아니 기대한 자체가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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