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서장석입니다. 서 글 장(章) 주석석(錫)이 이름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서로에게 고통을 주기도, 또는 받기도 하며 살아갑니다.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단독 생활을 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난 수원 고등동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내 이름은 동네 할아버지께서 항렬을 이용하여 글 잘 쓰는 사람이 되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들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해는 육이오가 끝난 지 몇 년 안 되는 해였습니다. 삶은 피폐했고, 경제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그야말로 전쟁 중 살아남아서 세대를 잇기 위한 종족 번식을 당한 세대라는 생각입니다.
그저 매일매일을 먹고사는 것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였습니다. 물론 그땐 너무 어려서 몰랐지만. 그런데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은 유난히 가난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친구들은 초가집일망정 부모님이 자기 소유의 집이 있었는데 우리만 남의 집 문간방에 소위 전세라는 것을 살고 있었고, 집주인 할머니의 횡포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땐 그런 것들조차 몰라 ❛집주인의 갑질이 당연하다❜라고 생각했고, 그분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무능력한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의 말씀을 빌리면 ❛똥조차 버릴 것 없는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같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무능했으며, 무지했습니다.
어머니도 따듯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1.4 후퇴 때 황해도 해주에서 할머니 그리고 삼촌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오신 피난민이셨고, 그야말로 생활력 ❛갑 중의 갑❜이셨습니다. 이런 분이 왜 무능한 아버지와 결혼하셨는지 정말 미스터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중에서 태어난 나는 어느 한쪽으로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마음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어려서 난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을 안 듣거나 부모님 생각과 다를 경우 내게 닥쳐올 경우의 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복종하는 것이 미덕이었기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 때문에 반항적 성격이 형성되긴 했지만.
tvN 김창옥 쇼에서 표현한 강사 김창옥 씨의 말을 빌려 적습니다. 따듯한 부모 밑에서 정서적 교감을 받으며 자란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와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게 크다고 합니다. 제일 큰 차이는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여 자기 자녀에게도 지혜롭지 못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 또한 부모로부터 체득하거나 학습된 방법이 없어 자식들에게 엄하게, 엄격하게만 대하였습니다. 가장이니까.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는 것만 그 소임을 다하는 줄 알고 살아왔습니다. 내 아버지는 그조차도 하지 않으셨기에.
난 그것만으로 충분히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구실하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자신에게 세뇌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 육십을 넘고 보니 아니었다는 자책을 하게 됩니다.
젊어서 좀 더 살가운 아비였었으면 자식들의 웅얼거림을 다독여 줄 줄 아는 아비였으면, 아내의 힘듦을 헤아려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지금에 와서 이런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혹자는 말합니다.
당장 지금부터 후회스러웠던 과거를 정산하고 아내와 자식들에게 잘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살갑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시간과 세월에 대한 안타까움은 뼛속 깊숙이 남습니다.
난 자식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요구하고자 합니다.
비록 아비로부터 정서적 언어적 사랑을 받지 못하였어도, 네 자식에게는 마음으로 충분하게 입으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따듯하게 안아줄 것을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수많은 미디어 업체로부터 전달되고 있는 정보의 양이 무궁무진합니다.
내가 자란 세대는 그렇게 많은 소식에 노출되었던 세대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것을 귀책사유로 삼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도서관의 장서 중 하나로부터, 어느 날 도심 속 사찰에서 흘러나오는 저녁 예불 소리를
듣고 문득 일어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자녀에게 하지 못한 것이 부모로부터 학습을 못 받았기에 그렇다는 핑계를 대고, 책임을 돌리며 회피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성합니다.
지난 부모님 제삿날 아들의 불편한 눈빛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다치게 한 말로 인하여 많이 아파했을 아들에게.
얼마 못 가 다시 또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더라도 지금은 사과하고 싶습니다.
넌 너의 인생을 살라고.
그래서 아비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난 내 어머니처럼 자식을 소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결과는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려고
하는 도돌이표 인생이었나 봅니다. 간섭과 참여는 분명히 다릅니다.
부모로서 자식이 잘되라고 한 참여라도, 자식이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면 그것은 간섭이 될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듯싶습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와 자식 앞에 놓인 당면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더욱더 현명함이 지혜로움이 요구되어집니다.
그러나 분명합니다.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의 앞날을 걱정해 주고 기다려 줄 줄 알아야 한다고. 자식이 힘들어할 때 늙은 어깨를 빌려주어야 한다고. 아들과 딸이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금은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가기에.
남편, 아버지, 장인과 할아버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