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1일 일요일 배 밭에 다녀왔다.
집사람 지인이 운영하는 과수원이란다. 지난 4월 말부터 오늘 아침까지 봄나물 향연 속에 살았다. 아내가 배 밭에 다녀오면 식탁이 풍성해진다.
달래, 쑥, 미나리, 돌나물, 참나물, 질경이까지 무쳐 먹고, 국 끓여 먹고 쑥 같은 경우엔 쌀을 빻아 개떡을 만들어 주위와 함께 먹었다.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지천으로 나물이 생성된다는 말인가. 집사람에게 부탁했다.
당신이 과수원 갈 때 나도 같이 데려가 달라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대략의 위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과수원 근처에 저수지가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저수지를 오른쪽에 두고 도착하니, 입구 항아리에 올려진 다양한 꽃들이 반겨준다.
차에서 내려 처음 맞이한 양귀비꽃이 새빨간 모습으로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자신을 봐 달라고 말을 건다. 쓰다듬어 주었다. 주인 내외와 인사 후 과수원을 둘러보려 나섰다.
배나무 우거진 밭, 서 있는 꽃 중에 노랗게 피어 군락 지어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애기똥풀꽃.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한 크기와 노랑 저고리 입은 듯 피어 있는 꽃, 그 주위로 하얀 민들레, 둥굴레, 허브, 영산홍, 철쭉, 라일락과 보라색 꽃을 피워낸 오동나무가 마음을 숨 쉬게 한다. 먼 곳에서 꿩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과수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원두막으로 향했다. 다 올라가서 뒤돌아본 모습, 커다란 나무와 나무 사이로 보이는 탁 트인 전경이 가슴을 뻥 뚫어 놓는다. 시원하다. 안구 정화란 이런 것인가?
잠시 후 앉아 있는 내게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려앉는다. 순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새 눈이 똥글똥글하다. 저 작고 귀여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먹이 활동이 시작되었다.
작은 부리로 쪼고, 먹고, 던지는 행동이 반복되었다. 나는 특히 집어던지는 행위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먹잇감이 부리에 닿는 순간 본능적으로 먹을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부리에 온갖 신경 세포가 집중되어 있어 먹이가 아닌 것은 휙 하고 던지는 것 같았다.
과수원 전체가 먹이 활동 구역이겠지만 왜 하필 원두막으로 날아와 먹이를 집어 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 난 손님, 넌 주인.
새들은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생각될 때만 사람 근처에 내려앉는다고 생각된다.
잠시 눈 맞춤과 먹이 활동을 뒤로하고 녀석은 제 갈 길로 날아올랐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가녀린 완두콩밭에 시선을 돌렸다. 가는 실같이 파리한 손끝을 더듬어 제 머리 위에 있는 끈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이 간절하다.
제 생명 부지를 위해 한 본능적 행위의 위대함.
과수원 이곳저곳에 페트병이 달려있다.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주인분께 질문하였다. 왜 나무 중간중간에 페트병이 달려있느냐고. 주인장의 대답이 명료하고 명쾌했다.
과일이 익는 시기에 새들이 쪼아 과일의 상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는 답변.
그리고 설명.
목초액을 담아서 병 속에 넣어두면- 새들이 불 냄새를 싫어하여- 목초액에서 심한 불 내음이 발생해서 접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지혜롭다.
과수원에 발생하는 벌레들을 퇴치할 때 쓰이는 액체 제조를 보게 되었다. 수산화나트륨 + 카놀라유 + 정제수 + α 이들을 섞어 3일 동안 양생한 후에 과실수에 뿌려준단다.
또 질문.
바닥에 엄청난 양의 잡초가 생겨났는데 왜 제초제를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주인의 대답이
당신은 유기농법으로 과일을 생산하고 싶단다. 그래서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벌레가 땅속에서 나와 잡초에서 일부 영양분을 섭취하면, 나무로 올라오는 놈들이 줄어들고
또 자연스레 천적들이 생겨 과일에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들어올 때 보았던 저수지가 궁금하여 가 보았다.
가로 50m, 세로 40m 규모의 소규모 물막이 저수지였다. 물 표면은 수련이 덮고 있었다.
한 분이 낚시하고 있었다. 망태기 속을 들여다보니 손바닥 절반 크기 붕어들이 스무 마리 정도 들어있었다. 황금빛 비늘을 가진. 크기가 작네요 하고 말하자. 낚시꾼 말이 매운탕 끓이면 맛이 기가 막힙니다. 하고 답변한다.
많이 잡으시라 하고 과수원으로 돌아오니 주인께서 일하는 데 협조를 요청하신다.
밭에 호박을 심어 놓았는데, 기둥을 세우고 위에 망을 씌울 거라고 한다.
기둥을 세우는데 혼자서 가능하지 않아 같이 세우자 하신다.
30여 m 떨어진 곳에서 연결용 대나무를 가져와 준비했다. 둘이 기둥을 세우고 위에 대나무를
설치하고 끈으로 묶어 놓으니 군대 생각이 났다.
왜 갑자기 동계 훈련 때 세우던 텐트가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다.
12월, 1월 추위 동계 훈련 때 막사 텐트를 세우느라, 언 땅을 파고, 기둥을 박고, 끈으로 묶던
행위들이 동일한 행동에서 연상이 되었던 듯싶다.
이 기억이란 놈이 묘하다. 평소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있다가 유사한 행동이나, 환경이 조성될라치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놈들이 부지불식간에 튀어 오른다. 지금처럼.
반갑든 그렇지 아니하든 간에 무의식 속에, 아니 잠재의식 속에 나오는 형태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오후 여섯 시 삼십 분, 어떤 생각도 없이 몰입하고 집중해서
잡념 없이 무엇인가 해 본 적이 언제였나 싶다. 귀중한 경험이다.
다시 시작해야겠다.
쓰고, 읽고, 또 쓰자.
살아있는 오늘을 기록하고 기억하자.
날 생각할 수 있다는 행복함을 갖기 위해 글을 쓴다.
오후 내내 초록 바다에 빠져 살았다. 행복한 풀 내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