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주인공은 바로 나다. 나는 명절이 외롭고 싫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는다. 나는 늦둥이로 태어나서 친가는 친할머니만 살아계셨고 외가는 두 분 다 하늘나라에 계셨다. 그리고 그 친할머니께서도 내가 애기 때 이미 치매가 있으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 내가 애기 때 돌아가셨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 되면 나는 내 친구들과 다르게 한 곳으로 가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돌아다녔다. 거기다가 부모님은 그 형제 중에서도 막내 라인이었다. 아버지는 8남매에서 6번째. 어머니는 6남매 중에 5번째였다. 그러다 보니 사촌 형, 누나들은 웬만한 내 친구들한테 삼촌, 이모뻘이었다. 거기다가 그 들의 자녀들은 촌수로 치면 나에 조카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가면 좋긴 했지만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어머니가 대장부 같은 분이었기에 나에게 뭐라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고모들이 우리 엄마를 알게 모르게 무서워했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암에 걸려서 투병을 하고 하늘나라로 간 뒤로 나는 정말 힘들었다. 친가에서는 나보다는 아빠를 위한 이야기만 하기 바빴다.
" 너는 너 아빠 힘들게 무슨 축구를 한대 "
" 그냥 공부해서 회사나 다녀 "
" 박지성 같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 등등 많은 구박과 무시를 받았다.
물론 큰 고모부나 몇몇 분은 나의 편을 들어줬다. 그분들께 참 감사하다.
그러나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하이에나 무리가 달려드는 것처럼 나에게는 버거웠다.
그러면 외가는 어땠냐고? 그나마 친가보다는 낫지 않았냐고?
처음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변해갔다. 누구라고는 지칭하고 싶지 않지만 어떤 외가 쪽 가족이 나에게 한 소리를 하고 나는 다시는 교류하고 싶지 않았다.
" 원준이 애가 착해 명절 되면 꾸역꾸역 찾아오는 게 대단해 "
이 말은 정말 모든 가족과 연를 끊고 싶었다. ( 그래도 그 이후로 나는 미워했던 마음을 회개하고 그분을 용서했다 )
그때 내 나이가 21살이었다. 어디를 가든 반겨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명절이 어느 순간부터 싫었다.
친가는 가면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것 같고 외가는 눈치를 주고 참 인생이 서러웠다.
그래서 명절이면 외로웠다. 나는 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인지 마음이 북받치면 하나님께 기도했다.
" 하나님 제가 얼마나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이런 고난을 주시나요? "
" 제가 얼마나 큰 복을 받는 거죠? "
이럴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은 더욱 담대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버겁다.
담대하 다라........ 이게 무슨 말일까?
나의 상황을 보고도 담대하라니 주님은 도대체 나에게 뭘 원하시는가?
가족이 도대체 뭔데 날 이리 괴롭히는가?
그러다가 문득 어머니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는 참 좋은 부모였다.
나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호랑이 같던 우리 엄마, 이유 없는 나의 편 엄마
내 인생에 엄마가 빠졌다는 이유로 이렇게 매년 휘청거린다는 게 속상하다.
그런데 큰 이모가 해준 이야기가 있다.
" 70 넘은 노인도 부모가 돌아가면 슬프고 계속 생각나 "
맞다. 그 아무리 나이 든 누구도 누구의 자녀이다.
언제 가는 맞이해야 할 부모와의 이별은 어쩔 수 없는 하늘의 이치와 같다.
난 그걸 비교적 조금 빨리 했을 뿐이다. 그래도 속상하고 슬픈 것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한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생각이 나도 덜 슬픈 까닭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기 시작한 뒤로다.
슬프면 슬퍼하고 속상하면 속상해하면 된다.
그저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만 내버려두면 된다.
우리는 간혹 강가를 보다 보면 멋지고 큰 댐이 보일 것이다.
댐이라는 것은 단순하게 강이나 바다 물 막아두기 위한 큰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댐이 막아두다가 방류라는 것을 한다.
방류를 하는 이유는 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폭우나 장마로 어느 정도 안전 기준치를 넘기면 방류한다.
이런 걸 보면 인간도 그렇지 않나 싶다.
억지로 참는다고 좋은 것은 없다.
속상하면 속상하게 슬프면 슬프게 있으면 된다. 그걸 오히려 울지 마라 힘내라 같은 말은 날 괴롭다 못해 옥죄일 수 있다. 그래서 난 누구가 힘들다고 하면 힘내라고 기운 내라고 하지 않는다.
반대로 감정을 다 쏟아내라고 한다.
누가 나한테 그랬다. 자신은 슬퍼도 울음을 참는다고 말이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묻자 그는 울음은 약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런가? 나는 그의 반대라고 본다.
내가 생각하는 울음은 그 사람의 강함이다.
그만큼 참고 버티고 싸웠다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묘 앞에서 한 없이 울었고 앞으로도 한 없이 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