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텐_리넨라이크 밴딩 와이드 팬츠_베이지 (MSE2PP2602BE)
(주문일: 2025년 6월 21일)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24인치, 26인치 바지를 아무렇지 않게 입었는데, 이젠 이 사이즈를 입으면 바지가 허벅지에서 걸리거나, 바지가 허벅지를 통과해도 지퍼가 올라가지 않거나, 지퍼를 힘겹게 올려도 단추가 채워지지 않거나, 호흡을 들이마시며 단추를 채운다고 해도 하체가 압박되어 움직이기 힘들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바지 입기를 경험하게 된 건 체중이 증가하면서다.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대기실에 체중계가 있길래 별생각 없이 올라갔다. 그런데 디지털 숫자판에 54kg이라는 처음 보는 숫자가 찍혀서는 별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평균 50kg을 유지하며 살아왔고, 소화력이 좋아서 먹는 거에 비해 살이 찌는 체질도 아니었기 때문에, 갑자기 4kg이 증가했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체중계가 고장 난 거라고 의심했다.
동네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씻고 탈의실에 있는 체중계에 올라갔다. 병원에서 봤던 몸무게 54kg의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디지털 숫자가 변하는 걸 보다가 54kg에서 숫자가 멈추자, 기대와 걱정은 나에 대한 실망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땀 빼고 때까지 벗겨내어 개운했던 몸은, 불필요한 지방이 붙은 듯 무겁게 느껴졌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마주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지방이 붙었다는 걸 확실하게 체감한 건, 입을 수 있는 바지보다 입을 수 없는 바지가 많아졌다는 걸 알게 되면서다. 외출하려고 바지를 꺼내 입는데 스트레이트 바지가 스키니 바지처럼 느껴지면서 하체에 피가 안 통했다. 놀란 마음에 다른 바지들을 꺼내 입어봤지만 내가 입었던 바지들 같지가 않았다.
사실 몸무게가 4kg이 증가했다는 것보다 입을 수 있는 바지들이 많지 않다는 게 더 충격이었다. 그래서 바지를 입기 위해서라도 다이어트가 절실했다. 옷장에서 바지를 고를 때마다 코디하기 위한 바지가 고르는 게 아니라 입을 수 있는 바지로 고르는 건, 옷 입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일상의 재미를 잃게 된 일이었다.
그런데 지방이 굳어진 건가 싶을 정도로 살이 빠지지 않았다. 54kg에서 줄어드는 게 아니라 뒤에 소수점까지 붙어 더 올라갈 기세였다. 식단 관리로는 체중 감량이 되지 않아서 주말에 안 하던 운동까지 했는데도 54kg에서 내려가지를 않았다. 그리고 알게 된 무서운 사실은 식욕이 늘어서 체중이 증가한 게 아니라는 거다. 나는 하루 두 끼를 먹고, 식사 이외에는 군것질도 잘 안 하는 편인데도(생리 기간에만 군것질이 폭발한다) 몸에 지방이 붙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내가 찐 살은 그냥 살이 아니라, 말로만 듣던 ‘나잇살’에 가까운 것 같았다.
몇 년 전 아는 언니가 “씻다가 화장실 거울에 내 몸이 비치면 화가 나, 그래서 수증기가 생겨서 거울에 내 몸이 안 보여야 좋아”라고 말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체중이 증가한 후, 나잇살까지 더해져 쉽게 빠지지 않는 살에 대한 푸념이었다. 그땐 살을 뺀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모를 때라 재미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요즘은 화장실 거울에 내 몸에 불필요한 지방이 울룩불룩 붙은 게 비칠 때마다 내 몸을 보는 게 무서워진다. 그리고 그 언니의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서운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도저히 빠지지 않는 살 때문에 입을 수 있는 바지가 부족하여 현 허리둘레에 맞는 새 바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탑텐’ 브랜드의 <리넨라이크 밴딩 와이드 팬츠>를 27인치로 구매해 봤다. 솔직히 나의 현재 허리둘레는 27인치가 아니라 28인치일 것 같은데, 이 바지는 리뷰에 한 치수 크게 나왔다는 의견이 있어서 27인치로 주문했다. 그런데 리뷰를 괜히 봤나 싶을 정도로 나에겐 정사이즈로 느껴졌다. 어쩐지 여기서 체중이 더 증가하면 내년에 이 바지도 못 입을 것 같다는…….
작아진 바지들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다시 24인치, 26인치 바지를 입는 게 다이어트 목표였지만, 단순히 살이 찌는 게 아니라 퍼지고 처지는 걸 보면서 탄력과 근육이 있는 몸만들기로 목표를 바꿨다. 욕심 같아서는 마르고 건강한 몸을 다 가지고 싶지만, 운동 마니아가 아닌 나에게는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다. 그래서 이런 나의 느린 다이어트로 인해 작아진 바지들은 옷장 밖으로 나올 수 없었고, 바지들이 감옥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부디 허리둘레가 맞는 새 주인을 만나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길’하는 바람으로 작아진 바지들을 정리했다. 솔직히 비싼 바지도 있어서 아까웠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지를 입어보면 ‘역시나’ 하고 바지가 안 들어가서 미련 없이 정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