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 없이 상대를 볼 수 있도록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궁금한 게 참 많습니다.
질문이 많다는 건
관심이 많다는 것.
소소한 질문들도 지나치지 않고 답하려 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수업시간을 즐겁게,
-혹은 빠르게- 보내기 위한 잔꾀라 할지라도
질문에는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많은 아이들의 공통질문을 떠올려 보면
'나이'가 빠지지 않습니다.
저는 21살부터 수업을 했는데
예전에는 아이들이 나이에 대해 물으면
신비주의 전략이라며 알려주지 않곤 했습니다.
대학 가면 알려줄게! 하며 버티다가,
초등학생 때 만난 아이들이... 정말 대학에 가 버렸네요.
약속은 지켜야 하니, 이제는 나이가 공개입니다.
요즘에는 아이들이
어린 선생님을 좋아하는 듯 보이는데
당시엔 나의 어린 나이 때문에
아이들이 만만하게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선생을 쉽게 보게되는 이유가
'나이'에서만 오는 게 아닌데도 말입니다.
스스로 갖춰야 하는 것들을
편하게 '나이' 탓을 한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겐
'나이'에서 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상대의 나이를 알게 되는 순간,
나이대에 맞는 옷을 입히지요.
아마, 과거의 저는
그 선입견에 갇히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나이뿐만 아닌
그 모든 선입견들에서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는 건,
그만큼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꽤나 신경을 쓰고 집착을 하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나에 대해 오해할까 봐서라기보단
내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선입견이나 편견, 오해 없이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제 자신조차도 말이죠.
내가 오해받고 싶지 않은 만큼
나는 얼마나 대상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나마 아이들은 용기내어 묻기라도 하는데
오히려 어른이 되면서
상대에게 묻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착각한 채로
넘어가버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이들과 나눈 '나이'에 대한 대화에서
'나'를 돌아보게 되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수업 중 잠시 쉬어가는 시간,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학생이 나이를 묻는다.
몇몇이 추측해 숫자를 던지고
내 나이보다 어린 숫자라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내 표정을 읽은 초6 남학생의 한탄.
(키도 훤칠하게 크고
말투나 태도가 정갈한 편이라
중학생으로 오해받는다.
가끔은 사람들이 고등학생으로 보기도 하나보다.)
초6 : 저는...
사람들이 저보고 중고등학생인 줄 알았다고 해요.
제 얼굴이 많이 삭았나요 선생님 ㅠㅠ
나 : 아이고, 속상했겠네.
음... 선생님이 보기엔 외모 때문이라기보다는
네 말투나 태도가 차분한 편이어서 그런 것 같아.
초등학생 특유의 가벼운 몸짓이 있는데
00은 그게 조금 없는 편이지.
(옆에 있던 고1 형, 위로하려는 듯한 말투로)
: 그래도 너... 꽤나 젊어 보여.
초6 : 어려 보이는 것도 아니고 젊어 보인다니... 흑흑
다 같이 한바탕 웃고
이번엔 맛있는 식당 추천하는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나 : 00는 어떤 음식 좋아해?
초6 : (저음으로) 음... 곤드레밥이요.
나 : 요 녀석, 식성도 어른스럽네!
어른이나 아이나, 나이로 인해 고민이 생기나 봅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나이보다 어려 보여도, 나이 들어 보여도 고민입니다.
어릴 때는 나이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있어 답답한데
오히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포기합니다.
나이대에 따라 겪어야 하고
해야 하는 역할이나 일들이 있습니다.
지나고 나면 할 수 없는 것들도 있고
지나고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들인데
당시에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대체로 지금이라도
그냥 하면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나이탓 하지 않고,
나이핑계 대지 않고,
더 나잇살 먹기 전에 부지런히
하면 됩니다.
초봄의 꽃망울 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솜털이 가득한 거친 껍질 안에
이렇게나 고운 꽃이 들어있어요.
껍질이 벗겨지기 전에는
저런 빛깔의 꽃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저 여리여리 고운 꽃잎이
어찌 이리 단단한 껍질을 뚫었을까요.
사람도,
껍질을 다 벗어내기 전에는
안에 얼마나 아름다운 빛이 있는지
다 알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모두 없애고
봉오리 안에, 씨앗 안에 담긴 본래의 빛깔을
잘 알아보는 눈을 키우라는 듯,
올 해도 변함없이 꽃들은 피어납니다.
: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성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