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시작된 순간의 이야기

한 글자로 전하는 '사랑'

by 화인

#교학상장 #수업일기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요일 오후 수업,

'育(기를 육)' 글자를 설명할 차례였다.


'기르다'라는 말은

내 마음속 한 곳에 늘 함께하는 개념 중 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잘 기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온전히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잘 기른다'는 건 무엇일까.






칠판에 育을 적고 말했다.


"이 글자의 부수는 아래에 있는 月이야. 어떤 한자일까?"


아이들은 그 정도는 너무 쉽다는 듯,

당당하게 대답한다.


"달 월이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데 이 月은

밤하늘을 비춰주는 '달'이 아니고,

원래는 肉(고기 육)이 변형된 거야.


'육달월'이라고 부르는데,

글자의 아래쪽이나 왼쪽에 들어가면

'사람의 몸'이나 '동물, 고기'와 관련된 뜻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그럼 위에 있는 한자, 이건 뭘 표현한 걸까?"


갸웃거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귀엽다.


"윗부분은 子(아들 자)가 거꾸로 뒤집어져 있는 모양이야.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거꾸로, 머리부터 세상으로 태어나는 모습을 본 옛사람들이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그 순간, 한 여중생이 묻는다.


"선생님, 그럼 옆에 조그맣게 달려있는 건 뭐예요?"


"응, 그건 '탯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

우리는 모두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지?"


그러자, 갑자기 그 아이의 눈이 반달 모양이 되더니

그렁그렁 해져서는 뿌엥~하는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엄마 뱃속에서 10달 동안 있다가 태어났다는 걸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고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갑자기 그 모습이 상상되면서 뭔가 다른 느낌이 든다고 한다. 뱃속에서 엄마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게 신비로우면서 동시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슬픈 감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글자 한 자 설명했을 뿐인데 이런 감정을 느꼈다는 게 놀랍고, 그 감정을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고 표현해 준 것이 고마웠다. 평소에 워낙 밝고 명랑 쾌활(똥꼬발랄^^)한 학생이라 더욱.


소녀가 느낀 감동이 증폭되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뭉근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자소학》의 첫구절은 이런 내용으로 시작한다.

아주 유명한 문구이다.


父生我身, 母鞠吾身
부생아신, 모국오신
아버지께서 날 낳으시고, 어머니께서 날 기르셨네.


왜 옛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첫번째 교재'인 《사자소학》의 첫 문장의 내용을 이 문장으로 택했을까?

사람으로 태어나 무엇을 가장 처음 배워야 하는걸까?


《명심보감》의 효행편 1장의 내용은 이렇다.


詩曰, 父兮生我, 母兮鞠我,
시왈, 부혜생아, 모혜국아.
시경에서 말하였다.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哀哀父母, 生我劬勞.
애애부모, 생아구로.
애달프구나, 부모시여.
나를 낳고 기르시느라 애쓰고 애쓰셨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처음 알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효도'라는 단어의 껍질 속에 있는 '감사함'이 아닐까. 누군가의 노력에 대한 (그것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감사함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항상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사는 것.


이것이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동력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소 관심 있던 연예인은 아니지만, 최근에 이효리씨가 직접 낳은 아이는 없더라도 모든 이들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이야기 한 기사를 보았다.


아기를 갖고 싶던 이유는 엄마들이 아기를 너무 사랑하는 그 마음, 자기가 없어질 정도로 헌신하는 그 마음을 알고 싶어서였고, 본인은 그동안 '내'가 너무 중요한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내가 없어지는 그런 경험을 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읽은 책의 저자도 아기가 안 생겨서 고통받았지만 '내 아이는 없지만, 모두의 어머니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존재를 자식처럼 사랑하며 살아간다'며 꼭 아기가 있어야만 진정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틀렸을 수 있겠다고 느꼈고,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나 역시 직접 나은 아이는 없지만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을 이런 마음으로 대하려 해,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어머니를 뜻하는 한자 중에 '慈'자가 있다.

'사랑 자', 자비롭고 자애로운 마음.

남의 어머니를 '자당'이라고 높여 부를때의 그 한자이다.


慈의 만들어진 원리를 풀이해 보면,

식물이 끊임없이 자라나는 생명력을 가진 茲(무성할 자)와

心(마음 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닌, 길러주고 품어주고, 끝없이 자라나며 돌보는 지속적인 사랑을 뜻한다. 어머니의 사랑, 부모의 자애로움, 나아가 성인의 자비심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실제로, 뱃속에서 열 달동안 아이를 길러내고 태어났다고 해서 기르는 과정이 끝난 것이 아니다. 이후로 아주 긴 시간동안 계속 길러야 한다. 어머니의 수많은 역할 중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시작과 끝에는 이 '지속적인 사랑'이 있다.


이 마음은 실제 아이가 있는지, 성별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탯줄로부터 이어져 태어난 우리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일지 모르겠다.






다시 수업으로 돌아온다.

내가 하려는, 하고 싶은 가르침은 이런 것인듯 하다.


새로운 내용과 많은 양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

어쩌면 너무 자주 들어서 심상하게 지나칠법한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해 주는 것.


그저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는 것을 넘어,

마음 깊은 곳을 툭-하고 건드는 수업.

이것이 마음 안에 오래 남아 아이들이 잘 자라나면 좋겠다.

그럴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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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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