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이의 유치원에서 코스프레 행사를 했다. 한 주 내내 파자마 파티, 운동선수 데이 등 요일별로 정해진 컨셉대로 꾸미고 가는 행사였다. 그중 하루가 '엄마나 아빠처럼 입어요' 였다. 퇴사할 때 선물로 받은 항공사의 어린이 승무원 유니폼이 있어 아이에게 유니폼을 입혀 승무원으로 꾸며주었다. 쪽머리까지 예쁘게 하고 나니 진짜 승무원 같아, 아이도 들떠 해 뿌듯한 마음으로 유치원에 보냈다. 나중에 유치원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다가 우리 아이가 손을 곱게 모아 친구들 사이에 아주 다소곳하게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간 귀엽다는 생각보다 유니폼을 입고 공손한 자세를 한 아이를 보니 무작정 싫은 마음이 컸다. 까불까불 장난치며 자유롭게 웃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손 모으고 어깨 말아서 공손히 서 있는 모습이라니! 십 년 넘게 유니폼을 입고 늘 공손하고 단정한 자세에 갇혀있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원래도 어깨가 좁았던 나는 유니폼을 입으며 더 어좁이가 되고 말았다. 좁은 기내환경에서 일하려면 몸을 펼 일이 거의 없다. 승객 응대할 때도 몸을 늘 구부리고 아이컨택 해야 하며, 비좁은 아일이나 좁은 갤리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 계속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또 유니폼은 얼마나 작은지... 디자인은 최고지만 신축성은 최악인 우리 회사의 유니폼은 입으면 저절로 숨이 조여지고 어깨가 말리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업무 환경과 더불어 업무 자체가 늘 상대의 반응을 관찰하고 나를 낮추며 사람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이다 보니 어깨는 더더욱 펼 일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난 유니폼을 입은 내 모습을 보면 멋져 보이기보단 비굴해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옷을 입고 일하며 선배 눈치, 손님 눈치, 사무장님 눈치, 온갖 눈치를 보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내가 눈치를 보면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따라서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실 남편에게 제일 미안한 마음이 크다. 외동아들로 자라며 태생적으로 밝고 눈치 없는 우리 남편은 나를 만나 눈치라는 것을 살피기 시작했다. 음식점에 가서 같이 밥을 먹다 반찬을 리필할 때도 나는 일하는 종업원의 동태를 살피며 많이 바쁘지 않고 적당한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부른다. 또 여러 번 부르지 않고 한 번에 시키려 하는데, 남편은 정말 샐러드 리필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피클을 가져다 달라고 하고 또 피클을 가져다주면 다시 음료를 주문한다. 바쁜데 계속 시키는 남편을 보며 서빙하시는 분의 굳어져 가는 얼굴과 눈빛을 보면 나는 괜히 초조해진다. 굳어져 가는 그들의 얼굴과 차가운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나 또한 혼자 정신없이 널 뛰며 많은승객 응대를 할 때 한 사람이 계속 고추장 시키고, 콜라 시키고, 빵까지 리필하면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하며 세상 웃음기 사라진 얼굴이 되곤 했다. 속으론 '제발 한 번에 시켜줘' 하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남편과 외출할 때마다 제일 많이 한 말이 바로 “오빠 제발 눈치 좀 챙겨!”였던 것 같다.
며칠 전 고깃집에서 또 반찬을 한 개씩 릴레이로 리필하던 남편이 “아차! 한 번에 시켜야하는데...” 하며 내 눈치를 보는 모습에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의 눈치를 본다고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눈치를 준걸까. 내가 바란 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남 눈치 보며 불편해지길 원한 건 아닌데..
나는 우리 아이가 배려심이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지, 눈치 보며 행동하는 사람으로 크길 원치 않는다. 부모의 모든 행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가 늘 남 눈치 보고 남을 의식하는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자랄까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밖에서 아이가 실수할 때도 무심코 “너 이러면 사람들이 다 싫어해!”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이 싫어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게 먼저인데 나도 모르게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이 기준이 되는 것처럼 아이를 가르쳐 왔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뭐 사람들이 좀 싫어하면 어떻나, 좀 싫어해도 되지 않나, 늘 다른 사람 기분 맞추며 살 수는 없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면 됐을 텐데, 매일매일 아이와 남편에게 답답한 유니폼을 입혔던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비굴함도 전염이 되나요?에 대한 대답은 yes이다.
비굴함은 전염이 된다. 눈치는 또 다른 눈치를 낳는다. 오래된 나의 직업병인 체크 강박처럼 눈치 보는 것도 끊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골프장 캐디에게까지 팁 주며 눈치 보는 내 모습,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오늘부터 나는 비굴해지지 않을 테다. 스스로 외치며 다짐해 본다.
과도한 눈치 보기 금지! 눈치 안 본 눈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