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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담는 자(소설)

2장 상나라의 점복사

by 한시을

6화: 갑골문 창제 현장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나


나는 천 년의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잠이 아니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긴 어둠의 시간이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무로와 함께 보낸 세월들,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 움막이 집으로 변하고 마을이 도시가 되는 과정들이 안개처럼 흐릿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또렷해졌다.


내 앞에는 거대한 성벽이 서 있었다. 흙을 다져 만든 높은 성벽. 그 위로 깃발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상나라의 도읍, 은허였다. 갑골문이 막 탄생하기 시작하는 이 시대, 나는 그 역사적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었다.


"너는 누구냐?" 갑옷을 입은 병사가 나를 막아섰다. 그의 손에는 청동 창이 들려 있었다. 햇빛을 받아 차갑게 번쩍였다.


"저는..." 나는 잠시 생각했다. 이번 생에서 내 이름은 무엇이었던가? "저는 복이라고 합니다. 점복을 보는 자입니다."


"점복사?" 병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증명할 수 있느냐?"


나는 품에서 거북 등껍질을 꺼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표면에는 오묘한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천 년 전 내가 직접 새긴 것들이었다.


병사가 등껍질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흠... 진짜 점복사구나. 들어가도 좋다. 하지만 왕궁으로 가려면 대점복사의 허락이 필요하다."


"대점복사?"


"그렇다. 무갑이라는 분이시다. 이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점복사시지."


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정. 그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천 년 전 무로의 후손... 그럴 수도 있을까?


점복의 전당


성 안으로 들어서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넓은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수레가 덜컹거리며 지나가고, 상인들이 큰 소리로 물건을 팔았다. 청동 솥을 파는 자, 옥을 파는 자, 비단을 파는 자들이 길 양쪽에 늘어서 있었다.


"거북 등껍질! 신선한 거북 등껍질!" 한 상인이 외쳤다. 그의 앞에는 크고 작은 등껍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짐승 뼈! 점복용 짐승 뼈!" 다른 상인도 외쳤다. 소뼈, 사슴뼈, 돼지뼈들이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


나는 점복의 전당을 찾아갔다. 큰 건물이었다. 기둥마다 청동 장식이 달려 있었고, 지붕은 붉은 흙으로 덮여 있었다.


문 앞에 서자 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진하고 달콤한 냄새였다. 안에서는 북소리가 둥둥 울리고 있었다.


"들어오너라."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촛불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벽에는 수많은 거북 등껍질과 뼈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대점복사님?"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었지만, 눈만은 살아있었다. 날카롭고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누구냐?"


"복이라고 합니다. 점복을 배우러 왔습니다."


"배우러?" 노인이 비웃었다. "젊은이들은 모두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진짜 점복을 배우려면 십 년은 걸린다."


"그래도 배우고 싶습니다."


노인이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럼 시험을 보자."


첫 번째 시험


노인이 거북 등껍질 하나를 내밀었다.


"이것을 보거라. 무엇이 보이느냐?"


나는 등껍질을 받아 들었다. 표면은 매끄러웠고,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옛날에 불에 구워서 생긴 금들이었다.


"금들이 보입니다."


"그게 다냐?"


나는 더 자세히 들여다봤다. 금들의 패턴, 방향, 깊이를 살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 금들은 무작위가 아니었다. 어떤 규칙이 있었다.


"이것은... 이것은 글자입니다."


노인의 눈이 번쩍였다. "글자라고?"


"네. 이 금들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제가 읽을 수 없을 뿐입니다."


노인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재미있는 녀석이로구나. 그래, 맞다. 이것은 글자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자지."


그가 다른 등껍질을 꺼냈다. "자, 이것을 봐라."


이번 등껍질에는 금뿐만 아니라 새겨진 선들도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칼로 판 선들이었다.


"이것은?" 내가 물었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글자. 생각을 담는 그릇. 말을 기록하는 방법."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드디어 이 순간이 온 것이다. 천 년을 기다린 이 순간이.


"저도... 저도 만들고 싶습니다."


"그럼 먼저 배워야지." 노인이 일어났다. "따라오너라."


점복의 비밀


노인은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뒤뜰에는 큰 화로가 있었다. 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점복이란 무엇이냐?" 노인이 물었다.


"미래를 아는 것입니다."


"틀렸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점복은 신과 대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신에게 묻고, 신은 불을 통해 답한다."


그가 새로운 거북 등껍질을 꺼냈다. 깨끗하고 매끄러운 것이었다.


"자, 이제 배워라. 먼저 등껍질을 준비한다."


그는 등껍질 뒷면에 작은 구멍들을 팠다. 뼛조각으로 조심스럽게 파내는 모습이 마치 예술품을 만드는 것 같았다.


"이 구멍들이 중요하다. 불이 이곳을 통해 전달된다."


똑. 똑. 똑.


구멍을 파는 소리가 고요한 뜰을 가득 채웠다.


"다음은 질문을 한다."


노인이 등껍질을 들고 하늘을 바라봤다. "신이시여, 내일 비가 올까요?"


그리고 등껍질을 불에 가까이 댔다.


지글지글.


열기가 등껍질을 때렸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탄 냄새가 났다.


딱!


갑자기 금이 갔다. 등껍질 표면에 선명한 금이 생겼다.


"보거라." 노인이 등껍질을 보여줬다. "이것이 신의 대답이다."


나는 금을 자세히 봤다. 길고 구불구불한 금이었다. 마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점복사의 일이다."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입니까?"


"금은 사라진다." 노인의 목소리가 슬펐다. "시간이 지나면 금도 희미해지고, 기억도 흐려진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작은 칼을 꺼냈다.


"금 위에 선을 새긴다."


글자의 탄생


노인이 등껍질 위에 칼을 댔다.


쓱. 쓱. 쓱.


칼날이 등껍질을 파며 하얀 가루를 만들었다. 금을 따라 선을 그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이렇게 하면 영원히 남는다." 노인이 말했다. "백 년이 지나도, 천 년이 지나도."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이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갑골문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금을 따라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인이 계속 말했다.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간다니요?"


노인이 다른 등껍질을 꺼냈다. 이것에는 이미 여러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보거라. 이것은 '해'다." 그가 동그란 무늬를 가리켰다.


"이것은 '달'이다." 초승달 모양의 무늬를 가리켰다.


"이것은 '물'이다." 물결 모양의 선들을 가리켰다.


"이것은 '사람'이다." 사람 형태의 그림을 가리켰다.


나는 감격에 떨렸다. "이것들이... 이것들이 글자입니까?"


"그렇다. 그림이면서 동시에 글자다. 보는 것을 그리되, 모두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도록."


"신들린 듯한 깨달음이군요."


"아직 부족하다." 노인이 한숨을 쉬었다. "이것으로는 간단한 것만 표현할 수 있다. 복잡한 생각, 긴 이야기는 담을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인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것을 찾는 것이 너의 일이다."


왕의 부름


그날 저녁, 급한 전령이 왔다.


"왕께서 점복사들을 부르신다!"


노인과 나는 급히 궁으로 향했다.


왕궁은 거대했다. 높은 기둥들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고, 청동 종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병사들이 창을 들고 늘어서 있었다.


대전 안으로 들어가자 왕이 보였다.


무정왕이었다. 젊었지만 위엄이 있었다. 그의 눈은 날카로웠고, 턱선은 강했다. 용포를 입고 옥관을 쓴 모습이 마치 신처럼 보였다.


"대점복사." 왕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일 출정한다. 동쪽 오랑캐들이 변경을 침범했다. 승리할 수 있겠는가?"


노인이 무릎을 꿇었다. "점을 쳐보겠습니다, 전하."


거북 등껍질이 준비되었다. 노인이 등껍질을 들고 기도했다.


"신이시여, 왕의 출정이 승리로 끝날까요?"


불이 등껍질을 달궜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딱! 딱!


금이 두 개 생겼다. 하나는 길고 곧았다. 다른 하나는 짧고 꺾였다.


노인의 얼굴이 굳었다.


"어찌 된 것이냐?" 왕이 물었다.


"전하..." 노인이 머뭇거렸다. "길이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승리의 길, 하나는..."


"하나는 무엇이냐?"


"패배의 길입니다."


전각 안이 조용해졌다. 신하들이 숨을 죽였다.


"그럼 어느 길을 가야 하느냐?" 왕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그것은..." 노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내가 앞으로 나섰다.


"전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운명의 해석


"금을 보십시오." 내가 등껍질을 들어 올렸다. "긴 금은 직진을 뜻합니다. 정면 승부입니다. 짧은 금은 우회를 뜻합니다. 전략적 후퇴입니다."


"그래서?" 왕이 물었다.


"둘 다 옳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무슨 뜻이냐?"


"적이 강하면 우회하십시오. 적이 약하면 직진하십시오. 신은 두 가지 길을 모두 보여주셨습니다. 선택은 전하의 몫입니다."


왕이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재미있는 해석이로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복이라고 합니다, 전하."


"복. 좋은 이름이다." 왕이 일어났다. "내일부터 너도 궁정 점복사로 일하거라."


"감사합니다, 전하!"


새로운 시작


그날 밤, 노인이 나를 불렀다.


"잘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왕의 마음을 읽었구나."


"그저 제가 본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아니다."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너는 특별하다. 글자를 이해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가 품에서 낡은 거북 등껍질을 꺼냈다. "이것을 너에게 준다."


나는 놀라서 등껍질을 받았다. 표면에는 복잡한 무늬들이 가득했다. 오래된 것이었지만, 여전히 선명했다.


"이것은 삼백 년 전 것이다." 노인이 말했다. "우리 점복사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것이지. 이제 네 것이다."


"하지만..."


"받아라." 노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리고 계속 발전시켜라. 더 많은 글자를 만들어라. 더 복잡한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글자를."


나는 등껍질을 가슴에 안았다. 따뜻했다.


"약속합니다. 반드시 완성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이제 진짜 작업을 시작하자."


노인이 나를 비밀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수백 개의 거북 등껍질과 뼈들이 쌓여 있었다. 각각에 다른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만든 글자들이다."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아직 체계가 없다. 너의 임무는 이것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글자들을 추가하는 것이다."


나는 등껍질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해, 달, 별, 산, 물, 나무, 사람, 짐승... 수많은 것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날 밤부터 나의 진짜 일이 시작되었다.


갑골문을 만드는 일. 생각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 천 년 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 일이.


똑. 똑. 똑.


뼛조각이 거북 등껍질을 파는 소리가 밤새 울려 퍼졌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진정한 문자의 탄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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