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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담는 자(소설)

2장 상나라의 점복사

by 한시을

8화: 문자와 권력의 탄생


의심의 시작


사흘이 지났다. 왕비의 병환은 차츰 나아지고 있었다.


"복!" 노인 무갑이 급히 나를 불렀다. 그의 얼굴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이 서려 있었다. "어젯밤 일을 들었느냐?"


"무슨 일입니까?"


"궁궐 창고에 불이 났다. 제사용 소 십여 마리가 죽었다."


내 가슴이 철렁했다. "백 마리 소를 바쳐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 노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군가 방해하고 있다. 왕비가 회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 자가."


그때 전당 밖에서 갑옷 소리가 들렸다. 탁. 탁. 탁. 무거운 발걸음이 가까워졌다.


"대점복사님!" 근위병이 문을 열었다. "대신 장후께서 오셨습니다."


노인과 내가 급히 밖으로 나갔다.


장후. 왕의 오른팔이자 조정의 실세였다. 그의 키는 우뚝했고, 눈빛은 매서웠다. 검은 관복이 바람에 펄럭였다.


"대점복사." 장후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왕비의 점복 결과를 다시 확인하고 싶소."


"무엇이 문제입니까?" 노인이 물었다.


"신이 정말 백 마리 소를 원한다고 했는지 확실하지 않소." 장후가 한 걸음 다가왔다. "혹시 잘못 읽은 것은 아닌지."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점복 결과를 의심한다는 것은 점복사를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나아가 신의 뜻을 거역한다는 뜻이었다.


"대신."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오십 년간 점복을 해왔습니다. 한 번도 잘못 읽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지." 장후가 손을 내밀었다. "등껍질을 보여주시오."


권력의 야심


전당 안으로 들어가자 노인이 그날의 거북 등껍질을 가져왔다.


장후가 등껍질을 집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새겨진 글자들을 더듬었다.


"이것이... 신의 말씀이라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장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재미있군. 이 작은 선들이 그토록 큰 의미를 담고 있다니."


그가 나를 바라봤다. "젊은 점복사, 네가 이것을 새겼다고?"


"네, 대신."


"글자를 만드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느냐?"


"노인께서 가르쳐주셨습니다."


"흠." 장후가 등껍질을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이 글자들을 읽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노인이 대답했다. "점복사들뿐입니다. 그리고 몇몇 왕실 서기들."


"적은 수로군." 장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다면 이 글자들을 가진 자가 곧 권력을 가진 것이 아닌가?"


그 말에 나는 소름이 돋았다. 장후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 것 같았다.


"대신, 무슨 뜻입니까?" 노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간단하오." 장후가 일어났다. "왕께서는 신의 뜻을 알기 위해 점복사들에게 의지하시오. 하지만 그 신의 뜻을 해석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오. 점복사들이오."


그가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만약 점복사들이 거짓을 말한다면? 신의 뜻이라 속인다면?"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신을 속이는 것은 죽음보다 무서운 일입니다!"


"그렇소. 하지만..." 장후가 등껍질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 글자들을 읽을 수 있는 자가 소수라면, 그 소수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되는 것 아니오?"


노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대신." 내가 입을 열었다. "글자는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고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장후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순진하구나, 젊은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가 등껍질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지식이다. 앎이다. 그리고 이 글자들이 바로 그것을 담는 그릇이지."


위험한 제안


장후가 품에서 작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옥구슬 소리가 짤랑거렸다.


"대점복사. 내게 이 글자를 가르쳐주시오."


노인이 뒤로 물러났다. "대신, 점복사가 아닌 자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은 금기입니다."


"금기?" 장후가 웃었다. "누가 만든 금기인가? 점복사들이 만든 것 아닌가?"


"조상들께서 정하신 규율입니다!"


"조상들이라..." 장후가 비단 주머니를 흔들었다. "이 안에 옥이 오십 개 들어 있소. 대점복사의 가족들이 평생 편히 살 수 있는 돈이오."


노인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신성한 글자를 돈으로 거래할 수 없습니다."


"그럼..." 장후의 목소리가 차갑게 식었다. "강제로라도 배워야겠군."


"무슨 뜻입니까?"


장후가 문을 향해 손짓했다. 밖에서 병사 넷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창이 들려 있었다.


"대점복사. 마지막으로 묻겠소. 가르쳐주시겠소?"


"안 됩니다!" 노인이 소리쳤다.


"그렇다면..." 장후가 나를 가리켰다. "저 젊은이를 데려가시오."


"안 돼!" 노인이 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병사들이 거칠게 노인을 밀쳤다. 노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뚝.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스승님!" 내가 달려가려 했지만 병사들이 내 팔을 붙잡았다.


"데려가라." 장후가 명령했다.


나는 끌려 나갔다. 노인의 외치는 소리가 멀어졌다. "복! 복아!"


지하 감옥


차갑고 습한 곳이었다.


돌벽, 쇠사슬, 그리고 어둠. 지하 감옥이었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렸다.


"여기서 생각해 봐라." 병사가 쇠창살을 닫으며 말했다. "대신께 협조할지 말지를."


발소리가 멀어졌다. 횃불빛이 사라졌다. 완전한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차가운 벽에 기대앉았다. 온몸이 떨렸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분노 때문이었다.


'장후가 글자를 독점하려 한다...'


갑자기 천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황하 유역에서 무로가 했던 말.


"무진아, 네가 만드는 글자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소수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이제 안다. 글자가 권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권력을 악용하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똑.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장후에게 굴복해야 하나? 아니면...'


그때 작은 빛이 보였다. 누군가 횃불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냐?"


빛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얼굴이 드러났을 때, 나는 숨이 멎었다.


예상치 못한 동맹


젊은 여인이었다.


스물 남짓한 나이,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소박한 궁녀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평범하지 않았다. 지혜롭고, 결연했다.


"조용히 하세요."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쇠창살에 열쇠를 꽂았다. 삐걱. 문이 열렸다.


"당신은..."


"저는 연화입니다. 왕비 마마의 시녀입니다." 그녀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빨리 나가야 해요.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왜..."


"설명은 나중에요. 지금은 따라오세요!"


우리는 어둠 속을 달렸다.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올라가고, 좁은 통로를 빠져나갔다. 연화는 궁궐 구조를 완벽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침내 우리는 작은 정원에 도착했다. 달빛이 연못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는 안전해요." 연화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병사들이 잘 오지 않는 곳이에요."


"왜... 왜 저를 구해주셨습니까?"


연화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 만든 글자를 봤어요. 왕비 마마의 점복 결과를."


"그게 무슨..."


"놀라웠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작은 선들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니. 저는... 저는 평생 글자를 배우고 싶었어요."


"왜 배우고 싶었습니까?"


"제 어머니는 약초를 캐는 분이었어요." 연화가 먼 곳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수많은 약초의 이름과 효능을 알고 계셨어요. 하지만 글자를 모르셔서 모든 것을 기억에만 의존하셨죠. 그러다가... 그러다가 병이 들어 기억을 잃으셨어요. 모든 지식이 사라졌어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만약 어머니께서 글자를 아셨다면, 그 지식을 기록할 수 있었다면, 지금도 사람들을 치료하실 수 있었을 거예요."


나는 그녀의 고통을 이해했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글자는 남는다. 그것이 글자의 힘이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당신을 도울 수 있습니까?"


"가르쳐주세요." 연화가 내 손을 잡았다. "글자를 가르쳐주세요. 저는... 저는 이 글자가 소수의 권력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요.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어야 해요."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좋습니다.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비밀 수업


그날 밤부터 우리는 비밀리에 만났다.


정원의 작은 정자에서, 달빛 아래서, 나는 연화에게 글자를 가르쳤다.


"이것은 해를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日."


나는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글자를 그렸다. 연화가 조심스럽게 그 모양을 따라 그렸다.


"둥근 원 안에 선 하나..."


"그렇습니다. 해의 모습을 본뜬 것이죠."


"아름다워요." 연화가 감탄했다. "간단하지만 정확해요."


"이것은 달입니다. 月."


초승달 모양의 글자를 그렸다.


"이것은 물입니다. 水."


흐르는 물줄기를 세 갈래로 표현한 글자.


"이것은 불입니다. 火."


타오르는 불꽃의 모습.


연화는 빠르게 배웠다.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하룻밤에 열 개의 글자를 익혔고, 사흘이 지나자 서른 개를 완벽하게 기억했다.


"당신은 천재입니다." 내가 감탄했다.


"아니에요." 연화가 고개를 저었다. "단지... 단지 너무나 배우고 싶었어요. 평생."


열흘이 지나자 연화는 간단한 문장을 만들 수 있었다.


"日出. 해가 뜬다."


"水流. 물이 흐른다."


"火明. 불이 밝다."


"대단합니다!" 내가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때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


우리는 일제히 돌아봤다. 어둠 속에 누군가 서 있었다.


위기의 순간


"재미있는 광경이로군."


장후였다. 그의 뒤로 병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횃불빛이 그의 얼굴을 불길하게 비췄다.


"대신..." 연화가 뒤로 물러났다.


"왕비의 시녀가 점복사와 은밀히 만나다니." 장후가 비웃었다. "더욱이 금기를 어기고 글자를 배우다니."


"금기가 아닙니다!" 내가 소리쳤다. "글자는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것?" 장후가 한 걸음 다가왔다. "순진한 생각이로군.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의 것은 없다. 권력은 항상 소수가 독점한다."


"틀렸습니다!" 연화가 나섰다. "글자는 지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식에 접근할 권리가 있습니다!"


"권리?" 장후가 껄껄 웃었다. "여자 주제에 권리를 논하다니. 재미있구나."


그가 손짓하자 병사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둘 다 잡아라. 왕께 모반죄로 고발하겠다."


병사들이 다가왔다. 창끝이 우리를 향했다.


그 순간, 정원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모두가 그쪽을 돌아봤다. 횃불을 든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장선 사람은...


"왕비 마마!" 연화가 외쳤다.


왕비였다. 병환에서 회복한 그녀가 직접 나온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만은 강했다.


"장후." 왕비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마..." 장후가 당황했다. "이들이 금기를 어기고..."


"금기?" 왕비가 한 걸음 다가왔다. "글자를 배우는 것이 금기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조상들의 규율이..."


"조상들의 규율은 글자를 신성하게 다루라는 것이지, 독점하라는 것이 아니다." 왕비가 단호하게 말했다. "연화가 글자를 배우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장후의 얼굴이 굳었다.


"더욱이..." 왕비가 나를 바라봤다. "이 젊은 점복사 덕분에 나의 병환이 나았다. 그를 해치는 자는 나를 해치는 것과 같다."


장후가 무릎을 꿇었다. "마마, 소신은 다만..."


"물러가라." 왕비의 명령이 떨어졌다. "더 이상 이들을 괴롭히지 마라."


장후가 이를 갈며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왕비의 명령이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가 병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시작


왕비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마마." 연화가 깊이 절했다.


"아니다." 왕비가 그녀를 일으켰다. "네가 배우려는 의지가 대단하구나."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젊은 점복사.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복이라고 합니다, 마마."


"복." 왕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이름이다. 너는 특별한 재능이 있구나. 글자를 더 아름답게, 더 정확하게 만드는 재능."


"감히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다." 왕비가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도 계속 글자를 발전시켜라. 그리고..." 그녀가 연화를 바라봤다. "배우고 싶어하는 자들에게 가르쳐주어라."


"하지만 마마..." 내가 망설였다. "장후 대신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알고 있다." 왕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장후는 권력욕이 강한 자다. 그가 글자를 독점하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을 내렸다.


"내가 왕께 아뢰겠다. 글자를 더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점복사들만이 아니라, 서기들, 관리들, 그리고 배우고 싶어하는 모든 자들에게."


"정말입니까?" 연화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다. 글자는 나라의 힘이다. 소수가 독점할 때 그것은 독이 되지만, 많은 사람이 공유할 때 그것은 약이 된다."


왕비가 하늘을 바라봤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는 글자를 아는 자가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라를 발전시킬 것이다."


나는 감격에 차서 무릎을 꿇었다. "마마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조용한 반란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왕의 명으로 글자를 배우는 학당이 세워졌다. 처음에는 작았다. 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모였다. 하지만 점점 늘어났다.


나는 매일 학당에서 가르쳤다.


똑. 똑. 똑.


학생들이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소리 같았다.


"스승님, 이 글자는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배움'을 나타내는 글자다. 學. 집 안에서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지."


"아, 그렇군요!"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은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대하듯 글자를 배웠다. 지식에 목말라 있었다.


연화도 학당에 왔다. 그녀는 이제 내 조교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더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글자는 생명입니다." 그녀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사라지는 기억을 영원히 남기는 생명."


한 달이 지나자 학생이 백 명이 되었다. 석 달이 지나자 삼백 명이 되었다.


하지만 노인 무갑은 걱정했다.


"복아, 이렇게 빠르게 퍼지면..." 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장후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조심해라. 권력을 잃는 자는 무서운 법이다."


그 경고는 옳았다.


어느 날 밤, 학당에 불이 났다. 나무판들이 모두 타버렸다. 학생들이 며칠 밤을 새워 만든 글자들이 재가 되었다.


"누가 그랬을까요?" 연화가 재를 보며 울었다.


"장후의 짓일 것이다." 내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나무판을 구했고, 다시 글자를 새겼다. 이번에는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똑. 똑. 똑.


밤새 송곳 소리가 울렸다.


마지막 경고


한 달 후, 장후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병사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학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복."


"대신."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분노가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무언가도 있었다. 체념 같은 것.


"너는 이겼다." 장후가 말했다. "글자는 이제 모든 사람의 것이 되었다."


"대신도 배우실 수 있습니다."


"나?" 장후가 쓴웃음을 지었다. "늙은 개가 새로운 재주를 배울 수 있겠는가?"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하지만 명심해라, 젊은이. 글자가 퍼지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은 글자가 지식을 담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거짓을 담을 것이다.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사람을 속이는 무기가 될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에 진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글자는 칼과 같다." 장후가 계속 말했다. "선한 자의 손에 들리면 정의를 지키지만, 악한 자의 손에 들리면 사람을 죽인다."


그가 문을 향해 걸어가다가 멈췄다.


"조심해라, 복. 네가 만든 이 글자들이 천 년 후 어떻게 쓰일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방식으로 쓰일 것이다."


그가 사라졌다. 나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후의 경고가 가슴에 무겁게 눌렸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글자는 필요하다는 것을. 완벽하지 않더라도, 악용될 수 있더라도.


왜냐하면 글자 없이는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기억은 사라지고, 지혜는 흩어지고, 역사는 왜곡된다.


적어도 글자가 있으면 진실을 기록할 수 있다. 그리고 후손들이 그 진실을 읽고 판단할 수 있다.


새로운 여정의 시작


석 달이 더 지났다.


학당은 이제 상나라 전역으로 퍼졌다. 글자를 아는 자가 천 명을 넘어섰다. 서기들이 양성되었고, 관리들이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점복만 하는 자가 아니었다. 교사가 되었다. 글자를 전파하는 자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연화가 나를 찾아왔다.


"스승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이냐?"


"이 글자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백 년 후에는? 천 년 후에는?"


나는 먼 하늘을 바라봤다.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더 간단해질 것이다.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쓸 것이다."


"그럼 다른 곳에서도 글자가 생길까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저 멀리 서남쪽, 높은 산들 너머에서도."


"어떤 글자일까요?"


"전혀 다른 글자일 것이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모양으로 뜻을 담지만, 그들은 소리 자체를 담을 것이다."


"소리를?"


"그렇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잠시 멈췄다. "언젠가 그 두 전통이 만나 하나가 될 것이다."


연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몰라도 된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품속의 거북 등껍질을 꺼냈다.


천 년 전, 황하 유역에서 처음 그림을 새기던 그 등껍질. 세월이 지나 낡았지만, 그림들은 여전히 선명했다.


나는 새로운 등껍질을 꺼내 송곳을 들었다.


똑. 똑. 똑.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을 새기기 시작했다. 장후와의 대결, 연화의 배움, 학당의 확장, 그리고 글자의 승리.


하지만 마지막에 나는 장후의 경고도 함께 새겼다.


"글자는 칼과 같다. 선한 자의 손에 들리면 정의를 지키지만, 악한 자의 손에 들리면 사람을 죽인다."


후손들이 이것을 읽고 조심하기를 바라며.


히말라야로 가는 길


사흘 후, 노인 무갑이 나를 불렀다.


"복아, 네게 부탁이 있다."


"말씀하십시오, 스승님."


노인이 낡은 지도를 펼쳤다. 황하 유역부터 시작해서 서남쪽으로 이어지는 긴 선이 그어져 있었다.


"여기를 봐라." 그가 지도 끝을 가리켰다. "높은 산들이 있는 곳이다."


"히말라야..."


"그렇다. 거기서 우리 동이족의 다른 무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천 년 전에 헤어진 형제들이."


나는 숨을 죽였다. 실마의 무리. 서남쪽으로 떠난 그들.


"그들에게 이 글자를 전해주고 싶다." 노인이 거북 등껍질 몇 개를 내밀었다. "우리가 만든 이 문자를. 그리고 그들이 만든 것이 있다면 배워오너라."


"저를... 보내시는 겁니까?"


"그렇다." 노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너는 이곳에서 할 일을 다 했다. 이제 새로운 땅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스승님, 학당은..."


"연화가 있지 않느냐."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그 아이가 너보다 더 잘할 것이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복아." 노인이 내 손을 잡았다. "너에게는 특별한 운명이 있다. 나는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알았다. 너는 단순한 점복사가 아니라는 것을."


"무슨..."


"너는 문자의 화신이다." 노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러 생을 살면서 문자를 전파하는 자. 그것이 네 숙명이다."


나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노인은 알고 있었다. 나의 진짜 정체를.


"가거라." 노인이 나를 밀어냈다. "히말라야로.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문자를 만나거라. 소리를 담는 문자를."


작별


일주일 후, 나는 떠날 준비를 마쳤다.


연화가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다.


"스승님... 정말 가시는 거예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래야 한다."


"언제 돌아오세요?"


"모르겠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그럼..." 연화가 흐느꼈다.


"하지만 너는 여기 남아야 한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이 글자들을 지켜야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가르쳐야 한다."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 아니, 너만이 할 수 있다."


나는 품에서 작은 거북 등껍질을 꺼냈다. 거기에는 내가 처음 새긴 글자들이 있었다.


"이것을 너에게 준다. 첫 번째 기록이다. 잘 보관해라."


연화가 조심스럽게 등껍질을 받았다. "평생 간직하겠어요."


해가 뜨고 있었다. 떠날 시간이었다.


나는 작은 보따리를 메고 성문을 나섰다. 뒤돌아보니 연화가 성벽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서남쪽을 향해 걸었다. 멀고 먼 여정이 시작되었다.


히말라야.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만나게 될까? 실마의 후손들은 어떤 문자를 만들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 그곳에서 나는 누구를 만나게 될까?


품속의 등껍질이 따뜻했다. 천 년의 기억이 담긴 그것이 나를 이끌고 있었다.


똑. 똑. 똑.


멀리서 물방울 소리가 들렸다. 아니, 송곳 소리였다. 미래에서, 과거에서, 그리고 영원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오직 앞으로.


왜냐하면 나는 소리를 담는 자니까. 영원한 기록자니까.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나는 내 운명의 반쪽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자의 뜻과 범어의 소리가 만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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