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상나라의 점복사
아침 일찍, 노인이 나를 깨웠다.
"일어나라, 복.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파고들었다. 별들이 여전히 하늘에 박혀 있었다.
천막 밖으로 나가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한 젊은 수행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카일라다." 노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라. 저 친구는 외부인을 경계하지."
"왜입니까?"
"우리의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이 강해서지. 좋은 마음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
카일라가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그의 걸음걸이는 공격적이었다.
"할아버지." 그가 노인을 불렀다. "저 자를 정말 믿으십니까?"
"카일라, 무례하구나."
"천 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서 동이족이라고 하면 믿으라고요?"
"거북 등껍질을 봤지 않느냐. 천 년 전 기록이..."
"위조할 수 있습니다!" 카일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자가 정말 우리 형제인지 증명이 필요합니다."
다른 수행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찬성하는 자도, 반대하는 자도 있었다. 공기가 팽팽해졌다.
그때 한 여인이 천막에서 나왔다.
"카일라, 그만해요."
젊은 여인이었다. 스물 남짓한 나이.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었고, 소박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강했다.
"소마..." 카일라가 뒤를 돌아봤다.
"할아버지께서 결정하신 일이에요. 당신이 이러면 안 돼요."
소마. 노인의 손녀라고 했다.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호기심과 경계가 섞인 눈빛.
"하지만 소마, 생각해 봐." 카일라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만약 저자가 거짓말쟁이라면? 우리의 비밀을 훔쳐가려는 자라면?"
"그럼 시험하면 되잖아요."
"시험?"
"네." 소마가 나를 바라봤다. "성스러운 동굴에 가는 거예요. 진짜 동이족이라면, 조상의 혼이 응답할 거예요."
카일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좋은 생각이군. 그럼 오늘 당장 시험하지."
해가 뜬 후, 카일라가 나를 데리러 왔다.
"따라오시오."
그의 태도는 여전히 차갑고 적대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따라갔다. 그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산을 올랐다. 가파른 길이었다. 눈이 쌓여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졌다.
"저 위에 동굴이 있소." 카일라가 가리켰다. "성스러운 동굴. 실마 족장님께서 처음 명상하신 곳이지."
동굴 입구가 보였다. 좁고 어두웠다. 차가운 바람이 안에서 불어 나왔다.
"들어가시오. 해가 질 때까지 명상하시오. 조상의 소리를 들으면 통과요."
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카일라가 입구를 막았다. 돌을 쌓아서.
"잠깐, 뭐 하는 겁니까?"
"시험이오. 진정한 수행자라면 문제없을 것이오."
마지막 돌이 쌓였다. 빛이 차단되었다. 완전한 어둠이 나를 삼켰다.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시간? 두 시간?
완전한 어둠. 완전한 고요.
나는 바닥에 앉았다. 차가운 돌이 엉덩이를 얼렸다.
'명상을 하라고 했지.'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는 눈을 뜨나 감으나 똑같았지만.
숨을 쉬었다. 깊게, 천천히.
들숨, 날숨. 들숨, 날숨.
처음에는 잡념이 많았다. 카일라의 적대감, 이 시험의 위험성, 빠져나갈 방법...
하지만 점점 조용해졌다.
그리고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희박했다. 숨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건...'
산 정상 근처였다. 공기가 부족했다. 그리고 이 동굴은... 환기가 안 됐다.
'카일라가 일부러...'
현기증이 났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가슴이 답답했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웅...
아주 낮고 깊은 울림. 동굴 벽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안에서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웅...웅...
점점 명확해졌다. 아니, 내가 점점 더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소리 속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환영처럼.
한 남자가 이 동굴에 앉아 있었다. 천 년 전. 실마였다.
"형님..."
실마가 나를 바라봤다. 아니, 미래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진아. 네가 올 줄 알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들렸다. 텔레파시처럼.
'형님, 저는...'
'괜찮다. 숨을 쉬어라. 내가 가르쳐준 대로.'
실마가 손짓했다. 호흡법을 보여줬다. 느리고 깊게. 적은 공기로도 버틸 수 있는 방법.
나는 따라 했다.
신기하게도 현기증이 가셨다. 숨이 편해졌다.
'고맙습니다, 형님.'
'무진아. 여기서 배워라. 소리의 비밀을. 그리고 언젠가, 그것을 완성해라.'
실마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계속 울렸다.
웅...웅...웅...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돌 쌓인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입구를 열고 있었다.
빛이 들어왔다. 눈이 부셨다.
"복님!" 소마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수행자 둘도 함께.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미안해요. 카일라가... 그가 당신을 위험한 동굴로..."
소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저도 늦게 알았어요. 이 동굴은 공기가 부족해서 보통 사람은 두 시간도 못 버텨요. 그런데 해가 거의 지는데도..."
그녀가 나를 부축했다. 밖으로, 신선한 공기로.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였다.
"정말 죄송해요." 소마가 고개를 숙였다. "동쪽 형제가 죽을 뻔했어요. 천 년을 기다렸는데..."
"괜찮습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히려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네?"
"실마 족장님을 만났습니다. 환영으로."
소마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조상님을?"
"네. 그분이 가르쳐주셨습니다. 호흡법을."
소마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떨리는 손이었다.
"그럼... 그럼 정말 우리 형제시네요. 조상님께서 인정하신 거예요."
그 순간, 우리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마을로 돌아오자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복!" 그가 나를 껴안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카일라!" 노인이 소리쳤다.
카일라가 천막에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미 소마에게 혼났는지, 기가 죽어 있었다.
"네가 한 짓을 안다."
카일라가 고개를 숙였다.
"외부인이 두려웠습니다. 우리의 전통을 훼손할까..."
"두려움이 증오가 되었구나." 노인이 슬프게 말했다. "카일라, 너는 한 달간 마을에서 추방이다. 산 아래로 내려가 반성하거라."
"...네."
"그리고 돌아와서는 복에게 사죄해라. 진심으로."
카일라가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미안함, 부끄러움,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경계심.
"죄송합니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카일라가 짐을 챙겨 떠났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는 것.
다음 날부터 진짜 수업이 시작되었다.
노인이 가르쳤고, 소마가 도왔다.
"자, 복. 이제 소리를 배워보자."
우리는 동굴로 갔다. 어제 그 위험한 동굴이 아니라, 더 낮은 곳의 안전한 동굴.
"앉아라."
앉았다. 소마도 옆에 앉았다.
"숨을 쉬어라. 깊게, 천천히."
숨을 쉬었다. 들숨, 날숨.
"이제 소리를 내보거라. 옴..."
"옴..."
작은 소리가 나왔다.
"아니다. 더 깊이. 배 끝에서부터."
"웅..."
"그렇다! 느껴지느냐? 네 소리가 동굴과 하나 되는 것을."
정말 그랬다. 내 목소리가 벽을 타고 퍼져나가고, 산의 울림과 합쳐졌다.
소마가 함께 소리를 냈다. "웅..."
두 목소리가 어우러졌다. 화음을 이뤘다.
"아름답구나." 노인이 웃었다. "둘이 함께하니 더 좋군."
며칠 동안 우리는 매일 함께 수업했다.
노인이 가르치고, 소마가 시범을 보이고, 나는 배웠다.
"아..." 입을 크게 벌려 내는 소리.
"이..." 입을 옆으로 당겨 내는 소리.
"우..." 입을 오므려 내는 소리.
각 소리마다 의미가 있었다. 시작, 중간, 끝. 열림, 닫힘, 흐름.
"이 소리들을 조합하면 모든 말을 만들 수 있다." 노인이 설명했다. "한정된 소리로 무한한 말을. 그것이 범어의 힘이다."
나는 감탄했다. 갑골문은 달랐다. 새로운 뜻마다 새로운 글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범어는 소리만 조합하면 됐다.
밤에는 소마와 대화했다.
"복님은 정말 특별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하루 만에 배우시는 걸 보면..."
"그렇게 빠른가요?"
"네. 보통은 몇 달 걸려요. 근데 복님은... 마치 전생에 이미 아셨던 것처럼."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몰랐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소마." 내가 물었다. "왜 소리를 신성하게 여깁니까?"
그녀가 하늘을 바라봤다. 별이 빛나고 있었다.
"소리는 우주의 진동이에요. 모든 것이 소리로 이루어져 있어요. 별도, 산도, 우리도."
"모든 것이?"
"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에요. 하지만 명상하면 들려요. 우주의 울림이."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복님도 들으셨잖아요. 어제 동굴에서. 조상님의 목소리를."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소리의 신성함이에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전달되는 거죠."
나는 전율했다. 그녀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일주일 후, 노인이 특별한 것을 보여줬다.
"복, 이것을 보거라."
아주 오래된 돌이었다. 표면이 매끄럽게 닳아 있었다.
"이것은 천 년 전, 실마 족장님께서 가져오신 것이다."
돌에는 원시적인 무늬가 있었다. 갑골문도 아니고, 범어도 아니었다. 점과 선의 단순한 조합.
"이것이 씨앗이다." 노인이 말했다. "우리 동이족의 원초적 문자."
나는 숨을 죽였다.
"실마 족장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해. '이것이 우리의 뿌리다. 잊지 말라'라고."
"이게... 갑골문의 시작이기도 하군요."
"그렇다. 그리고 범어의 시작이기도 하지."
노인이 내 손에 돌을 쥐여줬다.
"복, 자네는 이제 양쪽을 다 알게 되었다. 동쪽의 갑골문도, 서쪽의 범어도."
"네."
"그렇다면 이 씨앗을 지켜라. 그리고 언젠가..." 노인의 눈이 멀리를 바라봤다. "언젠가 이 씨앗에서 새로운 문자를 싹 틔워라."
"새로운 문자요?"
"그렇다. 갑골문의 명확함과 범어의 정교함을 모두 가진 문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완벽한 문자."
소마가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도 기대가 가득했다.
"그것은 자네 생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노인이 말했다. "아마 몇 백 년, 천 년이 더 걸릴 것이다. 하지만 씨앗은 지금 심어진다."
나는 돌을 꽉 쥐었다. 따뜻했다.
"이것을 '언어의 씨앗'이라 부르거라. 그리고 후손에게 전하거라."
그날 밤, 소마가 나를 찾아왔다.
"복님, 잠 안 주무세요?"
"별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옆에 앉았다. 어깨가 스쳤다.
"복님은 정말 특별한 분이세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걸 이해하시잖아요. 갑골문도, 범어도. 마치... 마치 이 모든 걸 이미 아셨던 것처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혹시..." 소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복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신 건 아닐까요?"
"무슨 뜻입니까?"
"스승님들이 말씀하세요.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전설. 시간을 넘어 환생하는 자가 있다고. 문자를 지키는 자라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어떻게...
"그게... 복님이신 거 아닐까요?"
나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럼..." 소마가 미소를 지었다. "영광이에요. 그런 분을 만난 게."
그녀가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복님, 약속하세요. 우리가 배운 걸 잘 지켜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완벽한 문자를 만들어주세요."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망설이더니 말했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달빛 아래 그녀의 얼굴이 빛났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미소를 지었다. "만약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요."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별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히말라야에서 배운 것은 단순한 범어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과 사람의 연결. 시간을 넘는 약속. 그것이 진짜 언어의 씨앗이라는 것을.
품속의 원시 돌이 따뜻했다. 천 년 전 조상들이 품었던 열망.
기억하고, 전하고, 연결되고 싶다는.
그것이 문자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