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리를 담는 자(소설)

2장 상나라의 점복사

by 한시을

9화: 히말라야를 향한 첫 여정


서쪽으로, 서쪽으로


상나라 성문을 나선 지 한 달이 지났다.


황토 평원이 끝나고 언덕이 시작되었다. 그 언덕이 점점 높아지더니 작은 산이 되었다. 발밑의 흙이 바뀌었다. 붉은 황토에서 회색 돌로, 그리고 점차 하얀 모래로.


나는 하루에 한 번씩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멀리 상나라가 있는 동쪽. 연화가 있는 곳. 학당이 있는 곳. 하지만 갈수록 그 방향은 희미해졌다.


품속의 거북 등껍질들이 무거웠다. 노인 무갑이 준 것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갑골문 기록들. 이것을 서남쪽 형제들에게 전해야 했다.


"정말 그들이 있을까?"


나는 혼잣말을 했다. 천 년 전 헤어진 실마의 무리. 그들은 정말 살아남았을까? 그들의 후손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작은 동굴을 찾아 쉬기로 했다. 불을 피우고 말린 고기를 씹었다. 딱딱하고 짰지만 이것이 전부였다.


똑. 똑. 똑.


나는 송곳을 꺼내 바위에 오늘의 여정을 새겼다. 지나온 길, 본 것들, 느낀 것들. 언젠가 누군가 이것을 보고 나의 발자취를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밤이 깊어졌다. 별들이 쏟아질 것 같았다. 상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별들이었다. 더 많고, 더 밝았다.


"서남쪽..."


나는 별들을 보며 방향을 확인했다. 노인이 가르쳐준 별자리. 저 별을 따라가면 히말라야에 닿는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걸릴까? 한 달? 석 달? 일 년?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걸어갈 뿐이었다. 앞으로, 오직 앞으로.


첫 번째 만남


두 달째 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작은 마을이었다. 스무 채 남짓한 흙집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양을 치고 있었다. 메에에... 양울음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채웠다.


"누구냐!" 한 남자가 나를 보고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돌창이 들려 있었다.


"저는 동쪽에서 온 나그네입니다." 나는 두 손을 들어 보였다. "해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렸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동쪽?" 그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먼 곳에서?"


"두 달을 걸었습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그렇게 먼 곳을? 왜?"


"서남쪽으로 가야 합니다. 높은 산이 있는 곳으로."


"히말라야를 말하는 건가?" 남자가 놀랐다. "그곳은 신들의 산이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그래도 가야 합니다."


남자가 한참 나를 바라보더니 돌창을 내렸다. "들어와라. 하룻밤 묵어가거라."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동쪽에서 왔다고?" 한 노파가 물었다. "거기는 큰 나라가 있다던데?"


"그렇습니다. 상나라입니다."


"상나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들어본 적이 있어. 왕이 있고, 성벽이 있고, 수많은 사람이 산다던데."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좋은 곳을 떠났지?" 남자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찾아야 할 것이 있어서입니다."


"무엇을?"


"형제들을."


실마의 전설


그날 밤, 모닥불 앞에 둘러앉았다.


마을 사람들이 양고기를 구웠다. 지글지글 기름이 떨어지며 불꽃이 튀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랜만에 맡는 따뜻한 음식 냄새였다.


"형제를 찾는다니..." 노파가 말했다. "혹시 천 년 전 이야기를 아는가?"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우리 조상들의 전설이지." 노파의 눈이 반짝였다. "천 년 전, 동쪽에서 사람들이 왔다고 해. 황하라는 큰 강에서 도망쳐 온 사람들."


"그들이..."


"그래. 그들의 우두머리 이름은 실마였다고 해. 서남쪽을 향해 간 사람."


나는 숨을 멎었다. 실마. 정말로 실마였다.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더 서쪽으로." 노파가 저 멀리를 가리켰다. "높은 산을 넘어. 하지만 그 후로는 소식이 없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한 젊은이가 끼어들었다. "가끔 상인들이 와. 저 서쪽에서. 그들이 말하길, 높은 산 너머에 신비한 사람들이 산다고."


"신비한 사람들?"


"그래. 그들은 소리를 신성하게 여긴다고 해. 노래하듯 말한다고. 그리고 명상을 한다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들이 실마의 후손일까?


"그곳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석 달은 걸릴 거야." 남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위험해. 길이 험하고, 짐승들이 많아. 혼자서는 불가능해."


"그래도 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젊은이는 용감하구나." 노파가 말했다. "하지만 용감함만으로는 부족해. 지혜도 필요하지."


그녀가 작은 돌 조각을 내밀었다. 희끄무레한 돌이었다. 마치 눈처럼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이것을 가져가거라. 히말라야의 돌이야. 우리 할아버지께서 젊었을 때 거기서 가져온 거지. 이것이 너를 보호해 줄 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돌을 받았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자가 말했다. "내일 아침 식량을 줄게. 그리고 따뜻한 옷도. 산은 추워. 동쪽과는 다르지."


나는 깊이 절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산의 시작


사흘 후, 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언덕이었다. 하지만 점점 가팔라졌다. 숨이 찼다.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나무들도 달라졌다. 낮은 곳에서는 떡갈나무와 소나무였지만, 높아질수록 키 작은 관목들만 보였다. 그리고 더 올라가자 나무조차 사라졌다. 바위와 눈만 남았다.


눈.


평생 몇 번밖에 본 적 없는 눈이 산을 덮고 있었다. 하얗고 차가웠다. 발을 디딜 때마다 뽀드득 소리가 났다.


"춥다..."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마을에서 받은 두꺼운 옷을 입었지만 부족했다.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앞으로, 계속 앞으로.


해가 질 무렵, 나는 작은 동굴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바람이 막혔다. 조금 나았다.


불을 피우려 했지만 나무가 없었다. 마을에서 가져온 마른 나뭇가지 몇 개가 전부였다. 아껴 써야 했다.


똑. 똑. 똑.


나는 동굴 벽에 오늘의 여정을 새겼다. 산의 높이, 눈의 깊이, 추위의 정도. 모든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품에서 거북 등껍질 하나를 꺼냈다. 천 년 전 실마가 서남쪽으로 떠나던 날을 새긴 것.


"실마 형님..."


나는 등껍질을 쓰다듬었다. 형님도 이 길을 걸었을까? 천 년 전, 이 험한 산을 넘었을까?


"형님의 후손들을 찾을 수 있을까?"


품속의 옥구슬이 따뜻했다. 노인 무갑이 준 것. 진정한 스승을 만나면 보이라고 했던 것.


그 스승은 누구일까? 혹시 실마의 후손 중에?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느낌만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중요한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는.


눈보라


이튿날, 눈보라가 시작되었다.


휘이잉... 바람이 울부짖었다. 눈이 옆에서 날아왔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 벽뿐이었다.


"안 돼..."


나는 비틀거렸다. 발이 눈 속에 빠졌다. 무릎까지, 허리까지.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더 깊이 빠졌다.


차갑다. 너무 차가웠다. 손가락 감각이 사라졌다. 발도, 다리도.


'여기서 죽는 건가...'


눈을 감았다. 더 이상 힘이 없었다.


그때 무언가 따뜻한 것이 느껴졌다. 품속의 돌. 마을 노파가 준 히말라야의 돌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눈을 떴다. 눈보라 속에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불빛이었다. 누군가 횃불을 들고 있었다.


"거기... 거기 누구 있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힘찬 목소리.


"여기... 여기 있습니다..."


힘을 짜내어 소리쳤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강한 손이 나를 끌어올렸다.


"정신 차려!"


눈을 들어보니 한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검게 그을린 피부, 깊은 눈동자.


"당신은..."


"말하지 마. 힘 아껴."


그가 나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눈보라 속을 걸었다. 어떻게 길을 아는지 신기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확신에 차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빛이 보였다. 천막이었다. 크고 튼튼한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따뜻했다. 화로에 불이 타고 있었다. 사람들이 있었다. 열 명쯤.


"손님이다!" 남자가 외쳤다. "동쪽에서 온 손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산 사람들


나는 화로 옆에 누웠다. 누군가 따뜻한 물을 입에 넣어줬다. 목으로 흘러내렸다. 온몸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괜찮은가?"


나를 구해준 남자가 물었다. 가까이서 보니 나이는 서른쯤 되어 보였다. 강인한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천막에서 본 거야. 눈보라 속에 뭔가 움직이는 게. 처음엔 짐승인 줄 알았지."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왜 이런 곳에? 동쪽 사람이 여기까지 올 이유가 뭔가?"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다른 사람들도 가까이 모여들었다.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저는 형제들을 찾아왔습니다."


"형제?"


"천 년 전 황하에서 헤어진 형제들. 실마라는 이름의 족장을 따라 서남쪽으로 간 사람들."


순간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 무언가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실마..." 한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가?"


"저희 조상들입니다. 동이족입니다. 천 년 전 갈라진..."


"동이족." 노인이 벌떡 일어났다. "정말... 정말 동이족인가?"


"그렇습니다!"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눈을, 코를, 이마를.


"정말이구나... 정말 동쪽에서 온 형제구나..."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우리도... 우리도 동이족이다. 실마 족장님의 후손들이다!"


나는 숨이 멎었다. 찾았다. 정말로 찾았다.


"천 년 동안..." 노인이 흐느꼈다. "천 년 동안 동쪽 형제들을 기다렸다.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 믿었다. 그리고 오늘... 오늘 정말로..."


천막 안의 모든 사람이 울기 시작했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나를 구해준 남자가 내 손을 꽉 잡았다. "형제여, 잘 왔다. 정말... 정말 잘 왔다!"


재회의 밤


그날 밤은 축제였다.


양을 잡고, 곡식을 꺼내고, 술을 따랐다. 사람들이 노래했다. 이상한 노래였다. 동쪽의 노래와 달랐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이 노래는..." 내가 물었다.


"조상들이 부르던 노래요." 노인이 대답했다. "황하를 떠나던 날 부르던 노래.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노래지."


나는 귀를 기울였다. 멜로디가 천천히 들려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무로와 메이가 이별하던 날 부르던 노래였다.


"저도... 저도 이 노래를 압니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동쪽에서도 이 노래를 부릅니다."


노인이 내 손을 잡았다. "그럼 함께 부르자. 천 년 만에 동이족 전체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우리는 함께 노래했다.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졌다. 천막을 넘어, 산을 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우리는 결코 헤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천 년이 지났어도, 천 리가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라는 것을.


신비한 소리


사흘 후, 노인이 나를 특별한 곳으로 데려갔다.


산 중턱에 있는 동굴이었다. 크고 깊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웅...웅...웅...


낮고 울리는 소리.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했다.


"이것은?" 내가 물었다.


"산의 소리다." 노인이 대답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소리를 신성하게 여겼지. 실마 족장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해. 이 소리 속에 신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웅...웅...웅...


나는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동굴 벽을 타고 울렸다. 그 울림 속에서 무언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말 같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고.


"우리는 이 소리를 모방하려 노력했지." 노인이 계속 말했다. "명상을 하며 같은 소리를 내려고. 그리고 점점... 점점 새로운 말들이 생겨났지."


"새로운 말들?"


"그래. 동쪽 말과는 다른. 더 길고, 더 울리는 말들. 소리 자체를 신성하게 여기는 말들."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옴..."


낮은 소리가 나왔다. 동굴이 울렸다.


"옴..." 그가 다시 말했다. "이것은 우주의 소리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나는 전율했다. 이것이었다. 이것이 범어의 시작이었다.


"더 있나요?" 내가 간절히 물었다. "더 많은 소리들?"


"있지."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아, 흠, 후... 수많은 소리들. 각각의 소리마다 의미가 있고, 힘이 있지."


그가 손짓했다. "내일부터 가르쳐주겠네. 우리의 소리를. 그리고 자네도 우리에게 가르쳐주게. 동쪽의 글자를."


"글자?"


"그래. 자네가 품에 간직한 거북 등껍질들. 거기 새겨진 신비한 무늬들 말일세."


나는 놀랐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네가 잘 때 봤네." 노인이 솔직하게 말했다. "놀라웠지. 그 작은 무늬들이 이야기를 담고 있더군. 비록 읽을 수는 없었지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나는 즉시 말했다. "우리의 글자를. 갑골문을."


"그리고 우리는 자네에게 우리의 소리를 가르치겠네."


노인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것이 운명인가 보네. 천 년 만의 재회. 그리고 지식의 교환."


웅...웅...웅...


동굴이 다시 울렸다. 마치 축복하는 것처럼.


새로운 시작


그날 밤, 나는 천막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


천 년 만에 만난 형제들. 그들이 만든 새로운 언어, 범어. 소리를 신성하게 여기는 문화.


모든 것이 신비로웠다.


갑골문은 뜻을 담았다. 해, 달, 산, 물... 본 것을 기록했다. 하지만 범어는 소리를 담았다. 들은 것, 느낀 것, 울림 자체를.


'완전히 다른 방식이구나.'


같은 동이족인데, 천 년의 시간과 다른 환경이 이렇게 다른 문자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품속의 옥구슬이 따뜻했다.


'언젠가 이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갑골문의 뜻과 범어의 소리가.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일이었다. 지금은 배워야 했다. 히말라야 형제들의 지혜를, 범어의 비밀을.


똑. 똑. 똑.


나는 작은 나무판을 꺼내 오늘의 일을 새기기 시작했다. 천 년 만의 재회, 실마의 후손들, 신비한 소리.


모든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을 추가했다.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범어를 배우는 진짜 여정이."


촛불이 깜빡였다. 밤이 깊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었다.


여기서 배울 것들이 언젠가, 먼 미래에, 완벽한 문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전에, 나는 먼저 배워야 했다.


소리의 비밀을.


명상의 깊이를.


우주의 울림을.


내일부터 시작이다.


진짜 배움이.


keyword
금, 토 연재
이전 09화소리를 담는 자(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