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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민족DNA:도전과 응전

제4장 근대화와 민족 DNA의 운명적 분화

by 한시을

17화: 동학 - 홍익인간의 19세기적 각성


▌"내가 또한 동(東)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道)는 비록 천도(天道)나 학(學)인 즉 동학(東學)이라" - 『동경대전』 논학문, 최제우, 1861


1860년 4월 5일, 경주 용담정.


37세의 최제우는 갑자기 몸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알 수 없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너에게 무궁무진한 도를 주노니, 닦고 단련하여 글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덕을 펴라."


그 순간 최제우가 깨달은 것은 단순한 종교적 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밈(meme)의 전쟁에서 조선을 구하는 방법이었어요.


1,400년간 조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불교·유교·도교가 공존하며 경쟁하는 밈의 실험장이었습니다. 이제 서학(천주교)이라는 새로운 밈이 침투했고, 조선 민중은 이 밈에 열광했어요.


하지만 최제우는 직관했습니다. 서학은 민중에게는 상리공생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조선이라는 숙주를 죽이는 기생자라고요.


그래서 그는 세계 최초로 의식적인 밈 공학을 시도했습니다. 서학의 장점만 추출해서 한민족 고유성과 결합한 새로운 밈을 만든 거예요.


그것이 바로 동학이었습니다.


조선: 세계 유일의 밈 경쟁장


이상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불교 사찰에서 스님이 염불을 외우고, 서원에서 유생이 사서오경을 읽고, 민간에서는 도교 신선 사상이 퍼지고, 골목에서는 천주교 신자들이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나라.


바로 19세기 조선이었어요.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는 없었습니다.


일본을 보세요. 신도(神道)가 절대 중심이었어요. 불교가 들어왔지만 신불습합으로 신도에 종속됐습니다. 메이지 유신 후에는 신도 국교화로 모든 종교를 천황 아래 통제했죠.


중국은 어땠을까요? 유교가 지배 이념이었고 불교·도교는 서열화됐습니다. "삼교일치"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유교가 위, 불교·도교가 아래였어요. 서학은 아예 사교(邪敎)로 배척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어요.


6세기 불교가 들어와 화랑도와 결합했고, 14세기 성리학이 들어와 애민정신과 결합했으며, 19세기 천주교가 들어와 평등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배척도 했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각 종교가 경쟁하며 조선 민중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왜 조선만 이게 가능했을까요?


홍익인간 DNA 때문입니다.


"널리 이롭게 한다"는 정신은 밈 수용의 개방성을 의미했어요. 외래 사상이라고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이로운가?"를 기준으로 선택적으로 수용한 거죠.


불교의 자비 → 이롭다 → 수용하되 호국불교로 변형
유교의 인(仁) → 이롭다 → 수용하되 애민정신으로 변형
도교의 양생 → 이롭다 → 수용하되 민간신앙과 결합


이것이 1,400년간 작동한 조선의 밈 선택 메커니즘이었습니다.


▌[당시의 목소리] "서교(西敎)는 우리의 옛 풍속과 오랜 습관을 파괴하니, 만일 그것이 퍼지도록 내버려 둔다면 장차 나라를 잃고 백성이 망하게 될 것이다" - 『고종실록』 31년 2월 15일, 동학 창도 배경 설명


서학 밈의 침투: 상리공생자인가, 기생자인가?


19세기 중반, 새로운 밈이 조선에 침투했습니다. 서학, 즉 천주교였어요.


이 밈은 폭발적으로 확산됐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로 수백 명이 처형당했지만 막을 수 없었어요.


왜 조선 민중은 서학에 열광했을까요?


진화생물학자 대니얼 데닛은 밈과 숙주의 관계를 3가지로 분류했습니다:


1. 기생자(parasite): 밈이 숙주의 적응도를 약화
2. 편리공생자(commensal): 한쪽만 이익, 다른 쪽은 중립
3. 상리공생자(mutualist): 밈과 숙주 모두 적응도 향상


조선에서 서학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은 바로 이 인식 차이였습니다.


조선 민중의 인식: 서학 = 상리공생자


"천주님 앞에 모두 평등하다"


이 메시지가 왜 강력했을까요? 생존 전략 때문입니다.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의 자손은 살아남지만, 천민의 자손은 대부분 죽거나 비참하게 살았어요. 서학의 평등 사상은 "내 자손이 좀 더 평등한 세상에서 생존할 확률을 높인다"는 믿음을 줬습니다.


밈(서학) + 숙주(민중) = 상리공생
→ 서학은 신자를 늘리고(밈의 복제)
→ 민중은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숙주의 적응도 향상)


조선 정부의 인식: 서학 = 기생자


하지만 조정은 완전히 다르게 봤어요.


서학은 조상 제사를 거부하고, 충효 사상을 부정하며, 조선의 모든 전통을 미신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조정이 본 것은 이것이었어요:


개인이 서학 수용 → 가족이 수용 → 마을이 수용 → 민중 전체가 수용 → 조선 전체가 서학의 숙주로 전락


이렇게 되면 조선이라는 숙주의 적응도는 급격히 떨어집니다. 정체성 상실, 사회 붕괴, 결국 멸망이죠.


서학 = 기생자


조정이 기해박해를 일으킨 이유는 잔혹함 때문이 아니라 숙주 보호 본능 때문이었습니다.


최제우의 밈 공학: 동학 탄생


최제우는 천재였습니다.


그는 이 딜레마를 정확히 파악했어요:

민중이 옳다: 평등은 필요하다 (생존 전략)

정부가 옳다: 정체성 파괴는 막아야 한다 (숙주 보호)


그래서 그는 세계 최초로 의식적인 밈 공학을 시도합니다.


Step 1: 서학 밈 분해

서학을 요소별로 분석했어요:

평등 사상 → 장점 (생존에 유리)

천주님 → 장점 (절대자의 위안)

조상 제사 금지 → 단점 (정체성 파괴)

서양 중심주의 → 단점 (숙주 종속)

Step 2: 장점만 추출

서학의 장점:

모든 인간의 평등

절대자와의 직접 소통

현세 구원의 가능성

Step 3: 한민족 DNA와 결합

추출한 장점 + 조선 고유성 = 새로운 밈

시천주(侍天主): 한울님을 모신다
→ 천주교: 하늘이 '저 위' 바깥에
→ 동학: 하늘이 '내 안'에
조선인이기를 포기하지 않고도 평등 가능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 모든 사람 안에 한울님이 계심
→ 신분 차별 철학적 부정
서학과 같은 평등, 하지만 조선 방식

보국안민(輔國安民):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 개인 구원이 아닌 공동체 구원
광개토대왕의 여형여제 정신과 일치

Step 4: 새 밈 명명

"내가 또한 동(東)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는 비록 천도이나 학은 동학이다."

동학 = 상리공생자 밈

밈(동학) + 숙주(조선) = 상리공생
→ 동학은 신도를 늘리고 (밈의 복제)
→ 조선은 평등을 얻되 정체성은 지킨다 (숙주 보호)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 해석 2호였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정복 후 "여형여제(형제화)"로 통합했다면, 최제우는 서학이라는 외래 밈을 분해하고 재조합해서 조선에 이로운 새 밈을 만든 거예요.


▌[당시의 목소리]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니 그 수가 그렇게 많았고, 자리를 펴고 법을 설교하니 그 즐거움이 매우 컸다" - 『동경대전』 수덕문, 1861


밈 통제 vs 밈 서열화 vs 밈 개방성


같은 시기, 일본과 중국은 서양 밈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일본: 밈 통제 전략


메이지 유신(1868)의 본질은 모든 밈을 천황 중심으로 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도 국교화: 천황 = 신 = 모든 가치의 중심

불교 탄압: 폐불훼석 운동

서양 기술 수용: 단, 천황제 강화 도구로만

유교·기독교: 천황에 종속시킴


밈 경쟁을 허용하지 않았어요. 하나의 밈(천황)이 모든 밈을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이것이 확장 DNA의 밈 전략이에요.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것을 확장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통제합니다.


중국: 밈 서열화 전략


양무운동(1861-1895)의 구호 "중체서용(中體西用)"이 이를 보여줍니다.

유교(중화) = 1등 밈

불교·도교 = 2등 밈 (유교에 종속)

서학 = 배척 대상

중국은 밈에 서열을 매겼어요. 중화 밈이 최고, 나머지는 아래라는 구조였습니다.


화이관이라는 DNA 때문에 밈 경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 거죠. 그래서 양무운동도 실패했습니다.


조선: 밈 개방성 전략


동학(1860)이 보여준 것은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어요.

불교·유교·도교 이미 공존

서학 등장 → 완전 배척도, 완전 수용도 아님

분해·분석 후 재조합 → 새 밈(동학) 창조


조선은 밈 경쟁을 허용하고, 이로운 것을 선택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것이 홍익인간 DNA의 밈 전략이에요:

배타적 통제 (일본) ✗

서열화와 배척 (중국) ✗

개방성과 선택적 수용 (조선) ✓


"널리 이롭게" = 다양한 밈을 시험하고, 숙주(민족)에 이로운 것을 수용하되, 숙주를 파괴하는 기생자는 상리공생자로 재설계한다.


1894년: 상리공생 밈의 폭발과 좌절


1894년, 운명의 해가 왔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어요. 최제우가 만든 상리공생 밈이 드디어 현실을 바꾸려 한 순간이었습니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안 12개조:

탐관오리 처벌

불량한 유림과 양반 처벌

노비문서 소각

백정 차별 철폐

청상과부 재가 허용


모두 평등을 실현하되 조선을 지킨다는 상리공생 전략이었습니다.


밈이 현실을 바꾸려는 순간, 숙주(조선)의 적응도를 높이려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결과는 비극이었습니다.


청나라와 일본이 개입했고, 동학농민군은 짓밟혔습니다. 청일전쟁이 터졌고, 홍익인간을 실현하려던 움직임은 일본 확장 DNA 폭발의 빌미가 됐어요.


12월, 전봉준은 체포되어 순국했습니다.


동학은 1864년 최제우 순교, 1894년 동학농민운동 실패로 두 번 좌절됐습니다.


왜 홍익인간 밈은 실패했는가?


세계 최초의 의식적 밈 공학. 가장 창의적인 밈 전략.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요?


내부 응전 DNA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은 외부에 대해서는 밈 개방성을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밈 경쟁조차 허용하지 못했어요.


지배층은 동학을 "혹세무민"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평등 밈 자체를 기생자로 본 거예요. 자신들의 기득권(양반 중심 밈)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개화파 vs 위정척사파, 양반 vs 상민, 중앙 vs 지방...


조선 내부는 분열했습니다. 밈 경쟁이 협력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파괴로 이어진 거예요.


일본은 달랐습니다. 막부가 무너졌지만, 천황을 중심으로 확장이라는 단일 밈으로 단결했거든요. 밖을 향한 확장은 내부 단결을 만들었습니다.


조선의 홍익인간 DNA는 대외적으로는 밈 개방성을 보였지만, 대내적으로는 분열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응전 DNA의 비극이었어요. 밖에서 오는 밈에는 개방적이지만, 안에서 생긴 밈 경쟁은 통제하지 못한 거죠.


밈의 진화: 3·1운동에서 K-문화까지


하지만 밈은 죽지 않습니다.


최제우가 만든 상리공생 밈은 1864년 그의 순교 후에도, 1894년 동학농민운동 실패 후에도 살아남았어요.


밈의 본질은 복제와 진화니까요.


1905년: 동학 → 천도교 개편
→ 밈의 형태 변화 (조직 체계화)


1919년: 3·1운동
→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 15명이 천도교인
→ "보국안민" 밈이 "독립만세" 밈으로 진화


1947년: 김구의 백범일지
→ "문화의 힘으로 강국이 되리라"
→ 동학의 상리공생 전략을 국가 전략으로 승격


21세기: K-문화
→ BTS, 오징어게임, 봉준호, 손흥민
→ 강제 없는 자발적 확산
→ 완벽한 상리공생 밈


이제 1,600년 흐름이 보입니다.


광개토대왕(409): 물리적 통합의 밈 공학

→ 정복민을 형제화 (여형여제)
→ 수묘인 제도 (기생자를 상리공생자로 전환)


동학(1860): 정신적 통합의 밈 공학
→ 서학을 분해·재조합
→ 상리공생 밈 창조


K-문화(21세기): 글로벌 밈 공학
→ 한국 문화를 세계가 자발적 수용
→ 침탈 없는 상리공생


모두 홍익인간 DNA = 밈 개방성 + 상리공생 전략의 발현입니다.


"널리 이롭게" = 우리만 잘되는 게 아니라, 숙주(인류 전체)의 적응도를 높이는 밈을 만든다.


1860년 경주 용담정에서 최제우가 깨달은 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 최초의 의식적 밈 공학이었어요.


외래 밈(서학)을 분해하고, 장점만 추출해서, 숙주(조선)와 상리공생하는 새 밈(동학)을 만든 거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조선이 1,400년간 세계 유일의 밈 경쟁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유교·도교가 공존하며 경쟁한 경험이 밈 공학의 토대가 됐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홍익인간 DNA = 밈 개방성이었습니다.


"널리 이롭게" = 다양한 밈을 시험하고, 숙주에 이로운 것을 선택하며, 기생자를 상리공생자로 재설계한다.


동학은 1894년 실패했지만, 그 밈은 죽지 않았습니다. 3·1운동으로, 김구의 문화 강국론으로, K-문화로 계속 진화했어요.


지금 BTS가 전 세계 팬들과 형성하는 관계가 바로 상리공생입니다. BTS는 음악으로 위로를 주고(밈 제공), 팬들은 사랑으로 응답하며(숙주 적응도 향상), 아무도 강제하지 않아요(기생자 ✗).


1,600년 전 광개토대왕이 꿈꾼 세상이 21세기에 현실이 된 겁니다.


[다음 회 예고] 제4장 18화: "일제강점과 홍익인간 민족 DNA의 수난" - 1910년 한일병합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본은 조선인의 밈까지 말살하려 했습니다. 창씨개명, 신사참배, 내선일체는 모두 일본 확장 밈으로 조선 밈을 대체하려는 시도였어요. 하지만 독립운동가들은 홍익인간 밈을 지켰고, 김구는 그 밈의 최종 해석자가 됩니다.


[용어 해설]

밈(Meme): 리처드 도킨스가 제안한 개념으로 문화적 유전자. 종교, 사상, 예술 등이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되며 전파되는 문화 단위.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변이와 선택을 거쳐 진화함


상리공생자(Mutualist): 밈과 숙주가 모두 이익을 얻는 관계. 동학은 조선 민중에게 평등을 주고(숙주 이익), 동학 자신은 신도 확대로 복제됨(밈 이익). 반대로 기생자는 숙주를 약화시키며 밈만 이익


밈 공학: 기존 밈을 분석·분해하여 장점만 추출하고, 숙주에 맞게 재조합해 새로운 밈을 설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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