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해외문학과 욕망의 보편성
여러분. 우리는 왜 이런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할까요?
우리가 길을 가다 무심코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아름다운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순간을 떠올려봅시다. 수많은 '좋아요'를 받고 흐뭇해하지만, 그 이미지, 그 색감은 단지 손바닥 안의 유리 조각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아름다운 것을 '보았지만', 그것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단지 시각적 이미지(色)를 쫓아 잠시 행복했던 물고기였을 뿐입니다.
춘향전부터 82년생 김지영까지 500년 한국문학을 관통해 온 욕망의 괴로움은, 과연 지구 반대편의 문학에서는 다를까요?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을 통해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 구조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임을 증명할 것입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 일본)의 《설국》은 이 역사적인 첫 문장부터 독자에게 강력한 시각적 경험(色)을 던집니다. 터널을 빠져나와 눈앞에 펼쳐지는 흰 눈은 순수한 아름다움이자, 동시에 손에 잡히지 않는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하늘 (시대정신, 질서)
1930년대 일본. 복잡한 근대 사회에서 벗어난 온천 마을이라는 '무상한 유예의 공간'입니다. 이 하늘 아래서 주인공 시마무라는 도쿄의 아내와 의무라는 현실의 강물에서 벗어나, 순수하고 환상적인 '색채'의 세계로 도피하려는 물고기입니다.
먹이 (욕망의 대상)
Primary 먹이: 색(色) - 무용수 요코의 유리창에 비친 환상적인 눈빛, 게이샤 고마코에게서 발견하는 순수하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적 욕망
Secondary 먹이: 촉(觸) - 고마코의 체온,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존재감에 대한 접촉의 욕망
시마무라의 욕망은 특히 기차 안에서 요코의 얼굴이 유리창에 비치는 순간 극대화됩니다.
"...창 밖에 흐르는 불빛이 요코의 얼굴을 감싸고, 그 위에 또 다른 환영(幻影)처럼 다시 얹혀졌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꿈속의 풍경처럼 투명하게 빛났다..."
이 장면은 현실과 환상 사이의 간극을 이용한 가장 강력한 시각적 자극입니다. 요코는 시마무라가 소유할 수 없는, 오직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순수한 색채'의 완벽한 결정체입니다. 그는 요코에게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운 환상만을 원하며, 이 비접촉적 아름다움이야말로 시마무라의 이상화된 욕망의 궁극적인 형태입니다.
소유할 수 없기에 더욱 강력하게 추구하는 인간의 덧없는 본성이 이 장면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고마코는 '만져지는 색채'입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현실의 무게, 즉 빚에 쫓기는 신세, 병든 남자를 돌봐야 하는 의무(法)라는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색'은 현실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기에, 시마무라의 순수한 '색채'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괴로움을 가중시킵니다.
시마무라는 고마코의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그녀의 가치가 떨어지는 듯한 착각을 합니다. 그는 고마코의 몸을 탐하지만, 그녀의 인간적인 열정, 헌신, 노력과 같은 내면의 요소들로부터는 끊임없이 거리를 둡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성이라는 시각적 이미지에 갇힌 물고기의 비극이며, 영원한 환상만을 탐하는 예술가적 기질의 냉혹함입니다. 그는 현실의 인간이 아닌, 아름다운 사물을 원했던 것입니다.
물고기 (인간)
시마무라: 도쿄에서 온 한량이자 서양 무용 연구가. 하지만 실제로 무용을 본 적은 없는, '보는 것'에 집착하지만 진정으로 보지는 못하는 냉혈한 관찰자
고마코: 온천 마을의 게이샤. 현실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지만 시마무라에게는 단지 아름다운 대상으로만 존재
시마무라의 물고기로서의 펄떡임, 즉 괴로움은 '보고 싶은 것(환상)'과 '볼 수 있는 현실(고통)'의 불일치에서 발생합니다. 그는 가와바타 문학의 냉혈한 관찰자로서, 타인의 삶과 고통을 단지 아름다운 그림으로 소비하려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괴로움(苦)의 구조
두 물고기가 쫓는 욕망의 종류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괴로움은 더욱 깊어집니다. 고마코는 시마무라와의 육체적 접촉(촉)과 진정한 사랑을 통해 현실의 강물에서 벗어날 희망(法)을 찾으려 하지만, 시마무라에게 고마코의 '촉'은 단지 '색'을 소유하기 위한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수단일 뿐입니다.
시마무라의 괴로움은 '색의 고통'입니다. 그는 고마코의 현실적인 삶(술주정, 헌신, 체온 등)이 자신이 갈망하는 순수한 '색채'의 환상을 깨뜨릴 때마다 좌절합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하지만, 그녀의 삶의 고통과 인간적인 복잡함은 끝없이 그의 환상에 균열을 냅니다.
이것이 바로 구부득고(求不得苦) - 구하여도 얻을 수 없는 괴로움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소유하려 하면 할수록, 그 대상은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고, 결국 물고기는 텅 빈 강물에서 펄떡이게 됩니다.
시마무라는 끝내 고마코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온천 마을을 떠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하는 것은 마을 창고에서 발생하는 불꽃입니다. 이 불꽃은 고마코의 열정적인 삶의 파멸이거나, 혹은 그가 쫓던 '순수한 색채'가 영원히 꺼져버렸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습니다.
그는 환상이라는 '색'을 쫓았고, 그 환상이 사라질 때 남는 것은 공허한 괴로움뿐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불교적 통찰
이러한 괴로움(苦)의 구조는 결국 무상(無常)의 진리를 증명합니다. 흰 눈은 녹고, 고마코의 젊음도, 시마무라의 도피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하늘과 먹이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인간이 환상적인 '색'을 쫓고, 그것을 소유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욕망의 구조만은 불변하며 반복됩니다.
《설국》은 동양적 사유인 무상(無常)을 서구 문학의 유미주의적 관찰자 시점과 결합하여 색(色)의 괴로움을 완벽하게 형상화했습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처럼 지극히 일본적인 공간에서 인류 보편의 욕망 구조를 섬세하게 포착했기 때문입니다.
문학의 본질은 인간이 이 무상한 현실 속에서 영원한 욕망을 충족시키려 할 때 발생하는 괴로움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설국》은 그중에서도 시각적 욕망(色)의 허망함과 보편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품 정의]
《설국》은 손에 잡히지 않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라는 환상의 먹이(色)를 쫓아, 영원히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펄떡이는 한 물고기의 기록이며, 이는 인간의 시각적 욕망이 가진 보편적인 괴로움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우리가 인스타그램에서 '완벽한 이미지'만을 쫓는 현대인의 모습과 《설국》의 시마무라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스크롤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아름다운 색채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좋아요'를 누르지만, 그 이미지 뒤에 숨겨진 현실의 고통과 복잡한 맥락은 외면합니다.
우리가 지금 쫓는 '좋아요'라는 색채의 욕망은 시마무라가 눈밭에서 쫓던 환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쫓는 '색(色)'의 욕망이 얼마나 무상한지 기억해야 합니다. 그 환상이 사라질 때의 허망함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느껴야 할 괴로움의 공명입니다.
[다음 회 예고] 제3부 14회: "성의 괴로움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공식 역사에 침묵당했던 여성들의 '목소리(聲)'는 왜 노벨문학상이 되어야 했을까요? 문학은 침묵당한 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행위입니다. 들리고 싶고, 기록되고 싶은 욕망.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복원될 때, 우리는 문학의 본질인 '거역의 펄떡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