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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쫓는 물고기들: 불교로 보는 문학의 풍경

제2부 한국문학 – 하늘과 먹이의 교차

by 한시을

11회: 신자유의 하늘 – 《82년생 김지영》


"나는 괜찮아요."


김지영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에게도, 시댁에도, 친정에도, 동료들에게도. 그런데 정말 괜찮았을까요?


2016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었습니다. 1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왜 이 소설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었을까요?


간단합니다. 김지영의 삶이 바로 '우리'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 새로운 하늘이 들어섰다


독재가 무너졌습니다(9회). 자본의 하늘이 들어섰습니다(10회). 그리고 이제 신자유주의라는 더 정교한 하늘이 완성되었습니다.


"경쟁하라." "효율적으로 살아라." "자기계발하라." "성공하라."


이 하늘은 이전 하늘들보다 교묘했습니다. 총칼을 들이대지 않았습니다. 법으로 차별하지도 않았습니다.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고, 2001년 여성부가 출범했습니다. 제도적으로는 성평등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은 더 교묘하게 작동했습니다. "능력만 있으면 돼." "여자라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이런 말들이 일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여자라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김지영이 본 것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4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난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주부. 위로 언니가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소설은 김지영이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친정 엄마로 빙의해 시댁에서 속말을 뱉어냅니다. 남편의 결혼 전 애인으로 빙의해 남편을 식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 김지영은 자신의 삶을 담당 의사에게 이야기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오빠들이 가져요. 남자애들이 먹어야 커."


닭다리는 늘 남동생 차지였습니다. 김지영과 언니는 날개를 나눠 먹었습니다. "여자애들은 이거 먹어도 돼."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하교길에 한 남자가 자위행위를 하며 여학생들을 따라왔습니다. 김지영이 신고했지만 경찰은 "그 사람도 좀 이상한 사람이니까 너희가 조심해"라고 했습니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언니 김은영은 교육대학에 갔습니다. "여자한테 좋은 직업이야. 안정적이고." 부모님의 권유였습니다. 김지영은 인문대에 진학했습니다.


직장 시절


홍보대행사에 취업한 김지영은 매일 아침 팀원들 자리에 취향에 맞춰 커피를 타서 올려놓았습니다. 왜 여자 직원만 커피를 타야 했을까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안 하면 '눈치 없는 여자'가 되었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남자 직원들이 말했습니다. "주량을 넘어섰다고, 귀갓길이 위험하다고 해도 여기 이렇게 남자가 많은데 뭐가 걱정이냐고 반문했다." 김지영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니들이 제일 걱정이거든."


임신 후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직속 상사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김지영은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고민 끝이었습니다. 남편도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남편 연봉이 더 높았고, 누가 봐도 '당연히' 아내가 그만두는 것이 맞았습니다.


전업주부 시절


카페에서 아이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직장인 남성 둘이 말했습니다. "엄마들은 참 편하게 산다. 남편이 일하는 오후 시간에 저가 커피나 마시면서."


김지영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


맘충. 엄마(Mom)와 벌레(蟲)의 합성어. 육아하는 엄마를 향한 혐오 표현이었습니다.


하늘 (시대정신, 질서) 2010년대 신자유주의 - 경쟁, 효율, 자기계발, 성공

먹이 (욕망의 대상) 하늘이 던진 것: 경력 성공 + 완벽한 육아 + 여성다움. 김지영의 의가 추구한 뜻: 나는 누구인가?

물고기 (인간) 김지영: 딸이자 학생, 동료이자 엄마, 아내. 어머니: 딸들보다 아들에게 닭다리를 주던 세대. 언니 김은영: 교육대학을 선택한 언니


괴로움의 구조


김지영의 의(意)가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었습니다. 나는 남동생의 누나인가, 남편의 아내인가, 딸의 엄마인가, 시댁의 며느리인가. 나는 대체 누구인가.


하지만 하늘이 던진 것은 달랐습니다. "경력도 쌓아라, 그런데 육아도 완벽하게 해라." "성공해라, 그런데 여자답게 행동해라." "능력만 있으면 돼, 그런데 너는 여자니까 조금 불리해."


구부득고(求不得苦), 원하는 것(나 자신)을 찾지 못하는 괴로움입니다.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것(보이지 않는 차별)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괴로움입니다. 오음성고(五陰盛苦),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체성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는 괴로움입니다.


김지영은 결국 정신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빙의하는 것. 친정 엄마로, 남편의 옛 애인으로, 대학 선배로. 왜 김지영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했을까요?


'나'를 지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하늘 아래에서 김지영은 끊임없이 '나'를 억눌러야 했습니다.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괜찮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서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 하늘의 교묘함


《82년생 김지영》이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하늘은 이전 하늘들과 다릅니다.


봉건의 하늘(5회)은 명확했습니다. "신분에 맞게 살아라." 춘향은 이것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식민의 하늘(6회)도 명확했습니다. "친일하라." 이인화는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독재의 하늘(9회)도 명확했습니다. "순응하라." 동호는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늘은 교묘합니다. "너희는 평등해. 능력만 있으면 돼." 표면적으로는 차별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벽들이 존재합니다.


김지영은 무엇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요? 닭다리를 동생에게 양보하는 것? 커피를 타는 것? 임신 후 퇴사하는 것? 맘충이라는 말을 듣는 것?


하나하나는 사소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아." "예민하게 굴지 마." "피해의식 아니야?" 이런 말들이 김지영을 둘러쌌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이 쌓이면 거대한 괴로움이 됩니다. 닭다리 하나, 커피 한 잔, 회식 한 번, 퇴사 결정. 각각은 작았지만, 30년이 쌓이면 정체성이 지워집니다.


82년생은 누구인가


1982년은 특별한 해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이 왜 '82년생'일까요?


1982년생은 민주화(1987) 이전에 태어나 신자유주의 시대(200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세대입니다. 제도적 성차별이 사라졌다고 믿어진 시대에 살았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장 많이 경험한 세대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김지영'이라는 이름입니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에 가장 많이 등록된 여아 이름이 '지영'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성인 '김씨'와 결합하면 '김지영'. 이것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한 세대 여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조남주 작가는 의도적으로 김지영의 삶을 '보편적'으로 그렸습니다. 논문, 기사, SNS에서 채집한 풍부한 사례들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김지영'들의 집합적 경험이었습니다.


불교적 통찰: 정체성의 환상


《82년생 김지영》을 불교의 눈으로 보면 깊은 역설이 보입니다.


무상(無常): 모든 정체성은 변한다 김지영은 딸이었다가 학생이 되었고, 직원이 되었고, 아내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역할들. 그렇다면 진짜 '나'는 누구일까요?


공(空): 고정된 '나'는 없다 부처님은 '나'라는 것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안이비설신의(육체와 감각)와 색성향미촉법(외부 대상)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임시적 구성물일 뿐입니다. 김지영이 찾으려 한 '나'도 사실은 환상일 수 있습니다.


집착: 괴로움을 키우는 것 김지영의 집착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괴로움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착이 없었다면 소설도 없었을 것입니다.


색성향미촉법의 관점 신자유주의가 던진 것: 경력 성공 + 완벽한 육아 + 여성다움. 김지영이 추구한 뜻: 주체적 정체성 + 평등한 관계. 불일치 → 정신적 증상, 빙의 현상, 자아 상실


김지영이 추구한 것은 '향(香)'이었습니다. 여기서 향은 단순한 냄새가 아닙니다. 정체성, 존재의 고유함,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다른 향을 강요했습니다. "너는 딸이야", "너는 아내야", "너는 엄마야". 김지영 자신이 원하는 향(정체성)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향(역할)이었습니다.


신자유주의 하늘 아래 다른 선택들


김지영만 이런 괴로움을 겪은 것은 아닙니다.


순응한 물고기들: 커피를 타고, 회식에서 웃고, 조용히 퇴사하고, 전업주부가 된 여성들. 그들은 하늘이 던진 먹이를 받아먹었고,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意)는 서서히 지워졌습니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거역한 물고기들: 김지영처럼 정신적 증상을 보인 여성들, 퇴사를 거부한 여성들, "나는 안 괜찮아"라고 말한 여성들. 그들은 하늘이 던진 법(여성의 역할)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괴로웠고, 때로는 정신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신자유주의 하늘 아래 공통점이 보입니까? 모든 물고기들이 쫓은 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주체적 정체성이라는 뜻, 평등한 관계라는 신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던진 법(성공과 육아의 이중 부담, 보이지 않는 차별)과 충돌했습니다.


순응한 물고기는 살아남았지만 자신을 잃었고, 거역한 물고기는 괴로웠지만 자신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괴로움이 문학이 되었습니다.


김지영은 회복했을까


소설의 마지막은 열려 있습니다. 김지영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조금씩 나아집니다. 자신의 삶을 글로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했을까요? 담당 의사는 마지막에 이렇게 씁니다. "환자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으나,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한 재발 가능성이 있다."


환경. 하늘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하늘이 바뀌지 않는 한, 김지영의 괴로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새로운 김지영들이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이제 김지영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침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괜찮아"라고 거짓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입니다. 펄떡이는 물고기가 자신의 펄떡임을 기록하는 것. 괴로움을 말하는 것. 그렇게 다른 물고기들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82년생 김지영이 말하는 것


《82년생 김지영》은 신자유주의 하늘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이중 부담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한 여성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펄떡인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2016년 이 소설이 나온 지 9년이 지났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하늘은 여전합니다. 신자유주의는 더 강력해졌습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효율은 더 강조되고, 자기계발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김지영들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늘 괜찮다고 말해야 하는가?" "내가 원하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하지만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이제 더 많은 김지영들이 침묵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씁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줍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하늘이 던진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가 추구하는 뜻을 쫓습니다. 여전히 괴로워하며 펄떡입니다. 욕망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회 예고] 제2부 12회: "전환부 2 - 현대의 욕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 독재(9회) → 자본(10회) → 신자유(11회)로 넘어오며 하늘이 던지는 먹이가 어떻게 변했을까요? 박정희의 경제성장, 전두환의 3S정책, 민주화 이후의 자본,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경쟁. Primary 욕망은 법(法)에서 향(香)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이동했습니다. 현대 문학이 보여주는 욕망의 변화를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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