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써 세상을 감화시킨 종교
여기 희생으로 시작해 희생으로 인해 번창한 종교가 있다.
끝없는 박해와 탄압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죽음을 무릅쓰고
누군가는 화형 당하면서까지
개혁을 부르짖었고, 혁신을 외쳤다.
그 결과
자유라는 불꽃을 피웠고 이 불꽃은 열렬히 타올라 인간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이 종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마치 먼 옛날 고대 로마 제국 시절
전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장렬히 희생한 위대한 누군가처럼!
해설: 위 작품은 크리스트교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크리스트교는 다양한 분파가 있지만 크게 3가지로 나뉩니다. 그리스 정교, 로마 카톨릭, 개신교(영국 국교회칼뱅파 즉 청교도, 루터파) 크리스트교는 다신교를 믿던 로마 제국 시절 끝없는 박해를 받아 지하나 동굴에 예배당을 만들어(이를 카타콤이라고 지칭) 신도를 모으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크리스트교가 탄압에서 해방되었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아예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에는 자연스레 크리스트교가 사회•문화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서방 교회의 로마 교황청이 현지의 게르만족 선교를 위해 예수를 신상과 그림으로 형상화하자 동로마 제국 측 황제 레오 3세 (사실상 동방 교회 측)는 성상파괴령을 내렸고 이로써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가 나뉘게 되었습니다.(이후 양측은 서로에게 파문을 내렸고 그 파문은 1965년이 되어서야 철회됩니다.) 성상파괴령 후에는 10-11세기 성직자의 부정•부패와 성적 타락 때문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중심으로 클뤼니 수도원 개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성직자 서임권을 두고 당시 로마 교황인 그레고리우스 7세와 대립을 하기도 했고,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셀주크 튀르크의 위협을 받던 동로마 제국의 요청으로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나중에는 교회에 대한 과세 문제를 두고 프랑스 왕 필리프 4세와 보니파키우스 8세가 대립을 빚기도 했으며 보니파키우스가 화병으로 사망하자 친필리프 4세 성향인 클레멘스 5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어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을 옮기기는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로마 교황청의 부정•부패와 비리가 계속되자 체코의 후스, 영국의 위클리프 등이 교황청과 교황을 비판하며 교회 개혁을 주도했고, 이를 이어받아 루터는 면벌부를 비판하며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의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게재해 교황청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이에 따라 보헤미아(현재 체코) 출신의 후스는 화형 당하고 루터는 교황 10세로부터 파면당해 모두가 등을 돌릴 때 작센 제후의 보호로 간신히 목숨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칼뱅은 청렴과 검소를 강조하며 스위스를 중심으로 청교도 정신의 확대를 시도했습니다. 영국에서는 교황청이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를 불허하자 영국 내 교회의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고 영국 교회의 주인이 더 이상 교황이 아닌 헨리 8세를 비롯한 영국의 국왕들임을 선언 수장령을 발표해 영국 국교회를 확립했습니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에서는 슈말칼덴 전쟁(1546-1547)이 일어나고 아우크스부르크 종교 화의(1555)에 의해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루터파가 제국 내 정식 종교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30년 전쟁(1618-1648)과 베스트팔렌 조약(1648)으로 루터파와 로마 카톨릭 외에도 칼뱅파 역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로마 카톨릭을 중심으로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며 청교도를 탄압하자 영국에서는 청교도 세력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로 넘어가기도 합니다.(1620 / 이게 미국 건국의 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결국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와 찰스 1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가 충돌 청교도 혁명(1642-1651)이 일어납니다. 이후 크롬웰의 승리로 찰스 1세는 처형당하고 크롬웰은 호국경에 취임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역사를 가진 크리스트교는 19세기 제국주의를 거치며 확산되어 필리핀, 한국 등에도 전파됩니다. 이렇듯 현재 크리스트교는 서구권을 비롯한 비서구권 국가에도 영향을 끼치며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고 있습니다.
추가로 마지막 구절의 위대한 누군가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