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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잘 모르겠습니다.

by 박유리


어릴 적에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지만, 그 길을 끝까지 완주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글을 쓰고 있네요.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두 달째입니다.



꾸미고 만들고, 손으로 조작하는 것을 좋아하던 마음은 예전부터 늘 있었습니다. 어릴 적에도 헌옷을 가져다가 내 옷을 만들고 싶어 했지요.

동네 아줌마들이 “너희 집은 부잔데 옷도 안 사주나?” 하고 물으실 때면, 저는 무슨 말로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씩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 옷을 제가 실제로 입었는지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할 때도, 저는 언제나 바구니에 색종이와 종이접기 책을 넣어 들고 다녔습니다. 시간이 나면 종이로 꽃도 만들고, 작은 동물들도 접어 아이들에게 상으로 나눠주곤 했습니다. 유치원선생님들은 길을 가다가 요쿠르트 병만 보아도 “아! 저걸로 뭘 만들 수 있겠다.” 하고 떠올리는 것이 특기라고 하지요.



결혼 후 1년 만에 남편이 직장생활을 접고 공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요, 해 보세요. 아직 젊으니까. 제가 1년은 먹여 살려 볼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첫째가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슨 배짱이었는지…

저는 당시 가장 비싼 브라더 미싱을 한 대 샀습니다. 배우지도 않은 홈패션을 시작했지요. 성남에서 창원으로 이사하면서 친정에서 쌀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이사도 했습니다. 친정엄마는 먼지 속에서 기침을 달고사는 손자를 보며 늘 안쓰러워하셨습니다.


다행히 이사 온 동네분들이 바느질감을 제법 가져다 주셔서 반찬값, 아기 분유값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빠듯했지만, 젊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마음에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돌이켜보면 그 1년도 재미있게 지나갔습니다. 주눅들지 않고요.


남편은 저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과 학원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년쯤 지났을 때,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부산의 모고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근무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혼은 그렇게 바쁘게 지나갔습니다.
남편이 면접 자리에서 이사장님께 “그동안 어떻게 생활했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아내가 재봉틀을 돌려서 먹고 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쌍해서 이사장님이 합격을 시켜주셨다는 뒷이야기도 있었지요.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사장님만이 아실 일입니다. ㅋ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옷도 제가 직접 만들어서 쌍둥이처럼 맞춰 입히곤 했습니다. 지금도 집안의 커튼이나 방석은 제 손으로 만든 것들이라, 생활 속에서 제 손길이 닿은 흔적들을 보며 작은 기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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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것이 재산이 되어 지금의 저를 이루었나 봅니다.


뚝딱뚝딱 만들기를 좋아하는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 글만 올리면 어쩐지 답답해 보이고 재미가 없어 그림을 함께 넣어야 비로소 만족이 됩니다.


그렇게 동화도 만들고, 에세이도 만들어가는 지금의 저를 봅니다.


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분들의 글을 접하면서 저의 과거도 하나씩 문을 열게 됩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 속에서 제 모습을 발견하며, ‘아! 나도 이와 비슷했었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잠시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나봅니다.



글: 유리 / 그림: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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