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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의 그림같은 벽

덩굴이 남긴 자욱

by 박유리





몇주 전, 친구들을 만나러 간 작은 카페,

처음에는 벽을 등지고 앉아 있어 그 풍경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한 친구가 불쑥 물었다.

“저거, 벽에 그려진 그림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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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려 창문 안에서 바라보니, 벽에는 무늬 아이비와 머루포도가 얽혀 있었다.

아이비가 기어오르다 남긴 마른 뿌리 자국은 마치 누군가가 정성스레 그려놓은 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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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이비 뿌리가 떨어진 자리야. 전에 내가 주택에 살 때 벽 아래에 아이비를 심어 벽을 타고 오르게 했거든. 포도도 키워봤지.”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벽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덩굴은, 정말 그림 같았다.

친구의 시력이 나빠서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벽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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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자, 옆에는 국산 담쟁이까지 벽을 타고 있었다.

담쟁이는 작은 별 모양의 점들을 남기며 오르고, 아이비는 가느다란 실자국을 새겨 두고,

포도는 벽에 기대지 않고 그물 위에서 햇살을 모아 열매를 키워내고 있었다.



같은 벽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살아가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는 작은 점을 남기고, 누군가는 길게 선을 남기며, 또 누군가는 열매로 자신을 증명한다.



'담쟁이와 포도야, 예쁘게 잘 자라서 이곳을 오가는 손님들의 마음에 한 폭의 그림을 선물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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