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은 것을 떠올리려 머리에 손 얹은 채
지나온 길 더듬거려 과거를 되살으며
그때를 똑같이 그려내어 다시 한번 걷습니다
― A6. 내가 왜 여기 왔더라
머리에 먼지 쌓여 영롱한 빛이 나고
마음에 녹이 슬어 우아한 색이 돌아
가만히 사그라지는 이 모습이 어울려
― F8. 백색과 청록색이 잘 어울린다니까?
무거운 빗줄기가 하늘 아래 가득해서
숨 하나 못 쉴 정도로 빽빽히 들어찼어
일순간 불어오른 물이 가슴까지 닿고선
― C3. 집중우울
침대에 누웠을 때 등이 뜨거워지면
여름이 가까운 걸 비로소 실감한다
그런데 내 배 뜨거워지는 건 언제일까 궁금해
― B3. 복부냉증
우물 안은 언제나
똑같이 아늑하다
더욱이 내 생각도
내 세계도 그대로다
우물벽 돌 한 덩어리
툭하고는 떨어진다
― E3. 우물이 무너지랴
자그만 겨자씨만큼 작고 작은 대화들이
길에서도 집에서도 언제나 바글바글
무한이 담겨있어도 끝도 없이 작구나
― D9. 칸토어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알람을 맞춘 때의 20분 전이지만
어째서 갑작스레 두 눈이 떠진 걸까
아까워 잃어버렸기에 갖지 못한 이 시간
― A14. 아까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