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그리고 용기

by 브리씨

새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용기가 아니었을까?


낯선 곳, 낯선 나라, 낯선 얼굴의 친구들과 적응해야 할 용기

아이들에게는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


첫째 J가 몇 달이 지나 처음 학교에 갔던 날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날 밤 나는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고 슬펐다. 한국에서 한 번도 학교를 다녀보지 않았던 J는 이곳에 와서 2학년으로 입학을 했다. 처음 가는 학교를 호주에서 갈 줄은 생각도 못했겠지..


호주는 Fruit Break, First Break, Second Break 세 번의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나와 밖에 모여 앉아 밥을 먹고 노는데 처음 학교에 간 날을 한참 후에 나에게 말해 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고 축구를 하고 싶어 말을 걸었지만 친구들이 너는 안된다며 함께 놀아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은 혼자 앉아만 있었다고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잘하고 있겠거니 잘할 거라고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이 힘들지 않으려고 아이의 상황을 외면했던 것 같다.


학교 생활을 잘하는지 선생님에게 이메일도 보내고 내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는 사실 알지 못했었다. 항상 하교 후 J에게 물어보면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선생님도 너무나 인텔리전트 한 학생이며 잘 적응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다 둘째 T가 프랩에 입학하지 못해 나와 함께 계속 집에 있었고, 킨더를 알아보랴 나도 호주생활에 적응하랴 어떻게 보면 완벽하게 J의 마음까지 케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J는 내성적이고 수줍음도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얼마나 혼자 노력을 한 건지 몇 주 만에 친구들을 사귀었고 호주 학교에 적응했다. 물론 첫 해 몇 달 동안은 매일 아침 등교 때마다 스트레스로 인해서인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조금 힘들었지만 축구를 좋아했던 J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더 빨리 가까워졌다.


J와 놀아주는 친구들이 나는 그저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먼저 다가가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손을 흔들어주고 더 많이 애썼던 것 같다. 그렇게 J는 한국인 아시아인 인도인이 많은 학교에서 호주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점점 호주아이가 되어갔다.


둘째 T는 한 달 정도 뒤부터 킨더를 다니게 됐다. 고작 5살밖에 안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J보다 조금 더 힘들어했다, T가 다녔던 킨더는 로컬 킨더답게 정말 백인밖에 없었고 아시아인은 T혼자였다. T의 선생님은 T를 정말 많이 챙겨주셨는데 그래도 T는 오랫동안 킨디에 가는 걸 힘들어했다. 처음에는 말도 하지 않고 선생님 무릎에 앉아있거나 선생님 옆에 붙어있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4-5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제법 하고 싶은 말들도 하고 킨디 생활에 적응해 갔다. 이곳 킨디도 예를 들면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오고, 댄스수업, 숲 유치원처럼 야외 정원에서 놀고, 다양한 교구들을 가지고 수업을 했지만 T는 조금은 지루했던 것 같다.


J와 T는 5-6개월 정도 지나니 호주 아이들이 된 것처럼 이곳 생활을 즐겼고 행복해했다. J는 처음부터 영어에 대한 어려움이 없어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갔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 반면 5살 T는 계속해서 성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6개월 뒤 남편이 왔다. 그때는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저 우리의 안부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우리가 호주에 오고 1년이 지난 후 남편이 두 번째 이곳에 왔을 때 남편은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불만족스러워했고 우리는 크게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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