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끝무렵, 한국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그 자유로움에 마냥 행복해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보러 다니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고, 코로나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도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출발 전 정착 서비스를 신청했다. 비용은 3,000불이 조금 넘었다. 처음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덕분에 아이들 학교 학군 내 아파트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공항에서 바로 새로운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 일주일은 집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다니느라 바빴고, 한국에서 가져온 트렁크와 박스들을 정리하느라 이틀을 꼬박 보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바닷가와 공원을 다니며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5일 뒤,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2023년 1월 1일,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우리 셋만 이곳에 남았다.
그때의 하루하루는 마치 3일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는 사람도 없고, 삼시세끼 아이들과 집에서 식사를 해결해야 했으며, 운전도 익숙하지 않아 외출하려면 전날부터 주차 공간과 동선을 여러 번 확인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다.
나는 스스로를 씩씩하고 대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오니 두려움과 불안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학교 개학까지 한 달 동안 우리 셋은 매일 붙어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작 4살과 6살인 아이들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첫째는 2023년 2학년으로 학교에 입학했고, 둘째는 프렙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생일이 기준일보다 9일 늦어 입학이 거절되었다. 유학원에서는 학교와 상의하면 될 것이라고 했고, 모든 수속을 마쳤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학교에 직접 찾아가 상담도 해보았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둘째는 한 달 정도 더 나와 함께 지내며 여러 킨더가든을 상담한 끝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등록할 수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매일 아침 첫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둘째를 차로 등원시키고 픽업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첫째는 한국에서 3년간 영어유치원을 다녀 영어에는 어려움이 없었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녀보지 않고 호주에서 2학년으로 입학하다 보니 학교라는 곳이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친구들을 금방 사귀었고, 호주인이 아닌 외국인과 한국인이 많았음에도 첫째는 백인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며 나의 걱정을 조금 덜어주었다.
하지만 둘째의 킨더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킨더에서 전화가 와서 일찍 픽업하러 가야 했고, 아이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며 비행기 티켓을 끊어달라고 울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졌다. 고작 다섯 살 아이를 더 잘 가르치고 싶고,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다는 부모의 욕심으로 이곳까지 데려왔는데,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공간에 내가 함께 있지 않았기에 더 불안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한국에서 둘째는 1년간 영어유치원을 다녔지만, 아직 어렸기에 알파벳을 배우고 몇 가지 간단한 문장을 말하는 정도였다. 그 외에는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래도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호주의 킨더 생활에 적응해 갔다. 몇 달이 흐르자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킨더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첫 해, 첫 학교 생활을 각자의 속도에 맞춰 한발한발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