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보내는 일상

방과 후 액티비티

by 브리씨

남편과의 다툼은 아이들, J와 T의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남편이 보기엔 아이들의 영어가 생각보다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이곳 호주에 처음 왔을 때, 같은 학교에 입학한 한국인 가족이 열 가족이 넘었다. 개학 후 학교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몇몇 엄마들과 가까워졌고, 아이들이 하교한 뒤엔 거의 매일같이 함께 학교 근처 공원에서 놀았다. 해가 질 무렵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하교 후 매일 한국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국말만 쓰게 되었다. 좋은 액티비티나 학교 활동이 있으면 엄마들 단톡방에서 공유를 했고, 우리끼리 정보를 나누다 보니 막상 등록해서 가 보면 결국 한국 사람들만 모이는 경우가 잦았다.


남편은 이런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툰 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가 적은 비용을 들여 이곳에 온 것도 아니고, 남편은 한국에서 혼자 고생하며 일하고, 나는 이곳에서 아이들과 고군분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머리를 쿵 하고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한 깨달음을 얻은 건 이곳에 온 지 7개월쯤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엔 되도록 가지 않으려 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내가 변했다고 느꼈을지도, 혹은 이상하게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스스로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아이들도 나도 점차 호주 생활에 익숙해졌다.




J는 처음부터 유난히 백인 친구들과만 잘 어울렸다. 인연이란 게 있었던 걸까. 한국 문화 행사 날,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그 행사에 참석했지만, 나는 왠지 가고 싶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J의 반 친구 가족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친구의 엄마는 나와 성격도 비슷하고 아이 교육에 대한 방향도 비슷해서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걸 서로 반가워했다. 주말이면 우리가 J의 친구를 초대해 함께 영화를 보거나 Putt Putt(미니 골프)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그 가족이 J를 데리고 공원에 가주거나 집으로 초대해주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또 다른 J의 친구는 자기 엄마에게 매일 J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 시간에 그 친구 엄마가 직접 나를 찾아와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플레이데이트를 제안하며 우리도 가까워졌다.


첫 해, J와 T는 주 2회씩 테니스와 골프를 배웠다. 그 외에는 주로 공원에서 놀거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둘째 해가 되고 나서야 나는 아이들 스케줄을 좀 더 알차게 구성하기 시작했다.

주 1회 수영, 주 1회 테니스, 주 2회 축구, 그리고 도서관도 다니기 시작했다.


호주의 수영장은 실내와 실외가 나뉘는데, 실외 수영장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천둥이 치면 수영이 금지되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 위험도 있어 결국 실내 수영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는 주 1회, 30분 수업에 약 130불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테니스는 방과 후에 50분짜리 그룹 레슨으로 진행된다. 첫 해에 주 2회씩 꾸준히 배우다 보니 아이들이 테니스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아이들에게 테니스는 가장 즐거운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한 학기(10회)에 약 250불 정도의 수강료를 내니, 회당 약 25불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첫 해에는 축구를 하지 못해 아이들이 조금 아쉬워했는데, 둘째 해에는 집 근처 축구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호주의 유소년 축구팀에는 정식 코치가 따로 없고, 팀에 속한 아빠들 중 한 분이 자원해서 아이들을 지도한다. 운동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축구에 관심 있는 아빠들이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가르쳐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주 1회 트레이닝과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다른 클럽과의 축구 경기가 있어 아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다. 사방이 푸른 잔디인 이곳에서는 공만 있으면 어디든 축구장이 되고, 놀이터가 된다.




3년 차가 된 올해도 우리의 스케줄은 여전히 바쁘게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서, 영어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결국 여기까지 와서도 튜터링의 손을 빌리게 되었지만, 어쩌면 영어가 부족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무리였는지 모르겠다. T는 아직 1학년이라 많은 학습 부담은 없지만, J는 4학년이 되었고 나 역시 조금씩 푸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힘들 텐데도 묵묵히 따라와 주는 J가 참 기특하고 고맙다.


올해 나의 또 다른 목표는 책을 많이 읽고 돌아가는 것이다. 호주의 도서관에는 아이들이 읽기에 좋은 영어책들이 정말 많다. 그 책들을 아이들이 최대한 많이 흡수하고 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이 시간들이 쌓여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길 바란다.




나는 한 명, 아이들은 두 명.

때로는 몸이 너무 지치고, 모든 일을 도맡아야 하니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하루를 마무리할 즈음,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오늘 참 즐거웠어"라며 하루를 이야기하고, 내일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 문득 생각이 든다. ‘그래, 우리가 잘 선택한 거였어.’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평범하지만, 그 평범함 속의 평안함이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는다.

별일 없이,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토록 감사한 일이었구나.

이 호주에서의 시간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생활의 방식도, 마음의 여유도,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의 소중함도. 우리가 여기에서 보낸 모든 날들이 앞으로의 삶에 단단한 기반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한 발씩 걸어가면 된다.

오늘도 잘했어. 수고했어.
그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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