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개명했다. 성이 두 자에 이름이 외자였던 내 친구는 이름도 얼굴만큼이나 퍽 귀여웠다. 나는 특별하고 동글동글한 그 이름을 꽤 좋아했지만, 친구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에게 미련을 듬뿍 담아 마지막으로 물었다.
“난 예전 이름이 더 좋은데… 이제 새 이름으로 불러줘야겠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아쉽게 입맛만 다셨다.
사실 나도 어릴 땐 내 이름이 참 싫었다. 정말이지, 너무 싫었다. 내 이름도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을 특이한 구석이 있었으니, 다만 이곳에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은 출석부를 넘기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다 내 이름 앞에서 잠시 멈춘 그들의 레퍼토리는 늘 똑같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겹게도 내내 그랬다. 어쩜 그 선생님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나는 이름이 불리기 전 늘 생각했다. ‘과연 저 사람도 흔해 빠진 인간일까?’.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대체로 늘 그랬다.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기도 전, 내 존재감을 각인시켜 준 그들 덕분에 나는 항상 이름으로 놀림당하며 새 학기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능청스럽게 사람을 대할 줄 알게 된 지금에야 아무렇지 않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참 숫기 없이 어설펐다. 쏟아지는 관심과 장난, 얼마쯤의 짓궂은 놀림에는 면역이 없어 엎드려 숨기 바빴다.
‘왜 내 이름은 이따위인 거야…’
성인이 되면 꼭, 개명하겠다고 다짐했다.
미운 정도 정이라 하였던가. 그도 아니면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 했던가. 막상 스무 살이 되고 나니 개명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언제부턴가 내 이름이 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남들은 순수 한글인 줄 아는 그 이름이, 한자어를 가진 반전이 있어서는 아닐 테지. 왜냐면 난 그 뜻만큼 아름다운 삶을 살지는 못했으니까. 그리고 어느 무당집과 사주 집을 돌아도 어찌 그리 이름을 잘 지었냐며, 운수 대통할 이름이 따로 없다는 아첨 때문도 아닐 테다. 나는 운수 대통에도 실패했으니까. 내가 운수 대통할 인간이었으면 로또가 단돈 오천 원도 이렇게 안 맞을 리가 없다. 이 사기꾼들아.
다만 받침 하나 없는 그 이름의 소리가 좋았다. 바람처럼 바스락거리며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그 이름이 듣기 좋아졌을 뿐이다.
그 단어가 각기 다른 음색으로 불릴 때면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려선, 어떤 이름에는 아득한 애정과 사랑이 담겼음을 짐작케 한다. 그럴 때면 나도 타인의 이름을 유독 힘주어 불러보게 된다.
나는 조금 뒤늦게서야 내 이름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불러주는 이가 별로 없어 애석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회에서는 직급으로 불리게 되고, 나를 제일 많이 찾을 남편도 이름으로 부르진 않는다. 친한 친구들은 나를 주로 애칭으로 부른다.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부탁해 볼까… 도 생각은 해보았으나, 모름지기 호칭은 부르는 사람이 편해야 입에 붙는 것이니 강요하고 싶진 않다.
내 이름을 제일 많이 불러주는 이는 엄마다. 가는 연락은 없는 데다 오는 연락은 막고 있으니 일 년에 그 횟수가 몇 번이나 되겠냐마는, 그럼에도 내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르는 이가 엄마라니, 그건 조금 슬픈 일이다. 나는 내 이름을 사랑하고 이왕이면 아주 많이 불리길 바라지만, 유일하게 엄마가 부르는 내 이름은 싫다. 엄마가 날 부를 때면 언제나 서려 있는 물기가 싫다. 그 끝에 매달린 눈물방울을 끝까지 모르는 척할 거라서, 그렇게 못된 나를 마주해야 하는 일이 늘 고단하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이름이 많이 불렸으면 좋겠다. 슬프지 않게. 어느 날은 기쁨으로. 어느 날은 그저 즐겁게. 그도 아니라면 그냥 무용해도 좋으니 아주 많이, 자주. 언제나. 항상. 늘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