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을 먹고사는 꽃,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1.JPG 꿩의바람꽃


멀리서 숲을 바라보면 여전히 겨울잠을 자는 듯,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봄바람만이 일렁인다. 그러나 한 걸음 숲 속으로 들어서면 어느새 자잘한 꽃들이 피어 있어, 소리 없는 요란함이 가득하다. 조용하지만 강렬한 생명의 속삭임, 숲은 이미 꽃밭을 이루었다.

봄바람 따라 피었을까, 따스한 햇살 따라 피었을까, 아니면 산새의 노랫소리에 맞춰 피어났을까.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고요하게 번지는 숲, 그 속에서 세복수초, 변산바람꽃에 이어 꿩의바람꽃이 하늘하늘 꽃잎을 펼친다.


꿩의바람꽃은 변산바람꽃과는 달리 날씨에 민감하다. 마치 햇살을 먹고사는 꽃처럼, 날이 흐리면 맥없이 꽃잎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러나 햇살이 가득한 날이면 하얀 꽃잎을 우아하게 펼쳐 마치 해님을 사모하는 작은 요정처럼 빛난다.

흰 바탕에 연한 자줏빛을 띠는 꽃잎, 바람에 흔들리는 그 가녀린 몸짓은 봄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꽃봉오리는 꽃받침을 돌돌 말아 숙이고 있다가, 어느 순간 사뿐히 피어난다. 꿩의 발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꿩의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꽃이 필 무렵이면 숲 어귀에서 꿩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봄이 무르익어 가는 소리다.

바람꽃의 세계도 다채롭다. 제주에는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남바람꽃, 그리고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세바람꽃이 있다. 바람꽃의 속명은 ‘아네모네(Anemone)’,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다. 바람을 타고 피어나고, 바람 속에서 춤을 추며, 바람결 따라 다시 스러지는 꽃.

가느다란 꽃대 위에 단 하나의 꽃을 피워 올린다. 바람결에 살랑이며 송이송이 피어나는 꿩의바람꽃. 숲은 그렇게 자연과 어우러진 환상의 꽃밭이 된다. 햇살 가득 머금은 환한 웃음이 잔잔히 퍼져, 꽃내음과 풀 내음으로 영혼을 헹궈내는 듯하다.


식물은 동물처럼 요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고요 속에서 살그머니 깨어난다. 그 신비로운 생명의 기척에 넋을 놓고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도 하나의 풀꽃이 되어 바람 따라, 햇살 따라 노래하는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바람 따라 흔들리는 작은 몸짓 속에서, 봄날의 환희가 피어난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