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재적 동기와 자율성에 대한 갈망
돌이켜보면, 내 유년기의 동기부여 방식은 일정 부분 외부로부터 주어졌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를테면 칡즙, 홍삼)을 먹을 때가 생각이 난다.
아주 맛없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맛있지도 않은데,
(칡즙을 안 먹는다고 나무라시진 않았지만)
먹으면 칭찬을 받으니 그 칭찬이 나를 움직이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험을 못 봐도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한 번을 나무라신 적이 없었던,
"인생에 있어서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가르친
훌륭한 나의 부모님조차, 좋은 성과를 마주했을 때 어쩔 수 없이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가 뭔가를 준비한 만큼 좋은 성과를 얻었을 때 나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도 더 기뻐하던 그들의 미소는,
힘들고 지칠 때도 분명 나를 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더 외부적으로는
좋은 성적표, 선생님의 칭찬, 때론 질책까지 – 이러한 외재적 동기들이 나를 움직였다.
덕분에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고 나름 노력 대비 결과가 좋아
그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는' 과정이 할 만했다.
문제없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뭐니?”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도,
우선 "네가 학생신분으로서 해야 할 걸 먼저 하고 생각해라"는 답변뿐이 나오지 않았다.
"괜히 현 상황(공부해야 하는 상황)을 벗어나고자 핑계 대는 거 아니야?"
라는 자체 검열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서도
사회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목표와 역할이 주어졌지만,
이제 그걸 따르는 일이 예전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가령 (내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누군가 시킨 일을 받을 때면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는다.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일이 내 가치관과 어긋난다고 느끼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칭찬 한 마디에 무엇이든 척척 해내던 내가,
이제는 “왜 해야 하지? 내가 진짜 원하나?”를 따져 묻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때때로 나는 주어진 일을 미루거나 회피하며,
스스로도 게으른 건가?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갈등 자체가 자율성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외부 자극만으로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되기는 어렵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순간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행동을 일시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동기는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흥미와 의미, 즉 내적 동기가 뒷받침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어떤 일을 자발적이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다.
특히 자율성은 이러한 내적 동기의 핵심인데,
“내 행동은 내가 알아서 하고 싶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하고 싶다”는 감각이 바로 자율성의 정수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 의하면 자율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구이며,
충분히 충족되지 못할 때 삶의 만족과 의욕이 떨어지고 다양한 부적응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성인이 되어 겪는 내적 갈등은,
어린 시절 충족시키지 못했던 이 자율성 욕구가 이제야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과거에는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해 무조건 따랐다면,
이제는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 그림자가 때론 혼란과 모순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내 삶을 내가 주도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