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는 것에 대한 감탄에 대하여

Intermission3-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판타지

by 쓰리씀

나는 세 명의 아이를 모두 ‘자연주의’로 출산했다.

자연주의 출산은 자연분만과는 다른 개념으로, 의학적 처치를 거의 하지 않거나 최소화해 산모가 주도적으로 출산을 하는 방식이다.

첫째는 자연주의 출산 과정을 함께 해주는 조산사, 둘라의 도움을 받아 분만실 침대에서 낳았다.

둘째는 둘라의 도움을 받아 분만실 욕조에서 낳았고,

셋째는 경력직답게 둘라 없이 분만실 욕조에서 수중 분만을 했다.

셋째까지 모두 같은 교수님께서 받아주셨는데,

마지막 출산 때 새벽 네 시가 넘어 콜을 받고 헐레벌떡 달려오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서로 힘 안 들이게 새벽에 낳지 말라고 했잖아요. 셋째면 이제 시간 컨트롤쯤 할 수 있잖아.”

프로로서의 면모를 보여드리지 못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꺼낸 건, 둘라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첫째 때와 둘째 때 도와주신 둘라가 각각 다른 분이었는데,

(내게는 특이하게 느껴졌던 점이) 두 분 모두 아이를 출산해 본 경험이 없으셨다.

출산에 있어 내가 어느 정도로 둘라에게 의지했느냐 하면,

둘째를 낳던 2021년, 코로나로 분만실에 한 명밖에 들어올 수 없었을 때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 대신 둘라를 선택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내 목숨(?)을 맡긴 사람이

그 극한의 상황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도 진통이 오는 부위를 정확히 아시고

손이 벌게 지도록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시는지,

첫째 낳고 본인이 스트레스성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던 마음 약한 남편을 데리고 들어오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몸무게는 작아도 머리가 특별히 컸던 둘째가 막 나오려는 순간

고통에 몸부림치며 악을 쓰고 있을 때

내 귀에 대고 “소리 지르는 힘 아껴서 한 번에 밀어요.”

조용하고 단호한 그 한마디에,

명령 하달받은 하사관처럼 이 악물고 한 방에 쑥 밀어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첫째의 철학 선생님의 경우도 유사하다.

첫째는 7살부터 4명의 친구들과 그룹이 되어, 집으로 오시는 철학선생님께 수업을 받는다.

셋째를 임신 중이던 어느 날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있느라

의도치 않게 거실에서 진행되는 수업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철학 선생님이 우아하게 책이나 읽고

가끔 적절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와 같은 간단한 질문만 던지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상상도 못 했다. 철학 수업이 그렇게 중노동일 줄은.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 먼저 말하겠다고 난리 법석인데,

선생님은 그 말 같지도 않은 말들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시며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스레 대답을 해주셨다.

단 한 명의 아이도 발언권을 얻지 못해 속상한 아이가 없었고,

말 같지 않은 말에 대꾸를 받지 못한 아이도 없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예상하시듯,

당연히 철학 선생님은 비혼주의자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시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선생님이셨지만 동시에 친구 같았다.

엄마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10년도 전에 유행한 미드 <Gilmore girls길모어 걸스>에 친구 같은 엄마가 나오지만, 그런 엄마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그 극작가가 엄마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15년이 넘게 공공미술 기획자로 일하고 있지만

내 손으로 직접 작품 하나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이 세상에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낸다는 게 도무지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늘 놀랍기만 하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에 대한 동경,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독창적인 감각에 대한 감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판타지다.

잘 모르는 세계에 대한 순수한 애정.

내가 아는 어떤 기획자는 작품이 너무 좋으면

그 작품의 작가 작업실을 방문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한다.

혹시나 작가에 대해 실망스러운 부분을 발견하게 될까 봐.

억지로라도 잘 모르고 싶은 거다.


출산과정을 돌이켜보면,

극한의 상황에서 나에게 정말 필요했던 건 동지애나 공감이 아니라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는 차분함과 함께 동요되지 않는 격려였던 것 같다.

첫째를 낳을 때 도와주셨던 둘라는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진통 시간 내내 함께 있었는데,

돌아가시며 하신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출산한 날은 아무리 피곤해도 집에 돌아가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흥분과 감동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란다.

너무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아서,

오히려 더 순수하게 사랑할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뭐라도 써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애정과

내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것에 대한 무한한 집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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