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튀르키예 사람들은 친절했다.
느긋하게 오후가 돼서야 밖으로 나왔다. 이런 여유로운 흐름, 좋아. 아주 좋아.
출발 전, 숙소 근처 빵집에서 터키쉬 커피 세 잔과 빵을 시켜 배를 채웠다. 터키쉬 커피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써서 물을 타마셔야만 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부터 너무 호되게 바가지를 썼던 우리는, 튀르키예에서는 아차 하면 코 베어간다는 말을 많이 들은 나는, 어제부터 지레 겁을 먹고 물건이나 음식 가격을 꼬박꼬박 물어보고 있다.
하지만 작은 동네 가게는 대부분 양심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방어적인 태도로 가격을 물어본 게 민망할 정도로 다들 정직하다. 타당한 이유 없이 커뮤니티 글 몇 개만 보고, 어학연수 시절 보았던 일부 튀르키예 사람들만 생각하고, 그들 전체를 경계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스탄불 교통 카드를 사러 트램역으로 가는 길. 이번에는 드디어 구매에 성공했다. 이집션 바자르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더 이상 버스 안에서 버티기가 힘들어 갈라타 다리를 건너기 전에 내렸다.
갈라타 다리 위에는 고등어를 잡는 사람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통 안에서 파닥이는 물고기들과 수산물을 파는 사람들. 마치 자갈치 시장을 연상케 했다.
조금 걸으니 다행히 언제 멀미가 났었냐는 듯 한결 나아졌다.
이집션 바자르에 도착했다. 시장에는 가게마다 번호가 붙어있는데,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어가 통하는 31번 집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들르지 않았다. 벌써부터 기념품을 사게 되면, 그건 이미 기념품이 아니라 짐이었다. 한국 가기 전에 다시 와야지.
정해진 일정 없이 시간을 때울 겸 온 거라, 이곳저곳을 다니며 점심과 주스를 사 먹었다. 쨍한 햇빛 아래서 돌아다닌 탓일까, 그렇게 많이 걷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빠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거의 명절의 우리나라 버스터미널만큼이나 사람이 바글거렸다.
아빠의 처진 컨디션에, 뜨거운 태양에. 다들 한껏 지친 얼굴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더니 웬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물을 주고 가셨다.
날이 덥고 해가 쬐는 시간이었던지라 순전히 호의에서 주신 걸 텐데, 의심이 많은 나는 차마 아이에게 그 물을 먹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튀르키예 사람들은 참 순수한 것 같은데 내가 받아들이지를 못 하는 것 같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금 씁쓸해졌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 시작은 좋았다. 낯선 이들을 보며 해맑게 웃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자 배가 고파 울기 시작했다. 미처 밥때를 챙기지 못한 어미가 문제였다.
줄곧 아이를 주의 깊게 보던 한 여자분이, 아이를 달래며 묵주같이 생긴 목걸이를 주셨다. 아이는 한참이나 목걸이를 가지고 놀았다. 덕분에 겨우 버티며 갈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튀르키예 사람들 정말 순하고, 친절하다 싶었다. 아무런 대가 없는 호의가 고맙고 감사했다.
숙소로 돌아와 카파도키아 벌룬 투어(열기구 투어)를 예약했다. 사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마지막까지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가격이 꽤 저렴한 시즌이고, 부모님은 두 번 오기도 힘든 곳이라 결단을 내렸다.
법적으로 아이를 데리고는 탈 수가 없어서 나는 타지 않으려 했는데, 나 역시 오랫동안 꿈꿔왔던 투어라 포기하기에는 아쉬웠다. 부모님의 투어 다음날로 내 것도 예약을 했다.
20대 때, 카파도키아의 사진을 보고 크게 감동을 했었다. 엄마의 여행 버킷리스트가 스위스였다면, 나의 버킷리스트는 열기구 투어였다. 이제 곧 그 꿈을 이루러 간다. (내 버킷리스트는 엄마보다 조금 많이 많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