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주지 않고 거절하는 법

거절 속에 담긴 진짜 배려

by 오월

거절은 언제나 어렵다.

상대방이 실망할 얼굴이 떠오르고,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되고,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애매한 대답으로 넘어가려 한다.

“글쎄, 그때 되면 생각해볼게.”

“좀 바쁠 것 같긴 한데…”

“일단 알아볼게.”

하지만 이런 답들이

더 큰 상처를 만들어낸다는 걸

언제쯤 깨달을까.

명확하지 않은 거절은

상대방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고,

결국 더 큰 실망을 안겨준다.


친구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나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여행 스타일도 다르고,

그 시기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차마 “싫어”라고 말할 수 없어서

“일정 확인해보고 연락할게”라고 했다.

친구는 며칠 뒤 다시 물어봤고,

나는 또다시 “아직 확실하지 않아”라고 답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솔직한 거절보다

애매한 회피가 훨씬 더 상대방을

지치게 만든다는 것을.


거절에도 방법이 있다는 걸

조금씩 배워갔다.

먼저, 거절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날은 다른 약속이 있어서”라고 하면

상대방은 “그럼 다른 날은?“이라고 묻는다.

“요즘 너무 바빠서”라고 하면

“언제쯤 한가해질 것 같아?“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고마운데, 지금은 어려울 것 같아.”

“제안해줘서 고맙지만, 참여하기 힘들 것 같아.”

‘지금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앞으로도 어렵다는 뜻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작은 완충장치가

거절의 날카로움을 조금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때로는 거절 뒤에

작은 배려를 덧붙이기도 한다.

“미안, 그 모임은 참석하기 어려울 것 같아.

대신 다음에 우리 둘이서 밥 먹을까?”

“그 일은 도와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볼게요.”

완전한 거절이지만,

관계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진심일 때만 해야 한다.

실제로 대안을 제시할 의사가 없다면

괜한 말은 하지 않는 게 낫다.


가장 어려운 건

가까운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때다.

가족이 무리한 요청을 했을 때,

친한 친구가 나에게만 의존하려 할 때,

연인이 내 한계를 넘어서는 걸 원할 때.

이럴 때는 먼저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네가 힘든 건 이해하지만,

나도 지금 여유가 없어.”

“정말 도와주고 싶지만,

내 능력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우리 관계가 소중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도와주고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정직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애매한 거절은 관계에 균열을 만들지만,

솔직한 거절은 관계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


거절을 배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상대방을 생각해서 하는 거절과

나를 지키기 위한 거절은

사실 같은 것이라는 점이다.

내가 무리해서 수락했다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마음에 없는 일을 하면서

불만이 쌓이는 것보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거절하는 게

모두에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준다.

진짜 배려는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게 아니라,

정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요즘은 거절할 때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됐다.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상대방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보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거절당했을 때도

예전보다 덜 상처받는다.

상대방의 거절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만의 상황과 판단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됐으니까.

거절을 주고받는 것도

어른들의 소통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완벽한 거절은 없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말해도

상처받을 사람은 상처받고,

오해할 사람은 오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애매하게 넘어갈 수는 없다.

진심을 담아 정중하게 거절하고,

그 후의 반응은 상대방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

그것이 어른의 거절법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거절도 하나의 표현이고,

표현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가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준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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