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는 연습

듣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by 오월

우리는 자주 듣고 있다고 착각한다.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고,

때로는 좋은 조언까지 건네면서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작 우리 마음속은 바쁘다.

‘이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할까?’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어떤 답을 해줘야 할까?’

온갖 생각들로 소란스럽다.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요즘 너무 힘들어.”

나는 즉시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친구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그냥… 힘들어.”


그때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친구가 원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걸.

그저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그 힘든 마음을 그대로 받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걸.


##


친구가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을 때도 그랬다.

나는 듣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친구의 마음보다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친구가 원했던 건

해결책이 아니라 이해였는데도.


진정한 듣기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을 듣는 것이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라는 말 뒤에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수 있고,

“아무도 날 이해 못 해”라는 말 뒤에는

‘외롭다’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괜찮다”는 말 뒤에

‘괜찮지 않다’는 마음이

숨어 있기도 하다.


##


친구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나는 이제 그 말 뒤에 숨은

‘변하고 싶지만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마음을 들으려 노력한다.


그리고 성급하게

“그러면 안 되지”라고 말하는 대신,

“힘들구나”라고 먼저 말해본다.


마음을 듣는 연습을 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침묵의 힘이었다.


상대방이 말을 멈췄을 때

서둘러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 않는 것.

그 침묵 속에서 상대방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나올 때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힘들어”라고 말한 후 이어지는 침묵을

견디지 못해 “왜?“라고 묻던 나는,

이제 그 침묵을 조금 더 기다려본다.


그러면 종종 상대방이 스스로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


물론 나도 아직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있고,

상대방의 감정보다 논리에 집중할 때가 있다.


지난주에도 후배가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나는 또다시 “그럼 이렇게 해봐”라는

말부터 했다.

후배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는 걸 보고서야

깨달았다. ‘아, 또 그랬구나.’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안, 네 마음을 먼저 들었어야 했는데”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진짜 들어주었을 때

상대방의 표정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다.


며칠 전 친구가 연애 문제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예전 같으면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아”

또는 “좀 더 노력해 봐” 같은

말을 했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많이 혼란스럽겠다”라고 했더니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나는 계속 들었다.

친구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들을,

혼란스러운 마음을,

아프지만 놓고 싶지 않은

그 관계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을.


그날 밤 친구가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오늘 처음으로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어.”


##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듣는 연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마음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됐다.


누군가가 나에게 조언을 늘어놓을 때,

나 역시 해답보다는 이해받고 싶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도

해결책보다는 “정말 힘들겠다”는

한마디를 원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내 감정도 더 솔직하게 표현한다.

“조언보다는 그냥 들어만 줬으면 좋겠어”라고

미리 말하기도 하고,

“지금은 해결책을 찾고 싶지 않아,

그냥 힘들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하기도 한다.


마음을 듣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걸 배웠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마음,

내 생각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우선하려는 마음.


이런 마음가짐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작은 대화에서

조금씩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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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 내게

마음을 열어 보일지 모른다.

그때 나는 또다시 연습할 것이다.


말보다는 마음을,

해답보다는 공감을,

조언보다는 이해를 먼저 건네는 연습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조금씩, 천천히, 진심으로

듣는 연습을 계속해나가면 된다.


그 연습 속에서 우리의 관계는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진짜가 될 테니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내 마음도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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