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파도에서 중심 잡기
화가 나는 순간,
우리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된다.
평소에는 차분하던 사람도,
늘 배려심 많던 사람도
화라는 감정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그리고 나서 후회한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어떻게 저런 말이 나왔을까.”
화는 잘못된 감정이 아니다.
하지만 화에 휘둘리는 것과
화를 느끼는 것은 다르다는 걸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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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화가 나면
즉시 반응했다.
상대방에게 따져 묻거나,
문을 쾅 닫고 나가거나,
차가운 말로 상처를 주거나.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옳다고 느껴졌다.
내 분노가 정당하다고,
상대방이 마땅히 혼나야 한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늘 공허했다.
화를 내고 나서 달라진 건
결국 아무것도 없었고,
관계만 서먹해졌다.
그때 깨달았다.
화는 표현해야 할 감정이지만,
휘둘림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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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화가 날 때
잠시 멈춘다.
심호흡을 한 번 하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잠깐만”이라고 말하고
그 자리를 벗어난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화가 나는데 왜 참아야 하지?
당장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두면
화의 온도가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됐다.
뜨거운 분노는 차가운 실망으로,
날카로운 분노는 서운함으로,
맹목적인 화는 구체적인 아쉬움으로
변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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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날 때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진짜 화난 이유가 뭘까?”
상대방이 약속 시간에 늦었을 때,
정말 화가 난 건 늦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 있다.
동료가 내 의견을 무시했을 때,
진짜 화가 난 건 무시당한 게 아니라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좌절됐기 때문일 수 있다.
화의 뿌리를 찾으면
더 정확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화가 난다”가 아니라
“서운하다”, “실망스럽다”, “아쉽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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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는 대신
내 마음을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
“왜 이렇게 늦었어!“가 아니라
“기다리면서 걱정됐어.”
“넌 맨날 그래!“가 아니라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힘들어.”
“너 때문에 짜증나!“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이 많이 상했어.”
같은 감정이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면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진다.
공격이 아닌 표현으로,
비난이 아닌 설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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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화에 휘둘릴 때가 있다.
지난주에도 가족과 다투면서
결국 목소리를 높였고,
나중에 후회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화가 식고 나서
다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아까는 내가 너무 흥분했어.
다시 이야기해볼까?”
화에 휘둘린 자신을 받아들이고,
그래도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도 어른의 감정 사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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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나쁜 감정이 아니다.
때로는 화가 나야 할 상황도 있고,
분노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
하지만 화에 휘둘리는 것과
화를 활용하는 것은 다르다.
화를 느끼되 잠시 멈추고,
화의 진짜 이유를 찾고,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전하는 것.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화와 더 지혜롭게 지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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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화가 날 때
이렇게 생각한다.
‘이 감정도 내 마음의 일부구나.
지금 내가 뭔가 중요한 걸
잃었다고 느끼고 있구나.’
화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위협받을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의 신호인 셈이다.
그 신호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신호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화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은
화를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화를 느끼면서도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