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믿는 순간, 아이의 하루가 바뀐다.
지난해 여름, 어느 교사의 고백.
“점토 놀이를 하다가 자꾸 물을 묻히고,
교구장 위에 올라가 창밖을 내다보거나
바닥에 드러누워 몸을 둥글게 굴리는 아이들.
하루에도 몇 번씩 ‘안 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와요.
하지만 요즘은 그 말조차 쉽게 쓸 수 없는 시대죠.
교사 언어도 평가되고,
아동학대가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요.
그래서 ‘다른 거 해보자’,
‘앉아서 놀아보자’ 같은 완곡한 표현으로
하루를 겨우겨우 넘기고 있어요.”
나는 교사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혹시, 그 모든 행동은
‘문제행동’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하고 있는 놀이는 아닐까요?”
그날 이후,
교사들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점토를 물에 적시려는 아이에게
“촉감이 다르지?” 하며 함께 만져보았다.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더 풍부한 감각 놀이로 연결했다.
교구장에 올라가는 아이가 걱정되어
교구장을 치우고 대신 창가에 매트를 깔았다.
안전하게, 천천히 바깥 풍경을 바라보게 했다.
누워서 둥글거리던 아이 곁에 함께 누웠다.
천장을 바라보며
같이 스티커를 붙이고
풍선을 매달아 흔들리는 모양을 관찰했다.
그 아이는 비로소 교사와 눈을 맞췄다.
누운 자세 그대로, 웃으며.
『장애 영유아 놀이 지원 교육』(2020, 서울시육아종합지원센터) 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뇌병변 장애 영유아가 침 흘림 방지를 위한 손수건을 물고 씹는 행동,
자폐성 장애 영유아가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는 행동”을
문제행동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고 본다.
‘지금-현재’의 놀이를 관찰하여 의미를 이해하고
배움으로 갈 수 있도록 놀이 환경을 구성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이의 행동,
정말 문제일까?
혹시 이건,
배움이 시작되는 놀이는 아닐까?
교사는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그 행동을 통제할 것인지,
확장할 것인지는
오롯이 교사의 해석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사들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아이의 행동을 놀이로 해석하고 있는가?”
“그 배움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바로 교사다움의 시작이니까.
“문제행동이 아니라, 배움의 언어일 수 있다.”
그 말을 믿는 순간,
교사의 눈이 바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