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아른 괴담록
"엄청 잘 놀았나 보네? 옷이 이렇게 더러워진 걸 보니까."
"응!"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이의 하얀 옷은 군데군데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얼굴도 손도 흙투성이였다.
"뭐 하고 놀았어?"
"블록놀이!"
"매일 해도 재밌어?"
"응!"
집에 가면 씻기고, 빨래도 해야겠지만, 아이가 이렇게 지저분해질 정도로 놀았다는 사실이 행복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속을 썩이던 아이가.
"블록놀이가 뭐가 그렇게 좋아?"
"재미있어!"
"그리고?"
"계속 다시 할 수 있어!"
쌓고,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다.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것과는 다르다. 블록으로는 집도, 차도, 다른 다양한 것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재미있다고 아이는 말했다. 뭐든지 만들 수 있다고.
"그래서 오늘은 뭘 만들었어?"
"레고맨!"
"어머, 사람을 만들었어?"
"친구야!"
그래, 친구도 만들 수 있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만들 수 있다. 어디까지나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친구라고 생각할 뿐이지만. 집에 도착하고 나니 저녁이었다. 아이는 씻자마자 피곤했는지 잠에 골아떨어졌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으면. 나는 아이가 벗어 던져둔 옷을 세탁기에 넣고,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
예전에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아들은 그야말로 문제아였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는커녕 놀이 자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폭력적인 성향까지 보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이 아이는 안되겠어요."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새로 들어간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달라졌다. 블록놀이가 사회 정서에 좋다길래, 혹시나 하고 블록놀이를 주로 하는 어린이집에 보냈더랬다. 아이는 점점 웃게 되었고, 옷은 점점 더러워졌다.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려고 눈을 껌뻑거리는데, 어딘가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타닥, 타닥. 아이 방에 가보았다. 아이는 곤히 잠이 들어 있다. 집에는 우리 둘뿐.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타닥, 타닥, 드르르르륵, 타닥.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집 이곳저곳에 귀를 기울였다. 타닥, 타닥, 특트르륵. 자세를 낮추고 집안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세탁기에 눈이 갔다. 힉. 깜짝 놀라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였지, 뭘 본 거지. 뭔가, 그래… 눈이 마주친 것 같다. 뭔가가, 세탁기 안에서 날 보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무슨 이상한 상상을. 타닥, 타닥, 드르륵. 하지만 소리는 확실히 세탁기에서 나는 것 같다. 뭔가, 들어가 있나?
레고맨.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탈수가 끝나지 않은 세탁기의 정지 버튼을 누르고, 문을 열었다. 아직 축축한 세탁물을 하나씩 꺼내 바구니에 넣고, 세탁기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뭔가, 딱딱하고 작은 것이 손에 잡힌다. 꺼내서 들여다보았다. 노란색의, 머리. 처음엔 이게 뭐였지 하고 생각했지만, 금세 떠올렸다. 그거다. 레고에 들어 있는 사람 모양 블록. 그것의 머리 부분. 이거였구나. 그 소리는. 이게 세탁기 안에서 굴러다니는 소리였구나. 아마도 아이의 주머니 같은 데에 들어 있었겠지. 나는 일단 그것을 한쪽에 놓아두고, 다시 세탁물을 하나하나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아직 군데군데 얼룩이 있다. 소매 끝이 빨갛다. 한 번 더 돌려야겠다. 세탁기를 다시 작동시키고, 레고 머리를 집어 들고 소파에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레고 머리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이 부분도 분해가 되는 거였구나.
그나저나 이상하게 생겼다. 멍청해 보이는 얼굴인데도 어딘가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보고 있자니 어쩐지 화가 나서, 집어던질 뻔했다. 나는 그 기분을 간신히 참아내고 레고 머리를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아무래도 피곤한 모양이다. 옷을 갈아입고 자야겠다.
탁, 탁, 드르륵….
…꿈인가. 꿈이겠지.
반쯤 열린 눈꺼풀 사이로, 빨간 몸통이 보인다. 침대 주변을 뭔가가 걸어 다니고 있다. 머리 없는 레고가 서너 명. 아니, 서너 개인가. 머리가 없어서 방향을 못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비틀 걸어 다닌다. 그러다 자기들끼리 부딪히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뭔가 찾고 있나? 뭘 찾는 걸까. 머리를 찾는 걸까. 잘 보면 머리만 없는 게 아니다. 어떤 것은 왼쪽 팔, 어떤 것은 한쪽 다리. 저 부분들도 분해가 되는 거였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파자마 소매 끝에 흙이 묻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어디서 묻혀 왔을까. 세탁기인가. 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였다. 그리고 레고 머리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레고 머리를 손에 잡고 기뻐하는 아이를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차를 몰았다. 아이의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보고,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어제 블록놀이 말고 흙장난도 했니?"
"응!"
"누구랑?"
"레고맨!"
"레고맨이랑… 뭘 했는데?"
"머리 찾기!"
"머리… 찾기?"
"땅에 묻혀 있는 머리를 찾는 거야."
"그래서… 찾았니?"
그러자 아이는 갑자기 갸우뚱하며 물었다.
"엄마가 찾아줬잖아?"
왜일까.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탁 탁 드르륵하는 환청이 들렸다. 세탁기 속에 있던 머리.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아이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어린이집에서 사이 나쁜 친구는 없지?"
"응, 이제 없어."
"그런 친구가 생기면 꼭 엄마한테 말해야 해?"
"응!"
"이름도, 주소도."
"응!"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후, 나는 다시 차를 몰았다.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그곳으로. 소중한 내 아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아이. 하지만 친구는 다르다. 친구는 바꿀 수 있다. 다시 만들 수 있다.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다. 분해할 수 있다. 분해할 수 있다. 땅을 파냈다. 작은 머리들이 묻혀 있을 땅속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 머리들이 여전히 거기 빠짐없이 묻혀 있을지. 파냈다. 파냈다. 거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