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사람

by 허아른


처음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장면은 기억나요.


바람을 피우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을 거예요. 그날도 카페에 앉아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실연의 상처나 상실감 같은 것 때문은 아니었어요. 그런 것과는 좀 다른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요, 이를테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내가 만만한가? 내가 그렇게 우습나? 그런 거요. 화가 났다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하찮은 나.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들이 알아버리면 어떻게 하지? 들켜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누군가, 뒤에서 날 보면서 웃고 있는 게 아닐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번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신경 쓰여서 도무지 견딜 수 없더라고요. 진짜면 어떻게 하지? 진짜로 누가 날 보고 웃고 있으면 어떻게 하지?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돌려 확인했죠. 당연히 웃는 사람 같은 건 없었어요. 심지어, 아예 아무도 없었죠. 멍청이. 웃음이 터질 법도 한데, 웃지 못하겠더라고요. 오히려 찜찜한 기분만 더 커져갔죠.


이상하게도, 시간이 가면서 그 남자와 헤어졌다는 사실도, 그 남자와 사귀었었다는 사실도 잊혔지만, 그날의 일만은 기억에 남았어요. 갑자기 확, 그날의 기분으로 돌아갈 때가 있었죠. 터진다고 해야 할까요? 맞춰놓고 잊고 있었던 알람처럼, 갑자기 그게 나타나요. 그럴 때면 또, 누가 뒤에서 웃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돌리곤 했어요.


아무도 없을 때도 있었지만,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죠. 웃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아마 대체로 평범한 표정이었겠죠? 어쩌면, 앞에 가던 사람이 갑자기 자기를 노려보는 바람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웃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는데도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나면...


'...저 사람, 웃고 있지 않았어?'


그런 생각.


'웃은 것 같기도 한데.'

'아니야. 틀림없이 웃었어.'


그게 시작이었을 거예요. 사람들이 자꾸 절 보고 웃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 건요. 아주 미묘하게 신경 쓰이는 표정조차, 웃고 있는 걸로 보이기 시작한 건요.


처음에는 이게 망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저 사람, 왜 날 보고 웃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짜증 나. 뭐야 정말.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어쩌면 나한테, 내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딜 가도, 뭘 해도 사람들이 절 보면서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이상하잖아요. 아뇨, 확실히 웃는 것처럼 보였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때부터 점점 밖을 안나가게 됐죠.


그래서, 좀 나아졌나요?


아뇨.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아주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죠. 벽 너머에서, 안쪽을 몰래 들여다보면서 누군가 웃고 있는 것처럼, 심지어는 벽속에 많은 사람이 숨어서 절 보고 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아니, 기분이라는 표현은 이상하네요. 확신하고 있었으니까요.


왜지? 왜 웃는 거지? 내가 이상한가? 내 모습이 이상한가? 뭐가 묻었나? 이상한가? 이상한가? 뭐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봤는데, 거울 속의 내가 웃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기 눈을 찌른 건가요? 더 이상 웃는 사람을 보고 싶지 않아서?


네. 그래요.


...


저... 선생님?


네.


제 눈은 이제 안보이겠죠?


네.


선생님.


네.


웃고 계신 거...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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