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사랑 위에, 말은 계속되었다
감정은 끝났지만, 말은 계속됐다.
나는 이별을 받아들였지만, 그는 아직 그 말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정말 그날 헤어진 걸까.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사랑을 끝내기로 마음먹은 바로 그 순간을.
우리는 이미 ‘헤어지자’는 말을 나눴다.
하지만 그 말이 진짜 끝을 의미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는 그날 말했다.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고.
술을 마신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는 부담스럽고 불편하다고.
감정을 말로 드러내는 것이 그에겐 고백이 아니라 위협이었고,
그는 자신의 불편함을 나의 이해로 해결받고 싶어 했다.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감추고 있었던 마음을, 내가 대신 알아차려주길 바랐던 거다.
그래서였을까. 우리가 함께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도,
그는 그것이 진짜 끝이 아니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또 하나의 다툼,
감정이 고조된 대화 속에서 나온 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될 관계라고.
어쩌면 그는 여전히, 말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들은 상대가 오히려 위로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는 건,
감정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감정의 부담을 전가한 것뿐이었다.
나는 정말 끝을 받아들였다.
잘 지내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것은 내가 가진 감정의 모든 예의를 다 모은 인사였다.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
그 결심을 흔들지 않기 위해 정리한 말이었다.
아침 6시 46분.
그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너네 집 가고 있어. 자고 있어도 놀라지 마.”
나는 아침 8시 반쯤에 눈을 떴다.
새벽까지 마음을 추스르느라 늦게 잠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디냐고 묻자, 그는 답했다.
“집 앞이야, 정민아.”
문을 열자, 그가 서 있었다.
그가 눈물을 머금으며 서 있었다.
내가 보낸 말이 진짜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된 표정으로.
그리고 날 보자마자,
그는 그 큰 마스크를 천천히 눈으로 끌어올렸다.
우는 모습을 가리기 위해.
그 손짓은 설명보다 먼저였고, 미안하다는 말보다 조용했다.
그 순간, 마음이 다시 뒤를 돌아봤다.
이별은 말로 끝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내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던 그 순간까지도,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여전히 우리가 함께 찍은 커플 사진이 남아 있었다.
그 사진은 ‘헤어지자’고 말한 그날 밤에도,
내가 마지막 인사를 건넨 순간에도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그가 우리 집 앞에 있다고 연락하기 직전
조용히 내려갔다.
사진이 내려간 순간,
그의 마음이 말보다 먼저 뒤늦게 도착한 듯했다.
그는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을, 그 사진 하나로 조용히 전했다.
내가 문을 열며 “들어와”라고 했고,
그 말로 시작된 대화는 네 시간 넘게 이어졌다.
단순히 이별을 확인하는 말만 오간 건 아니었다.
각자 그동안의 감정과 속마음을 꺼냈고,
그동안 쌓아둔 말들이, 조심스레 터져 나왔다.
그는 그날 이후로,
내가 연락을 차단했는지 하루 종일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 전까지는, 내가 또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날, 내가 정말로 뒤를 돌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그 말의 무게를, 그도 비로소 실감한 듯했다.
그는 먼저 '그만하자'고 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길 바랐다.
그는 울었지만, 입술은 단 하나의 문장만 흘렸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이상했다. 그 말은, 상대가 느끼고 건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 말을 꺼냈고,
그걸로 모든 책임을 정리했다.
그 ‘최선’이란 말 안에는, 상대에 대한 이해보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려는 마음이 먼저 깃들어 있었다.
나를 떠나면서도,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만은 이해받으려 했다.
항상 다툴 때마다 그는 결정을 나에게 맡겼다.
감정의 방향도, 관계의 결과도
끝내는 내가 대신 말해주길 바랐던 거다.
익숙한 방식이었다.
감정의 결말을 나에게 맡기고, 본인은 말의 뒤에 숨었다.
“그럼 넌 어떻게 하길 원해?”라는 물음에 나는 대답했고,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결국에는 내가 여러 상황을 가정하며,
“너라면 어떤 선택이 좋겠냐”고 되물었다.
그제야 내 쪽으로 기운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만하자’는 말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을 긋지 않았다.
“카카오톡, 메시지, 전화까지 다 차단하는 건 싫어.”
나도 “그건 옳지 않다”며 동의했다.
“힘들 땐 연락하는 걸로 하자.”
그렇게 우리는,
관계의 형식만 겨우 정리하는 어정쩡한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연락하다보면… 우리, 다시 사귈 수도 있는 거야?”
“그럼, 만나러 와도 돼?”
그는, 끝내 여지를 놓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럼…나의 첫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제야 나는, 마음을 접어뒀던 날들의 감정이 확 밀려오는 걸 느꼈다.
그래서 평소와 달리,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나랑 만난 시간도 있었으니까,
앞으로 누굴 만나든 나한테 하듯이 하면 되겠지.”
그는 서둘러 말을 고쳤다.
“아니.”
“너랑 이제 끝났으니까. 내일부터 시작되는 나의 하루 말이야.”
그 말이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미 끝낸 줄 알았던 감정이, 그 말 한마디로 다시 밀려왔다.
정말 이상한 건,
그 말을 이별 직후에 태연히 내뱉는 그의 모습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말의 여백을 나에게 남겼다.
뜻은 말하지 않았고, 이해는 내 책임이었다.
그게 정말 하루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이별 직후인 나에게, 왜 굳이 그걸 묻는 걸까.
모든 의미를 지워야
비로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자신의 감정을 끝내 말로 옮기지 못했고,
해석과 결말은 모두 내게 미뤄졌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우린 여전히 반복 중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났고, 나는 마침내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가 집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결정,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그 말은 대화가 아니라,
너무 늦게 흘러나온 마음의 메아리였다.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의 마음.
그는 늘 감정보다 시간을 먼저 떠올렸다.
그가 내뱉지 못한 말들이,
방 안의 공기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새벽의 침묵은,
그 눈빛 속의 눈물은,
마지막까지 회피하던 그의 태도는,
나를 놓게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 눈물은 장례였고,
그는 조용히 다녀간 조문객에 불과했다.
남겨진 슬픔과 이별을, 끝내 나 혼자 애도했다.
말보다 늦은 감정은, 도착했을 때 이미 늦어 있었다.
그의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이 너무 늦게 왔다는 사실이
나를 더 아프게 만들었다.
감정을 끝내 말하지 않은 사람과, 마침내 등을 돌린 사람.
남은 건 그 차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