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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관계를 그렇게 쉽게 정의하지 마

다가간 사람만이 아는 거리

by 정민

제 3장.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사랑은 서로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일이었어야 했다.


모든 사랑이 이렇게까지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감정을 복기하지 않고는 끝낼 수 없는 관계도 있다.


어떤 독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렇게까지 써야 해?”라고.


하지만 감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과의 사랑은,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써야만 끝이 난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남긴 침묵의 구조를

정확히 해석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 글은 누구를 탓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감정의 번역이 어떻게 실패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오역에 대한 구조적 복기다.


감정은 지나갔지만,

감정이 지나간 자리엔 ‘패턴’이 남았다.

나는 그 패턴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감정을 표현했고,

그는 감정을 해석했다.


나는 다가갔고,

그는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사랑을 나눈 게 아니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감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차이가, 결국 끝을 만들었다.


말은 오갔지만 마음은 자주 어긋났고,

그 어긋남이 쌓여 마침내 거리가 되었다.


이 장은, 그 다름의 기록이다.




3-1. 관계를 그렇게 쉽게 정의하지 마


그 사람이 말했다.

“넌 마음의 문을 안 여는 사람이야.”


그 말은,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낯설고 오래 남은 말이었다.


그건 단지 한 사람이 내게 건넨 판단이 아니라,

내가 지켜온 관계 방식 전체를 오해한 말이었다.


하지만 진심은 언제나 신중하다.


나는 누군가를 가까이 두기 전,

질문을 건네고,

어색한 공기를 먼저 걷어내며,

분위기를 살핀 뒤 대화를 연다.


그에게 보인 건,

내가 아닌 사람들과의 표면적인 거리였는지도 모른다.


문득 그가 내게 물은 적 있다.

“그 사람을 왜 친하다고 생각 안 해?”


나는 대답했다.

“식사 한 번, 술 한 잔 했다고

어떻게 바로 친하다고 할 수 있어?”


그 말이 낯설고, 멀게 들렸던 것 같다.

아마 그 순간부터,

그는 내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며칠 뒤 그는 또 물었다.

“왜 친구들은 자주 안 만나?”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친구들을 만났고,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나는 30대에 접어든 이후,

어릴 적 친구들보다는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더 많았다.

대부분은 각자의 일로 바쁜 직장인이었고,

나 역시 본가가 아닌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주 만나기보다는,

서로의 상황을 배려하며

조심스레 마음을 건네는 방식이 더 익숙했다.


그는 관계를 ‘자주 보는 사이’로 정의했지만,

나는 함께한 시간의 결보다

그 안에서 나눈 대화의 온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끔의 연락, 드문 만남이라도

단 한 번의 진심이 오간다면,

나는 그 사람을 가까운 관계로 여겼다.




그래서 나는,

나를 내보여야 하는 순간들에선

언제나 분명하고, 진심으로 다가갔다.


낯선 사람들과의 자리에서도,

그의 가족 앞에서도,

나는 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내가 아직 마음을 다 열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와 반대로, 그는 낯을 많이 가리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말수가 적었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쉽게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런데 술이 들어가면 달라졌다.

분위기가 편해지면,

“좋은 사람”, “믿어도 되는 사람”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꺼냈다.


그날의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

사람에 대한 인상이 바뀌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그에겐 ‘기분이 좋을 때 다정해지고,

상황이 편할 때 웃는 관계’가 익숙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천천히 마음을 나누는 방식은 낯설었을 것이다.


나 역시 술자리를 좋아했다.

여럿이 웃고 떠드는 그 순간들을 즐겼고,

가끔은 분위기에 녹아드는 게 마음을 쉬게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만으로,

진심을 나눴다고 느끼진 않았다.


관계는 단지 몇 마디 말이나,

순간의 인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순간의 온기에 기대어 자신을 풀었고,
기분이 지나가면, 관계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는 느림 속에서 진심을 확인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은 순간에 빠질 수 있어도,

가까움은 시간에 쌓여야 했다.


나는 느림의 관계를 택했다.
마음이 천천히 쌓이는 걸 믿었다.


쉽게 닿는 마음은,
쉽게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가 내게 “왜 그렇게 문을 안 여냐”고 말했을 때,

감정을 나눈 적 없던 사람이었기에,

그 한마디는 유난히 낯설고, 납작했다.


그 말은 나라는 사람 전체를 단정 지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단정이 내 마음을 틀리게 만들었다.


그때 비로소 생각했다.

왜 그는 나를 그렇게 쉽게 규정했을까.


그 문장이 지나간 뒤에도,

나는 오래도록 내 마음이 틀린 것만 같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은 종종 말했지만,

감정은 함께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 사이의 거리와 선은

그가 먼저 마음대로 정해두고 있었다.


그 선은, 아직 아무 말도 오가기 전부터

혼자 그려둔 지도 같았다.


그 말들은 결국,

감정을 나누지 않기 위한 방패였을 뿐이다.


그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채,

정의하려는 말처럼 들렸다.


관계를 ‘정의’하려 한 쪽과,

‘이해’하려 한 쪽.


그 차이는 작았지만,

이해되지 못한 채 쌓여

끝내, 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에게 ‘관계’는 몇 장면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나에게 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친밀감보다

함께 쌓은 날들과 반복된 온기 속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보지 않으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로 보지 않았던 건 아닐까.


어떤 관계든, 정의를 서두르는 사람은

진짜 감정을 이해하려는 과정을 생략한다.

사랑도, 우정도 그랬다.


관계는 감정처럼, 리듬과 온도를 가진다.

서두르지 않고, 오래 머무는 법을 함께 익혀가야 한다.


표현을 잠시 멈춘 것만으로도
그는 내가 다정하지 않다고 느꼈다.


감정을 나눈 적 없던 사람이었지만,
그 기분을 맞추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특히 몸과 마음이 가장 가까워져야 할 순간조차,

온기를 건네야 했던 쪽은 늘 나였다.


그에겐 따뜻함이 자연스레 깃들길 바라는 듯했다.

나는 그 온기를 만들기 위해 늘 먼저 불을 지폈다.




그는 나를 정의하려 했고,

나는 그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질문은 문을 열고, 단정은 문을 닫는다.

그의 말은 묻는 말이 아니라, 이미 답을 정한 말이었다.


그가 본 내가 전부였다고 해도,

그 안엔 오해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끝내 닿지 못한 건

옳고 그름의 차이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는 언어가 서로 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대로 두드려보지 않은 문을,

닫혔다고 말할 순 없었다.


그는 감정을 나눈 게 아니라,

감정을 통제하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랑은 흐르지 못했고

늘 누군가의 리듬만 따라야 했다.


닫힌 건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이해하려는 태도였다.


그러니, 끝이 아니라

닿지 못한 언어의 어긋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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