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같은 속도로 숨 쉬지 않았다
서로를 좋아했지만,
호흡은 끝내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같은 공기를 마셔도,
내 숨은 그의 숨과 반 박자 어긋났다.
같은 길을 걸었지만,
마음은 자꾸만 어긋났다.
언젠가부터,
같은 곳을 걸어도 나는 자꾸만 벽을 느꼈다.
하지만 처음엔 달랐다.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우리를 더 가깝게 해줄 거라 믿었다.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함께하는 순간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의 흐름에 발을 맞췄다.
“산책 겸 돌아다녀 볼까?”라는 말에도,
내 피로보다 그의 웃음을 우선순위에 두곤 했다.
예상치 못한 코스, 낯선 골목의 술집도,
그 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따라간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양보는 피로로 변했다.
예전엔 웃음을 주던 다름이,
이제는 숨을 막는 간격이 되었다.
그 틈이 좁혀질 수 있을까,
잠시 발걸음을 멈춘 적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걸음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 다름은 위로가 아닌 거리로 바뀌었다.
나는 흐름을 붙잡으려 했고,
그는 순간에 흘렀다.
그는 자주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다름이 좋아서 만나는 거잖아.”
그 말은 한때 위로였지만,
점차 균열이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함께 걷는 중에도
내 머릿속엔 늘 동선이 그려졌다.
‘즉흥’은 설렘에서 시작해,
곧 불편함으로 이름을 바꿨다.
몇 번은 맞춰보려 했지만,
결국 그의 리듬에 묻히는 일이 당연해졌다.
‘같은 시간인데 이렇게 다르게 흐를 수도 있구나.’
처음엔 신기했던 그 다름이,
점차 부담이 되었고, 결국 간극이 되었다.
평일 술자리와 주말의 무계획, 여행의 즉흥.
그 반복은 내 에너지를 조금씩 비워냈다.
길거리를 정처 없이 걷는 시간은
내겐 ‘함께 있음’이 아니라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한 번은 소규모 공연이 있는 술집에 가고 싶다며
나를 위해 그가 드물게 미리 장소를 정해두었다.
우린 시작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만석이었다.
공연의 뒷모습을 내려다보는
야외 자리에 자리를 잡은 우리에게
그는 또 말했다.
“안쪽으로 한번 내려가볼까?”
공연을 보기 위해,
계단 끝까지 꽉 찬 사람들 틈에서도
그는 움직이려 했다.
그에게 예고 없는 움직임은 설렘이었지만,
내겐 불편함이었다.
계획 없이 떠도는 이동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이 소진되는 걸 느꼈다.
그 작은 어긋남들이,
일상의 틈마다 거리가 되었다.
“딱히 없어.”
그의 대답은 짧았고, 경로는 늘 같았다.
그의 자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몇 개의 익숙한 길만 맴돌았다.
자유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나는 그 끝을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가게를 미리 정하지 않고,
문 앞에 서서야 휴대폰으로 후기를 뒤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없이 방향을 바꿨다.
그에겐 ‘선택의 자유’였지만,
내겐 매번 다른 포장지를 씌운
같은 하루의 반복이었다.
어느새 동선을 찾고 계획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고,
그는 그 흐름에 익숙해져 있었다.
오래 지나서야 알았다.
그에게 즉흥은 숨 쉬는 방식이었고,
나에겐 감정이 새어 나가 힘을 잃는 틈이었다.
그 틈은,
공연장의 소음 속에서도 깊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내게 더 자유롭게 흐르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처럼
나는 그에게 경직되어 보였을 수 있다.
그 다름을,
우린 너무 오래 지나쳐왔다.
몇 번은 그의 흐름에 맞춰
내가 먼저 불시의 약속을 제안하기도 했다.
때로는 목적 없는 발걸음도,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순간은 괜찮았지만,
방향 없는 흐름은
내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가끔은 그의 즉흥이 내 계획을 살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짧은 생기는 오래 가지 못했고,
다시 피로로 돌아왔다.
서로의 방식은 결국 서로를 힘들게 했다.
그의 자유로움은 내 평온을 흔들었고,
내 계획은 그의 여유를 무겁게 했다.
나는 내 입장도 분명히 밝혔다.
‘무작정 걸어다니는 건,
나에겐 오히려 더 지치는 일이야.’
그런데도 우리의 흐름은 언제나 방향 없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페스티벌 티켓 결제를 앞두고 불쑥 전화를 걸어왔다.
“같이 가볼까?”
갑작스러운 초대였다.
한 번 더 맞춰보자는 마음으로, 나는 따라갔다.
화려한 조명과 사람들의 환호가 파도처럼 번졌고,
나는 무대 가까이에서 발끝을 세워 박자를 맞췄다.
그 순간, 불과 몇 걸음 뒤에 있는 그는
팔짱을 낀 채 파도 밖의 사람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그 순간, 나의 움직임은 자유로워 보였지만,
그 자유는 홀로 흐르고 있었다.
몇 번 함께하자고 했지만
그는 “괜찮아”라며 웃어넘겼다.
평소 술자리가 끝나면 흥을 주체 못하던 그였기에,
무대 앞에서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조명과 함성 사이에서,
나는 혼자만 박자를 맞추고 있다는 기분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그날의 고요는,
음악이 꺼진 뒤에도 우리 사이의 거리를 말없이 보여줬다.
한동안 귀에선 조명의 잔향이 꺼지지 않았고,
발끝에는 혼자 맞춘 박자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 박자를 맞추고 있었고,
그 사실이 관계의 결을 드러냈다.
그날 무대는, 우리 관계의 축소판이었다.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나와,
시선 둘 곳을 잃은 그는
같은 음악 속에서도 서로를 찾지 못했다.
무대 위 조명은 여전히 번쩍였지만,
내 안의 박자는 이미 멈춰 있었다.
우리의 차이는 성격도 태도도 아닌,
살아가는 리듬 그 자체였다.
그는 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겼고,
나는 함께 걷는 방향을 찾고 있었다.
그날의 '괜찮다'는 말도 우리에겐 달랐다.
나는 감정을 꺼내었고, 그는 끝까지 삼켰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같은 곳엔 닿지 않았다.
그 등 사이로,
우리는 다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왜 그렇게까지
속도를 맞추려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잃은 건 속도가 아니라,
같은 숨을 나누는 감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