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의 울고 있던 아이

겉과 속의 괴리

by 지하림

사람들이 말했다.

"넌 어디서든 잘 지낼 아이야."

"참 밝고 예의 바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가 나."


그 말들을 들을수록 더 잘 웃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기뻤고, 안심됐다.

그래서 괜찮은 아이가 되기로 했다.

서운하지도, 속상하지도, 힘들지도 않은.


아침마다 분주한 소리가 북적거리는 게 일상인

친구들을 볼 때면 나와는 조금 멀게 느껴졌다.


내 아침은 종종 어둡고, 무심했다.

간밤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집 안,

소리를 죽이고 존재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럼에도 따뜻한 아침은 있었다.

그래서 자주 믿고 싶었다.

우리 가족도 어쩌면 꽤 괜찮을 수 있다고.


추운 날이면 따뜻한 물을 챙겨주고,

손난로를 데워 주머니에 넣어주고,

갓 지은 밥에 김을 싸서 입에 넣어주던 엄마.


어느 날엔 차로, 어느 날엔 오토바이로,

어느 날엔 손잡고 걸으며 데려다주는 아빠.


옥상에 모여 고기를 구워 먹고,

함께 산책하고, 드라이브하며 도란도란 보냈던 시간들.


그해 가장 포근했던 기억으로 남은 순간들 덕분에

작지만 꺼지지 않는 사랑이

마음속에 자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나도 그 안에서 진짜 아이가 될 수 있었다.


가끔은 준비물을 챙기고도 일부러 두고 나갔다.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챙겨다 주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그런 양면의 시간들이 내면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떤 날엔 날카로운 침묵과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었고,

어떤 날엔 다정한 사랑의 모습이었다.


사랑이 없었던 게 아니라, 있었기에 더 아팠다.

분명히 존재했지만 늘 술이라는 장벽에 막혀

엉뚱한 방식으로 터져 나왔다.


어디서든 예의 바르고,

문제는 절대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되려 했다.

그건 누군가 내 마음을 진심으로 들여다봐 주길 바랐던

도움 요청의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당연히, 당연히도 몰랐다.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표정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의 표정이

같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남들의 시선, 가족의 평온,

누군가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느라

내 마음을 제일 마지막으로 밀어두었다.








사랑이 술을 넘지 못했을 때,

사랑을 받는 법 보다 확인하는 법부터 배웠다.


그렇게 웃는 얼굴의 울고 있던 아이

결국, 확인받고 싶었던 사랑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런 마음을 품고 자라왔는지도 모른다.




당신 안에도 웃는 얼굴 뒤로
울고 있던 아이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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