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받고 싶었던 사랑

사랑과 불안의 경계

by 지하림

사랑 받는 법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호의 앞에서

고마움보다 경계가 먼저 떠올랐다.

어쩌면 나를 위한 마음일 수도 있는 걸 알면서도

늘 의심하며 바라보았다.


사랑을 받는다는 확신보다는,

사랑을 확인하려는 본능이 앞서는 게 익숙했다.


기대하거나 누리는 법보다는 눈치를 보고,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감정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니

케케묵은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못한 채

내내 맴돌고 있었다.


너를 품고 있던 시절 아무도 곁에 없었다고,

다섯 살 된 아이 하나를 데리고

또 다른 생명을 품은 채로 작은 방 안에 홀로 남겨졌다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무심한 손은 있었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기댈 어깨 하나 없던 날들이었다고.


임신한 몸으로 어린아이를 돌보며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버틴 시간,

그 시절의 그녀는 얼마나 무너져 있었을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 세상에 오기도 전부터 짐이었나 싶었고,

태어난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상처였던 것만 같은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를 틀었다.






다른 목소리가 들려올 때도 있었다.


불쌍한 내 새끼.. 엄마새끼...

다 엄마 탓이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사랑해..

엄마가 못난 팔자를 타고나서.....

엄마한테 와서 고생만 시켜서 미안해... 라며

그 시절의 모든 아픔이 당신 탓이라고..


하지만 살결에 새겨지듯 박힌 말들은

한동안 나를 끈질기게도 뒤흔들었다.


"너 때문에 머리카락도 다 빠지고 살도 다 늘어졌어,

한여름에 너 낳느라 하도 고생해서 죽을 뻔했어,

지우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결국엔 나오더라"


사랑과 상처가 뒤섞인

그 말들은 자존감의 자리마다 금을 냈다.


모든 형태의 말들이 사랑이었지만,

견디기 어려운 원망 섞인 목소리를

말끔히 소화시키기에는 벅찼던 걸까.


사랑이라는 말은 따뜻하면서도 아팠고,

품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믿고 싶었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녀가 말하던 혼란스러운 삶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그 상처는 방향을 바꿨다.


분노보다는 연민이 앞섰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묻기보단

그 말을 내뱉어야 했던

그녀의 외로움을 상상하게 됐다.


그녀도 한 사람의 아이였고, 한 사람의 여자였지만,

제대로 된 돌봄도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그 말이 그녀에게도 닿기를 바랐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바람은

그녀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여자로서만

살아온 세월 끝에 남은 누군가의 역할이 아닌,

존재로서 사랑받는 삶을 시작하길 바랐다.


그 바람 하나로 참는 법을 배웠고,

감정을 줄이며 자랐다.






확인받지 못한 사랑

조용히 남아 나를 흔들었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무너질 만큼

그 자리엔 아직 여린 틈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닌

단 한 사람,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이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바람은 오래토록 여전했으나,

끝내 말하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목에 걸린 말들을 눌러 담고,

시간 속에 묻어둔 말들이 모여

아직도 가끔은 내 안에 남아 무게를 만든다.




혹시 당신도 확인받고 싶은 사랑이 남아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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