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하게 된 이유

자기혐오의 시작점

by 지하림

어릴 땐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조금 모자랄 수도 있겠지만,

미움받을 만큼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견디기 어려웠다.


가난한 집안, 잦은 다툼, 문밖으로 흘러나가는 술 냄새..


지극히 평범한 환경이라고 애써 넘기면서도

그것이 내 삶을 설명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당당함은 쑥스러움으로, 쑥스러움은 이내 수치심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싫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묻지 않는 쪽이 나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의 입으로 깎아내리는 일,

그건 아무리 서툰 위로보다 더 잔인했다.


그렇게 말을 줄였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누군가에게 해명이 되어야 하는

사회에서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억울해도 참았고, 외로워도 웃었다.

진심을 말해도 돌아오는 건

내가 감당해야 하는 벅차디 벅찬 조언뿐이었다.


"너보다 더 오래 산 사람들이 바뀌는 게 빠르겠어?,

나보다 덜 산 어린 네가 맞추고 살아야지"


언젠가부터 이 말들이 내 기준이 되었다.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감정은 어리광에 불과했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질투하고, 속이고, 상처를 주었던 어린 내가 떠오를 때마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자책이 나를 짓눌렸다.


누구보다 내 편이 되어야 할 내가,

가장 먼저 나를 외면하고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욕되게 만들까 봐 조심했고,

누군가의 위로가 나의 부끄러움을 더 크게 비출까 봐 입을 다물었다.


감정을 묻는 질문에 웃음으로 답했고,

"그냥", "몰라"라는 단어들이 너무 편했다.

분명히 아픈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게 습관이 되어있었다.






그 모든 선택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지만,

되돌아보니 나를 미워하게 만든 이유였다.


나를 지키려 선택한 방법이 되려 나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왜 그랬어?" 라며 타인이 주체가 되어

수많은 물음표들로 나의 마음을 해 집어 놓는 말이 아닌,


"그랬구나", "괜찮아"..라고

내가 주체로서 돌아오는 괜찮다는 말이 그리웠다.




당신이 가장 미워했던 '자기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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