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할아버지의 퇴근 시간

by 하린

우리는 장남의 아이들이었다.

아빠보다 누나인 고모가 먼저 아이를 낳긴 했지만,

할아버지에게 ‘같이 사는 친손주’라는 건

조금 더 특별한 의미였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이들을 참 예뻐하시는 분들이었다.

외사촌 유건이 오빠가 한 번씩 집에 놀러 오면,

두 분 모두 버선발로 뛰어나와

“아이고, 우리 유건이 왔나~” 하며 반기셨다.


그런 사랑을

우리는 매일같이 받으며 자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복된 일이었다.


우리는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늘 협상을 걸었다.

“밥 한 그릇 다 먹으면, 과자 한 봉지 사줄게.”


낮에는 그렇게 엄마가 과자를 사줬고,

저녁이면 또 다른 봉지를 기다렸다.


할아버지의 퇴근 시간.


그 시간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이제 느그 할배 올 때 다됐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는 집 앞 사거리로 달려 나갔다.

거기엔 작은 슈퍼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늘 그 슈퍼를 지나 집에 오셨다.


우리가 슈퍼 앞에 서 있는 걸 보시면,

할아버지는 말없이 웃으시고

우리 손을 하나씩 잡고 슈퍼로 들어가셨다.

“자~ 골라라.”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물었다.

“할배, 오늘은 비싼 거 먹어도 되나…?”


그러면 할아버지는

조용히 싱긋 웃으시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비싼,

더블 비얀코 아이스크림을 고를 수 있었다.


할아버지 왼손엔 내 손,

오른손엔 서준이 손.

손엔 과자 하나씩 들고

우리는 그렇게

매일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게,

우리 가족만의

조용한 저녁 축제였다.


지금 그 슈퍼는 정육점이 되었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가끔 그 정육점에 고기를 사러 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문득,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깔깔거리던 우리.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지갑을 꺼내시던 할아버지의 손.

그날의 공기.

그날의 웃음.


아직도 내 마음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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