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히어로 아빠

by 하린

우리 집안은 수다스러운 집안이다.

고모도, 삼촌들도, 나도.

누구 하나 말이 짧은 사람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가족이 모이면 자연스레 추억도 수다처럼 흘러나온다.

가끔은 마음이 찌르르한 기억도,

오래 묵힌 웃긴 이야기처럼

꺼내진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또 조용해지는 그런 순간들.

그리고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에피소드가 있다.

수성랜드에서 사촌 언니오빠들과 길을 잃었던 그날이다.


“그때 다은이랑 수성랜드에서 길 이자뿟을때 있잖아…“


그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늘

나보다 다섯 살 많은 고종사촌 민지 언니다.

언니는 항상 “내가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대이” 하며 말문을 여는데,

사실 나는 그날을 더 생생히 기억한다.


그땐 내가 일곱 살이었고,

언니는 국민학교 5학년, 오빠는 3학년이었다.


아빠 가게가 고모 집 근처라,

우리는 가끔 둘 다 들르곤 했다.


그날도 고모 집에 갔다가,

귀여운 어린 사촌동생이 놀러 왔다고

언니랑 오빠가 나를 데리고 수성랜드에 가겠다고 나섰다.


아빠한테 “우리 다은이 데리고 잘 놀아주라~”며

용돈을 받아 들고.


어른 하나 없이,

아이 셋만 버스를 타고 갔다.


가는 길은 잘만 찾았는데

돌아오는 길이 문제였다.

동원국민학교 근처로 가야 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언니가

“이거 동원국민학교 가요?” 하고 물으니까

기사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손사래를 쳤다.

그때부터 언니랑 오빠는 점점 표정이 굳어갔고,

불안은 우리 셋 사이에 천천히 퍼졌다.


버스비는 간당간당했고,

택시는 엄두도 못 냈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이

그냥 어이없었다.


‘저 언니야 하고 오빠야는 왜 저렇게 멍청하게 가만있노.’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빠한테 전화하면 되잖아. “


언니는 당황했다.

큰 외삼촌,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일하시는 데 방해되면 안 된다며 계속 나를 말렸다.

지훈이 오빠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왜? 아빤데 전화해도 되지. 우리 아빠다! “


그 순간만큼은

아빠가 내 슈퍼히어로라는 확신밖에 없었다.

아빠는 항상 나를 데리러 왔고,

내가 어디서 울고 있으면

그건 나보다 먼저 아빠가 아팠다.


나는 민지 언니의 보조가방에 손을 쑥 찔러 넣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동전 하나를 뽑아 들고,

그 길로 공중전화로 달렸다.


언니와 오빠는

“야, 안 된다니까!” 하며 쫓아왔지만

나는 이미

무적의 번호, 74X-5X50 누르고 있었다.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탑모터스입니다.”


“아빠, 내 다은인데요.

우리 언니야랑 오빠야랑 길 잃가먹었어요.”


아빠는 바로 물었다.

“어딘데? 민지 바꿔봐라.”


나는 뒤에 쫓아온 민지 언니를 돌아보고

수화기를 넘겼다.

“언니야, 받아봐라.”


민지 언니는 동전을 더 넣고,

한참을 얘기했다.

지훈이 오빠가 근처 어딘가를 확인하러 다녀오고,

우리 셋은 벤치에 앉아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한 시간도 안 되어,

아빠가 나타났다.


“김다은? 공주?”

그가 팔을 쫙 벌리며 부르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아빠 품으로 뛰어들었다.


아빠 차 조수석에는 지훈이 오빠,

뒷좌석에는 나랑 민지 언니.

그렇게 우리는 고모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가족들 모임에서 회자된다.


“그 쥐콩만한기. 야가.. 우리 다 얼어 있는데, 가방 디비가꼬 동전 뺏어가서 큰 외삼촌한테 전화했잖아.”


“그래도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인가 됐을낀데.. 아이고.. 내가 얼마나 황당하던지..”


“와.. 그때 외삼촌 목소리 듣고 눈물 날 뻔했다 아이가…”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한다.


“그땐… 그냥 아빠 하나면 다 끝났는 거지 뭐.”


진짜 진짜로 우리 아빠는 슈퍼맨 같았다.


아, 아니다



피부가 까매서, 배트맨 쪽이 가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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