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엄마 화장대에서 몰래 립스틱을 꺼내 발라봤다.
입술 선은 넘쳐서 삐뚤빼뚤.
입은 삐에로처럼 됐고,
엄마 구두도 신어봤다.
발이 작으니까 뒷굽이 한 뼘이나 남았다.
그걸 질질 끄는 게 아니라,
또각또각—
진짜 구두 신은 여자처럼
발끝에 바짝 힘을 주고 걸었다.
그 삐에로 얼굴을 하고는
마당을 돌았다.
나도 빨리 어른이 돼서
진짜 립스틱 바르고,
진짜 구두 신고,
진짜 내 맘대로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아~ 나도 빨리 어른 돼서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신고, 내 맘대로 하고 싶다.”
그걸 듣고 있던 아빠가
내 정수리에 꿀밤을 하나 딱 날렸다.
맞은 데를 긁으며 아빠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아빠가 말했다.
“야, 이 가스나야!
니는 뭐 어른 되는 게 좋은 줄 아나?
엄마 아빠 그늘 밑에 있는 게 좋은 줄 알아라!”
그땐 몰랐다.
아니,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돈도 벌고,
피자도 시켜 먹고,
놀이공원도 아무 때나 갈 수 있는데
그게 왜 안 좋은 건데?
그땐
가고 싶은 데 가는 것도
먹고 싶은 거 먹는 것도
다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맨날은 안 되고, 가끔만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안다.
피자는 시켜 먹을 수 있어도,
그거 먹을 사람은 없고.
놀이공원은 아무 때나 가도,
줄 서줄 사람은 없고.
돈은 벌어도,
몸은 아프고.
하고 싶은 건 많아도,
지쳐서 못 하고.
그래서 이제는
그날 아빠가 했던 그 말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니는 엄마 아빠 그늘 밑에 있는 게 좋은 줄 알아라.”
그때 아빠는
내가 아직 작고 귀여운 채로
자기 품 안에 머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삐에로 같은 얼굴을 하고,
구두를 또각또각 울리며 걷는 내게
꿀밤을 준 거다.
그건 “이 가스나야”라는 말이 아니라,
“제발 아직은 자라지 마라”는 말이었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의
서툰 번역이었다.
한 번씩,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할 때,
술 한 잔 들어가고
괜히 옛날 얘기 꺼낼 때,
나는 꼭 이 말을 한다.
“어릴 때,
엄마 구두 신고
립스틱 삐뚤빼뚤 바르고
마당을 또각또각 걸어 다녔거든?
그때 내가 그랬다.
‘나도 어른 되고 싶다.’
그 말 듣고 아빠가 내 머리에 꿀밤 딱 주면서 이랬다.
‘이 가스나야.
니는 어른 되는 게 좋은 줄 아나?
엄마 아빠 그늘 밑에 있는 게 좋은 줄 알아라.’
…그 말,
지금은 뼈에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