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때는 몰랐지

by 하린

내가 어릴 때,

엄마 화장대에서 몰래 립스틱을 꺼내 발라봤다.

입술 선은 넘쳐서 삐뚤빼뚤.

입은 삐에로처럼 됐고,


엄마 구두도 신어봤다.

발이 작으니까 뒷굽이 한 뼘이나 남았다.

그걸 질질 끄는 게 아니라,

또각또각—

진짜 구두 신은 여자처럼

발끝에 바짝 힘을 주고 걸었다.


그 삐에로 얼굴을 하고는

마당을 돌았다.

나도 빨리 어른이 돼서

진짜 립스틱 바르고,

진짜 구두 신고,

진짜 내 맘대로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

“아~ 나도 빨리 어른 돼서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신고, 내 맘대로 하고 싶다.”


그걸 듣고 있던 아빠가

내 정수리에 꿀밤을 하나 딱 날렸다.


맞은 데를 긁으며 아빠를 쳐다봤다.

그랬더니 아빠가 말했다.


“야, 이 가스나야!

니는 뭐 어른 되는 게 좋은 줄 아나?

엄마 아빠 그늘 밑에 있는 게 좋은 줄 알아라!”


그땐 몰랐다.


아니, 어른이 되면

내 맘대로 돈도 벌고,

피자도 시켜 먹고,

놀이공원도 아무 때나 갈 수 있는데

그게 왜 안 좋은 건데?


그땐

가고 싶은 데 가는 것도

먹고 싶은 거 먹는 것도

다 허락을 받아야 했으니까.

맨날은 안 되고, 가끔만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안다.


피자는 시켜 먹을 수 있어도,

그거 먹을 사람은 없고.


놀이공원은 아무 때나 가도,

줄 서줄 사람은 없고.


돈은 벌어도,

몸은 아프고.


하고 싶은 건 많아도,

지쳐서 못 하고.


그래서 이제는

그날 아빠가 했던 그 말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니는 엄마 아빠 그늘 밑에 있는 게 좋은 줄 알아라.”


그때 아빠는

내가 아직 작고 귀여운 채로

자기 품 안에 머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삐에로 같은 얼굴을 하고,

구두를 또각또각 울리며 걷는 내게

꿀밤을 준 거다.


그건 “이 가스나야”라는 말이 아니라,

“제발 아직은 자라지 마라”는 말이었다.

지켜주고 싶은 마음의

서툰 번역이었다.


한 번씩,

사는 게 힘들고 팍팍할 때,

술 한 잔 들어가고

괜히 옛날 얘기 꺼낼 때,

나는 꼭 이 말을 한다.


“어릴 때,

엄마 구두 신고

립스틱 삐뚤빼뚤 바르고

마당을 또각또각 걸어 다녔거든?


그때 내가 그랬다.

‘나도 어른 되고 싶다.’

그 말 듣고 아빠가 내 머리에 꿀밤 딱 주면서 이랬다.


‘이 가스나야.

니는 어른 되는 게 좋은 줄 아나?

엄마 아빠 그늘 밑에 있는 게 좋은 줄 알아라.’


…그 말,

지금은 뼈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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