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었을 때,
엄마는 “여자아이는 피아노 정도는 배워야 한다”면서
나를 동네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그 학원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작은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 옆엔 화분 몇 개가 놓여 있었고,
간판은 살짝 바랜 하늘색 플라스틱 간판이었다.
‘도레미 피아노’.
그 시절엔 그런 간판이 동네에 한두 개쯤은 꼭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연습실 몇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제일 안쪽엔 원장 선생님 방—
거기엔 동네에선 보기 힘든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반짝반짝 윤이 나던 그 피아노 앞에 서면,
괜히 목도 가다듬고 자세를 고쳐 앉게 되는 그런 느낌.
어린 나한텐 그게 마치 궁전의 악기처럼 보였다.
그 피아노 학원 원장님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골저스 했다.
약간 통통하시고, 금테 안경을 끼시고,
풍성한 볼륨의 세련된 커트머리.
벨벳 소재의 검정 원피스를 즐겨 입으셨고,
말소리는… 딱 소프라노.
말할 때마다 멜로디처럼 울렸다.
그때 유치원 다니던 서준이는
내가 학원 가면 꼭 따라왔다.
어린 눈에는 원장실의 웅장한 그랜드 피아노며,
땅땅땅 울리는 연습실 피아노들이
세상에나, 얼마나 신기했겠어.
근데 원장 선생님이 또, 서준이를 엄청 예뻐했다.
서준이가 오면
“아이고~ 우리 서준이 왔나?” 하면서
그 웅장한 그랜드 피아노로
서준이가 좋아하는 동요를 진짜 우아하게 연주해주시기도 했다.
서준이는 그게 너무 좋았나 보다.
그래서 나 따라 피아노 학원 오는 걸 좋아했다.
근데 어느 날, 서준이가
어디선가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하는 사람을 봤는지
갑자기 피아노 학원 와서 자랑을 했다.
“선생님~ 내 이제 서준이 아니에요~
아브라스킹이에요~!”
원장 선생님은 웃음이 빵 터졌다.
“하하하하하~ 아브라스킹? 우와~ 멋진 이름이네!
알았다, 앞으로 아브라스킹이라고 부를게~”
그리고 한 일주일쯤 지나서,
서준이가 또 나 따라 학원에 놀러 왔다.
그때 원장 선생님이
서준이를 보자마자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오우~ 우리 아브라스킹 왔나~?”
서준이는 처음엔 약간 당황한 얼굴로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곧 기억이 났는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아! 맞다~ 내 아브라스킹이에요~”
그땐 그냥 그랬다.
피아노 학원에 따라붙는 동생이 귀찮기도 했고,
원장 선생님이 잘해주는 것도
당연한 줄 알았다.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게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서준이는 그때 참 천진난만했다.
세상물정 모르고 뭐든 신기해하던 아이.
지금은 많이 컸고,
그때처럼 순진하지만은 않다.
어쩌면 나보다 더 현실적인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더 그립다.
그 시절,
서준이가 나 따라 졸졸 따라오던 그 모습도,
아브라스킹이라 불러주며
동요를 연주해 주시던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도.
그건 그냥 스쳐간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가끔
되돌아가고 싶은 장면처럼 아프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