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한 건, 작은삼촌이 장가들 무렵이었다.
그땐 몰랐다.
할머니가 그렇게 아프실 줄은.
당뇨가 있으셔서 자주 손끝에서 피를 뽑아내곤 하셨지만,
그건 그냥 지병이었다.
함께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는 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는 급격히 쇠약해지셨다.
집 근처의 큰 병원에 입원하시고,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오셨다.
병원에서도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던 걸까.
할머니는 거동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국민학교 1학년이었고,
방 안에 누워 있는 할머니는 말 그대로 시체처럼 가만히 계셨다.
기저귀를 차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셨다.
엄마는 천기저귀를 손으로 빨며 간병을 했다.
할머니 방엔 늘 묵직한 냄새가 있었다.
어린 나에겐 그 냄새가,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어떤 느린 이별의 냄새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의 엄마는 날이 서 있었다.
서준이와 내가 유치원이나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는 늘 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잠이 아니라,
기절하듯 쓰러진 것이었을 거다.
아침부터 시체 같은 할머니를 간병하느라 온몸이 긴장 상태였고,
우리가 돌아오면 그제야 마음이 놓여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몰랐다.
엄마가 자고 있는 게 서운하기만 했다.
놀아달라며 엄마를 깨웠고,
엄마는 짜증을 냈고,
나는 또 서운했다.
결국 서준이랑 마당에서 자전거를 탔다.
그게 우리가 매일 반복한 오후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아마도 추석이 지난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갔고,
나는 서준이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엄마는
고모와 삼촌들, 아빠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빠와 작은삼촌 내외가 먼저 집에 도착했고,
TV에선 주말 연속극이 나오고 있었다.
‘서울의 달’이었을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텔레비전 소리 위로
예감하지 못한 소리가 들려왔다.
“어무이—!”
할머니 방에서 아빠와 삼촌의 울음이 터졌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엄마였는지 작은숙모였는지,
누군가가 우리를 막아세우고
엄마 방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씻겨졌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집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람이 잔뜩 와 있었고,
하얀 천이 문에, 벽에 걸려 있었다.
잔칫집 같진 않았다.
하지만 평소와도 너무 달랐다.
그때 처음 봤다.
‘상갓집’이라는 걸.
어른이 된 뒤 엄마에게 들었다.
그 시절엔 동네마다 장례를 치러주는 집이 있어서
사람이 죽으면 전화 한 통이면 집안을 꾸려줬다고 했다.
우리가 자는 사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그 사이에 장례 준비가 시작된 거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할머니가 죽었다는 걸
몰랐다.
나는…
할머니가 다시 나을 줄 알았다.
다시 일어나서
우리를 보고 웃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끝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학교 1학년 때 ‘가족’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괜찮았다.
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할머니 생각이 나더니,
갑자기 말이 막혔고
그 자리에서 울음이 터졌다.
“뿌에엥—”
할머니 생각에 너무 슬펐던 건 기억이 나는데,
무엇이 그렇게 나를 울게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떠올랐던 건지,
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매일 사주시던 과자가 없어져서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저 분명한 건,
그때의 울음이
내가 가진
할머니에 대한
가장 진짜 같은
마지막 기억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