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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정보 전달할려다가 빙수먹고 홈트함

by 엔트로피



좋아, 글을 써보자!
나름대로 ADHD에 관한 브런치북을 연재하고 있는데, 계속 우주 얘기만 하면서 이야기 만들기만 할 순 없다.
솔직히 말하면 해삼, 지렁이, 각종 유니버스 설정하는 게 제일 재밌긴 하다.
하지만 정보 전달하는 글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처럼 ADHD가 있는 사람들은 종종 멍을 때리거나 공상을 한다.
그 이유에 대해 유튜브, 인터넷 검색, AI까지 총동원해서 많이 찾아봤다.
왜 그런지 대충 이해는 했고,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걸 실시간 체험 중이기 때문에 글로 충분히 표현할 자신이 있다.

자, 지금부터 한번 써보자!
ADHD인 사람들이 왜 공상을 많이 할까?
나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브런치에 올릴 글이니까 정확한 정보를 찾아야지.
출처도 확인하고.

검색 시작!
"ADHD 뇌는 기본적으로 흥미 유발이 쉽지 않고, 작은 자극이나 반복적인 일상에 금방 지루함을 느끼며,
그래서 계속 새로운 자극 또는 상상 속 도피를 하게 된다..."

그래, 딱 지금 이 상황이다. 벌써 지루해졌다.
혹시 뭐 재밌는 거 없나? 브런치 앱에 새로운 글 올라왔나?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재밌는 소설을 발견했다.
당연히 직접 읽진 않고, 음성 듣기로 감상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음성 듣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그 글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긴 글을 읽다가 조금이라도 지루해지면 바로 딴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쉽지 않다.
소설을 들으면서 벌러덩 누워 빨래 건조대를 바라봤다.
아침에 널어둔 빨간색 가디건이 창문에서 들어온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가디건을 손으로 살짝 건드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소설이 조금 지루해지는 타이밍에 문득 생각났다:
"아, ADHD 글 써야지!"

그래서 다시 ADHD 관련 정보를 찾아봤다.
"집중할 자극이 없을 때 DMN이 자동으로 활성화되고...
ADHD 성향이 있으면 감각 자극이 약할 때 뇌가 자극 자체를 생성하려는 경향이 커서 바로 공상을 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지루한 과제를 준 뒤 문제 해결 과제를 주면 더 창의적인 해답이 나왔다는 실험 다수..."

창의적이라고?
그냥 귀찮아서 빨리 끝내고 싶은 건데.
어떻게든 빠르게 끝내고 싶어서 잔머리 굴리는 거지.
그걸 창의력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리고 DMN은 또 뭐지?
"DMN은 내측 전전두엽 피질... 후부 대상 피질..."





갑자기 빙수가 먹고 싶어졌다.
어려운 용어가 이어지자 짜증이 났다.

배달 앱을 열고 빙수를 검색했다.
최저 주문 금액도 확인하고, 여러 가게의 메뉴를 비교했다.
딸기빙수와 팥빙수 중 고민하다가 결국 팥빙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 원에 주문했다.

요즘 빙수 가격이 15,000원도 하던데, 만 원이면 아주 합리적인 소비다.

주문을 마치고 다시 벌러덩 누워 창밖 햇살을 바라봤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나가볼까 생각했지만,
이미 빙수를 시킨 데다 나가려면 씻고 준비해야 하니까 귀찮아서 관뒀다.

빙수가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했다.
역시 좋은 세상이다.
핸드폰으로 딸깍 하면 빙수가 바로 쫙 하고 나온다.

빙수를 국밥 먹듯 후루룩 먹으며 지금까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거의 다 쓴 것 같은데, 거의 다 쓴 거면 다 된 거 아닌가?

아직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완성된 것처럼 아주 큰 뿌듯함을 느꼈다.
다시 벌러덩 누우려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지 못했던 글이 몇 개던가 싶어
조금 위기감을 느끼며 마무리를 위해 다시 책상에 앉았다.

"DMN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활발히 작동하는 뇌이고...
주요 영역은 자기 성찰, 자기 평가, 기억 회상, 자전적 생각, 과거-미래 시뮬레이션..."

네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지루하면 공상하는데
ADHD는 너무 자주, 쉽게 지루해져서 더 자주 공상하는 거군.

잘 알겠다.
아주 유익하지만, 하나도 마음속에 와닿지 않는다.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도 굳이 억지로 교훈을 찾아보자면,
내 공상은 쓸데없는 상상이 아니라
나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식이었다.

생존형 몽상가였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교훈은 책상에 앉아 있다 보니 몸이 찌뿌둥하다는 것.
운동을 해야겠다.

나는 요가나 그런 건 정말 지루해서 못 하니까,
15분 단위로 아주 격동적인 홈트레이닝을 해야겠다.

마무리 운동을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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