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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몬 하기 싫어서 지구 멸망시킴 2편

2편: 석유는 흐르고, 국경은 돈다

by 엔트로피

웜홀을 기준으로 지구와 지지구는 우주 공동 탐사 기지를 세웠다.
처음엔 평화롭고 신중한 협력이었다.
국경선이 설정됐고, 질서와 신뢰도 유지되는 듯 보였다.

그러던 중, 국경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천체가 발견됐다.
달처럼 작고 황량했지만,
표면을 조금만 파면 석유가 흘러나왔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견이었다.





이 천체는 곧 ‘석유별’이라 불렸다.

양측은 흥분과 경계심 속에서

이 행성을 공동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자원이 넘치는 만큼, 질서가 필요하다.

서로 그렇게 믿었다.

겉으로는.


하지만 문제는 곧 드러났다.

석유는 지하에서 비규칙적으로 순환했고

석유별은 자전하며 국경선을 계속 이동시켰다


양측은 하루 채굴량을 정해두고,

그 이상은 절대 캐지 않기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

표면적으로는.


석유별에는 지구와 지지구의 채굴 기지가 번갈아가며 배치됐다.


지구는 국제연합 우주개발청 소속

지지구는 만주주의 산업위원회 소속


회담은 평화로웠지만, 내부 회의는 전혀 달랐다.


“쟤들이 순순히 규칙을 지킬 리가 없어.”

“우리가 가만있으면 뒤통수 맞는다.”

“우리가 착해서 손해 보지 말자.”


양측 모두, 서로가 먼저 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야간 채굴

채굴량 데이터 위조

드론을 이용한 상대 구역 스캔


비밀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지구 측 드론이 채굴 기록에 없던 구멍을 발견했다.
좌표는 지지구 측 구역과 겹쳤다.

지구는 항의했다.
지지구는 맞받았다.

“우리도 같은 좌표에서 손실을 발견했다.
먼저 손댄 건 너희 아니냐?”

그날 이후, 회의는 냉랭해졌고
통신 주파수는 점점 닫혔다.
드론 신호는 자주 끊겼고,
불신은 기름처럼 스며들었다.

이후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지지구 측 기지에서 드론 간섭 현상이 발생했고,
양측은 서로를 사이버 공격으로 의심했다.

그러던 중
지지구 방어 위성이 지구 탐사 드론을 요격했다.

지구는 도발로 간주했고,
곧바로 응징 명령을 승인했다.

지구 우주함대의 전술 AI는
지지구 기지 인근 상공에 비살상 에너지 펄스를 발사했다.

하지만

AI는 좌표 해석에 실패했다.
에너지는 석유별 지하 응축층을 관통했고,
고압 상태의 석유는 에너지에 반응해
대규모 열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석유별 내부 구조는 붕괴했고,
중력이 수렴되며 중심핵이 붕괴됐다.

그 자리에,
블랙홀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블랙홀은
근처에 있던 웜홀과 충돌했다.

암흑에너지와 중력이 뒤엉키며
통제 불가능한 슈퍼 블랙홀이 생성됐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구도,
지지구도,
그 사이의 모든 것들도.





.............ㅋㅋ

대멸망 후 이 모든 건
구몬 숙제가 너무 하기 싫었던 어느 날,
내가 급하게 생성한 상상 우주였다.

나는 블랙홀을 만들고,
웜홀을 뚫고,
쌍둥이 행성을 만나고,
기름별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은 두 개의 행성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기어코 도파민 한 방울 짜내서
구몬 숙제를 끝냈다.

만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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