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거울 속 지구
나는 성인용 구몬 영어를 한다.
숙제가 어렵진 않은데, 너무 지루했다.
뇌는 말을 듣지 않았고, 도파민은 출근을 거부했다.
머리는 맑은데, 집중은 하나도 안 됐다.
그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다,
머릿속에서 이상한 상상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블랙홀이 떠올랐다.
블랙홀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웜홀이 떠올랐다.
상상은 순식간에 우주로 튀어 올랐고,
내 머릿속 지구 근처엔, 뿅! 하고 웜홀이 생겨났다.
웜홀은 강한 중력으로 시공간을 휘게 해
두 지점을 연결하는 가설 속 우주적 지름길이다.
하지만 실제 웜홀이 열리려면
‘음의 에너지’ 같은 특이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웜홀은 암흑에너지 덕분에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결과적으로 인간도, 우주선도, 무사히 통과 가능한 웜홀이 생긴 셈이다.
이 소식은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과학자들도, 시민들도 열광했다.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미스터리를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이니까.
지구는 결단했다.
유인 탐사선을 보내기로.
탐사선이 웜홀에 접근하고,
암흑에너지 안정화 장치가 작동했다.
시공간은 부드럽게 휘어졌고,
탐사선은 빛의 굴절 속으로 사라졌다.
그 반대편에서 탐사선이 마주한 건
또 다른 지구였다.
그 행성은 산과 대륙, 해양 분포까지
모두 지구와 너무 닮았다.
대기 조성도 같았고,
심지어 생명 신호까지 감지되었다.
지구는 신중하게 전파 신호를 보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그쪽에서 신호가 도착했다.
“너희는 누구냐? 어디서 왔느냐? 목적이 무엇이냐?”
놀람과 경계심이 느껴지는 짧은 메시지지만
그 안엔 이성이 있었다.
‘말이 통한다’는 증거였다.
지구는 진정성 있게 응답했다.
"우린 침략자가 아니다.
갑작스레 열린 웜홀을 탐사하다가
예기치 않게 이곳에 도착한 것뿐이다."
상대도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도 웜홀이 열려 탐사를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네가 먼저 나타났기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양측은 차분히 대화를 시작했다.
행성 구조, 대기, 생명체, 문명, 정치 체계까지
모든 것이 너무도 닮아 있었다.
단지 용어만 살짝 달랐다.
우리는 ‘지구’,
그들은 ‘지지구’
우리는 ‘민주주의’,
그들은 ‘만주주의’
이 미묘한 차이는
불쾌한 거울 같았다.
닮았기 때문에 불안했다
전혀 다른 존재였다면,
우리는 호기심을 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행성은 너무 닮았다.
“내가 욕심이 있다면,
쟤도 있겠지.”
“쟤가 나를 알면,
나도 두려워해야겠지.”
서로를 거울처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경계심이 자라났다.
지구와 지지구는
서로를 너무 많이 알아버린 관계가 되었다.
흥분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만남은
조금씩 묘한 긴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2편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