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공원과 나한테 자랑하기

무료하고 낭비적 시간

by 홍하

저녁의 항구 분위기는 대부분 문이 닫힌 가게가 많아 한적하고도 고요했다면

낮의 항구는 가게마다 기웃거릴 수 있고 구경해 가며 시간을 보내기에 꽤 괜찮은 공간이었다.


어디 어디를 갈지 오늘의 갈 데를 체크하지 못한 나에게,

가뿐히 들를 카페와 소품샵 더욱이 가장 좋아하는 공원이 있는 이 공간은 스스로에게 있어

‘엉덩이도 아프실 텐데 이제 그만 움직이시죠?’ 하는 말을 하지 않는 한 두고두고 앉아 있기 최적의 장소다.

특히 1월인데도 꽤 후덥한 낮 동안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공원은 오후의 무료함을 만끽하며 시간을 낭비하기에 알맞았다.


평소 여행지에서도 공원이 있다면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가보곤 하는데. 벤치에 앉아 멍하니 숨어있기 딱 좋아 편애하는 공간이다.


평소의 나였다면 지금쯤 무슨 업무 하고 있을까나 하고 사무실 속의 나에게 묻다가

나 도망 왔지롱 하며 나한테 자랑하고 마는 시간이다.

나한테 자랑이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도 나한테는 이런 무료하게 숨는 시간이 중요하다.


사무실에서 한껏 거북목을 하며 흐트러진 척추로 아야야 하며,

인공눈물로도 건조함이 해소되지 않은 흐린 눈으로 타이핑하다 서류 넘기다

아직도 4시 근처도 안 갔다는 슬픈 사실에 속으로만 좌절하는 나.


이런 나에게는 집으로 도피하기까지 2시간 이상이 남았다는 사실이 엄청 크게 다가온다.

집에 가도 할 게 없어서 사무실이 편하다는 타 직원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말씀!

(서로 이해하지 못할 거다 아마)


공원에서 맘껏 숨어있으면서 가끔 생각하다 또 멍하다 다시 생각하고 다시 숨는다.


나 어디까지 왔나?


물리적인 여행지의 공간 말고 어려워서 꺼내기도 벅찬 그 단어, 인생에서.


이렇게 멀리 숨어와서야 분명하게 생각해 본다.

나 어디까지 왔을까 또 어디까지 가볼까?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공원에서 생각하다 멍하다라니 누군가에게는 참 낭비적인 시간일 테지...

어서 움직여서 맛집 돌고 쇼핑하고 사진 찍고 공유하고....부지런한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느림보 나는 그저 한낮의 공원에서 엊그제까지의 나한테 자랑하면서

미래의 나한테 오늘 느끼고 쉰 걸 기억하고 조금만 더 기운 내!

하면서 말해줄 수밖에.


이 정도의 기운밖에 의미밖에 못 내지만 뭐 어떠겠나 이게 난데.


딱 이 만큼의 감정이 내 감정인데 하면서 남은 시간도 벤치에서 뜬 발을 까딱 거리면서

이 벤치 곧 내가 전세내고 말리라는 분위기로 조금 더 앉아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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