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추억, 겸손
전쟁터 같은 아침 출근 시간
아이들이 세상모르게 잠들어있다.
곤히 잠든 아이들은 순수했고
엄마는 고요한 비극을 맞이한다.
깨어날 기색은 없고...
아이들과 회사 사이에서 마음이 갈린다.
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로 하고 회사로 향하지만,
빨리 걸으려 할수록 발걸음은 제자리다.
자고 만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되돌아가야 할지, 딜레마다.
저 멀리 엄마의 아우라가
강하게 끌어당긴다.
엄마의 실체를 잡기 위해 ‘엄마’를
불러보지만
잡힐 듯하면서도 신기루처럼
사라지려 한다.
어둠 속에서 모든 빛을 끌어모아
더 힘껏 부르자
엄마의 눈동자 속에 나의 모습이
선명히 담긴다.
멎을 것만 같던 숨이 트인다.
드림 스토리~
꿈은 여운을 남기고 현실로 되돌아오기까지 한참이다.
그래도 해피엔딩으로 잠이 깨어 마음이
편안했다.
그게 나의 길이고 속도였다.
그리고 흔들릴 때면 엄마가 먼저 생각났다.
옆에서 기대고 싶었던 엄마의 나이테도
겹겹이 쌓여 만 가고
바람이 새는 풍선처럼 탄력을
잃어가는 피부
무거운 삶의 흔적만큼 짙은 보라 빛으로
얼룩진 입술
두피에 살포시 앉아있는 힘없는 머리카락
낙엽이 되어가는 잎새처럼
풀잎의 이슬처럼
가냘픈 소녀처럼
엄마는 딸의 수호천사에서 물러선다.
이제는 딸이 엄마를 위해 함께 해줄 순서다.
아름다운 조경이 있는
베이커리 커피숍에서
두 모녀는 같은 마음으로 꽃과 호흡했다.
다정한 모녀처럼 나무들도 균형을 맞추어
어느 가지가 혼자 잘났다고
더 뻗어 난 것이 없다.
좁은 화분에서 학대받던 그들의 기량을
맘껏 뽐낸다.
투박한 들꽃마저도 특별해 보인다.
값비싼 소나무든, 절로 피어난 들꽃이든
사람 마음만 빼앗으면 그만이지.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쓴 신부처럼
수줍은 듯
고개를 들지 못하는 들꽃 한 송이가 있다.
엄마는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말을 건다.
“어머, 여기에 할미꽃이 있네!”
주위의 화려한 꽃들과 건재한 나무들을
제치고
VIP석 앞자리에 당당히 서 있다.
뿌리를 깊게 내려야만 꽃줄기가 나오고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서서히 아래로
굽어진다.
마침내 보라색 꽃이 피어나면
태어나자마자 다 살았다는 듯이
할머니의 흰머리처럼 하얀 솜털로 덮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꽃이 시간이 지나면서 위쪽을 향해간다.
수줍고 겸손하던 꽃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게 된 데에는
깊은 사연이 있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세 손녀를 길러준 할머니가
부자에게 시집을 간 첫째와 둘째 손녀에게 버림받고,
마지막 희망인 가난한 셋째 손녀의 집을
찾아가다가
집 근처에서 밤에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듬해에 할머니의 무덤에서 셋째 손녀의 집을 향하여
허리가 굽은 꽃이 피어났다.
할머니의 넋이 담겼다고 하여 할미꽃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랑하는 손녀들에게 배신당한
할머니의 넋은
그리도 억울하여 고개를 쳐들고 백발을
풀어 헤치나 보다.
할미꽃은 슬픈 추억, 겸손의
꽃말을 가진다.
꽃 속에서 실컷 헤매던 엄마는
감성의 꽃비에 젖어 촉촉해진 걸까.
딸에게 고백한다.
“내가 효도를 받을만한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
“딸아, 미안해.”
우리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앞에 높인 머그잔만 바라본다.
사랑 고백을 듣는 것보다 어색하지만
계속 그리고 더 많은 ‘말’을 듣고 싶었다.
결국
엄마가 말을 멈출 것 같아 꼬리를 물듯
물었다.
엄마도 고단한 생활로 지쳐있어서
둘째인 나의 감정을 미처 살피지 못했다고 한다.
평소 좋아하던 커피와 빵도
엄마는 참회하듯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식어가는 커피 잔만 바라본다.
그동안 모녀에게 암묵적으로 금기된
대화가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상처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낸 엄마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감동의 화답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횡설수설’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순식간에 녹아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저 조금 끈적끈적할 뿐.
엄마는 뿌리가 깊게 내린 할미꽃처럼
인내와 강인함으로 삶을 견디어내고
청순한 꽃봉오리가 열리면서 고개를
숙이듯
수줍고 겸손하게 딸에게 고백했다.
할미꽃 봉우리를 닮은
보라색 반점이 생긴 입술과 하얀 머리를
한 엄마는
딸이 사준 옷이 마음에 들어서 인지 마음을 나누어서 인지
할미꽃 홀 씨가 바람에 날리듯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친정집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