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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하늘 희망의 해바라기- '두 자매의 삶'

희망, 빛, 동경

by 열음

한 여인이 낯선 형사들에게 붙들려 정동진역 어두운 철길을 가로질러 떠난다. 긴 생머리의 여자를 닮은 소나무가 저 너머 슬프게 그녀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눈이 부셔 바라볼 수가 없다.

모래시계의 주인공 혜린과 태수는 각자 처한 환경과 불완전성에 의해 서로 ‘해’가 되어 줄 수도 없고, ‘바다’가 되어 줄 수도 없다. 다만, 그들의 사랑은 많은 햇살 중 하나의 햇살이 되었고, 많은 파도 중 하나의 파도가 되어 주었을 뿐이다. 그들은 잠시 함께 탔던 추억의 기차에서 내려 이제는 각자 평행의 길을 가야만 한다.


IMF로 모두 고통받고 있던 시절, 잠시 현실을 잊게 한 드라마 ‘모래시계’의 명장면이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배우들의 명대사와 눈빛의 매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 채, OST를 듣거나 촬영 현장을 둘러보며 여운을 느꼈던 장소다.

드라마의 여운을 간직한 채 연인들은 밤새 기차를 타고 작은 마을에 있는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새벽 바다를 보며 해돋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그들의 얼굴색은 붉은 태양처럼 상기되어 있다. 역무원의 눈길을 피해 철길에 앉아 추억을 남기고, 예쁜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에서 열애하던 주인공이 되어 본다. 정동진역은 드라마나 노래 가사, 시의 단골 소재가 되는 감성과 낭만이 풍부한 사랑의 플랫폼이다.




어린 시절 내 옆에는 언제나 친구가 아닌 언니가 있었다.

두 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쌍둥이처럼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했다.

언니에게 장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대신해 언니를 지켜야 했지만, 그로 인해 나는 종종 억울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어느 날 언니와 나는 새 원피스를 예쁘게 입고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언니는 철봉에 매달려서 몸을 대롱대롱 굴렸다. 새 옷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남자아이가 다가와 팬티를 홱 내리고 웃으며 달아났다.

언니의 슬픔이 그 아이에게는 기쁨이었던 것 같다.

언니는 그조차 모른 채 철봉 위에서 해맑게 웃고 있었다.

슬픔은 온전히 내 몫이다.

닭똥 같은 눈물을 쏟으면서도 몸은 그 아이를 쫓아가질 못했다.

누군가, 힘 있는 어른이 나타나 그 아이를 혼내 주기를 바라는 상상.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같은 유치원에서 같은 옷과 신발,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손을 잡고 다녀야 했다.

키가 자라듯 언니에 대한 책임과 구속감도 같이 자란다.

유치원 교실에서 언니의 치마 안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얀색 타이즈를 타고 내오려던 물줄기는 순식간에 교실 바닥을 잠식했다.

짠 내 나는 물줄기보다 동생의 얼굴을 적신 눈물이 더 짜디 짰으리라.



엄마는 끝없는 헌신 속에서, 간절한 소망을 담아 언니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였다.

어려운 형편에도 매일 먼 도시의 특수학교까지 언니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다.

언니가 평범해질 수만 있다면,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달리는 외로운 기차처럼,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저 새벽하늘 희망의 해돋이를 맞이하기 위해서. 해바라기처럼.

엄마는 언니를 위해 내가 필요했지만, 난 엄마와 친구가 필요했다.

언니의 온전한 삶이 소원이었던 엄마와 달리, 나는 언니 없는 인생을 꿈꾸며 다른 길을 바랐다.

세상의 편견은 화살이 되어 내 마음의 과녁을 꿰뚫었고, 그 구멍은 점점 커져 언니를 밀어내고 싶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언니를 숨기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언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의 소리를 듣기나 한 것처럼, 가끔 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언니를 찾아 헤매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안 할 테니 제발 언니를 돌려 달라고.

언니의 ‘해’가 되어 줄 수 없고, ‘바다’도 되어 줄 수 없었다.

엄마는 세월 따라 몸만 커질 뿐 정신 나이가 멈춘 언니의 교육을 점점 내려놓았다.

꼭 잡도록 했던 자매의 손을 놓게 하고, 동생을 친구들 품으로 가도록 했다.



정동진역을 떠나가는 추억 속의 기차처럼, 동생에게 언니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언니에게서 떨어져 넓은 바다에서 맘껏 헤엄을 치며, 이제는 더 큰 세상 속에서 언니를 잠시 잊고 산다.

인생의 기차를 타고 어두운 철로를 지나서, 마침내 자유로운 바다와 새벽하늘에 떠오르는 해를 향해 달린다.

하나의 철길을 애써 숨겼던 동생은 나란히 평행을 이루는 철길을 바라보며 언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철길 하나로는 기차가 달릴 수 없듯이 언니라는 평행선이 있었기에 더 곧고 견고하게 달릴 수 있던 것이다.

추억의 기차를 떠나보내며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 정동진처럼,

이제 엄마도 언니로 인해 눈물 흘리지 않는다.

서로가 햇살이 되고 파도가 되듯, 비록 장애가 있는 언니일지라도 우리에게 사랑과 겸손을 가르쳐 주었다.

천진난만한 언니의 미소는 밝은 햇살이 되어,

세상을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언니를 숨기지 않는다.



* 정호승의 '정동진' 시를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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